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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

“강자들이 즐비한 레드오션에서 정면승부 해야죠”

58개국 수출 ‘국대’ 렌즈회사, 100년 역사 일본  ·  독일 기업에 도전장

“강자들이 즐비한 레드오션에서 정면승부 해야죠”

영화 촬영용 시네마 광각렌즈(XEEN)를 들고 있는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 황 대표는 기자에게 자사 대구경 렌즈를 건네며 찍어보라고 했다. XP85mm F1.2 렌즈로 촬영. [박해윤 기자]

영화 촬영용 시네마 광각렌즈(XEEN)를 들고 있는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 황 대표는 기자에게 자사 대구경 렌즈를 건네며 찍어보라고 했다. XP85mm F1.2 렌즈로 촬영. [박해윤 기자]

“삼성전자가 카메라시장에서 철수해 본의 아니게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한국 대표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일본, 독일의 유명 기업은 폐쇄적으로 자신들의 시장을 지키고 있고, 중국은 우수 인력을 앞세워 맹추격 중이라 중소기업으로서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강자가 즐비한 레드오션으로 뛰어들어 정면승부를 해야죠.” 

황충현(61) 삼양옵틱스 대표의 말에는 어떤 결기가 묻어났다. 소니, 캐논, 니콘, 라이카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구한 업력(業歷)의 글로벌 기업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그의 숙명이다. 국내 유일 카메라 교환렌즈 제조업체라는, ‘국대’(국가대표)가 주는 중압감도 엿보였다. 어쩌면 요즘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삼양옵틱스의 AF 렌즈.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삼양옵틱스의 AF 렌즈.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삼양옵틱스는 1972년 설립한 카메라 교환렌즈 전문기업이다. 그동안 부침도 많았다. 10년간 법정관리에 들어가기도 했고 2000년 폐쇄회로(CC)TV 회사에 인수된 뒤에는 여러 차례 ‘손바뀜’이 있었다. 바이오, 택배 같은 다양한 신규 사업을 하다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2013년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가 인수에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광디지털사업 마케팅 상무를 지낸 황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그는 교환렌즈 부문을 주력 사업으로 정해 독립(물적분할)시키면서 매출 비중이 40%에 이르던 CCTV 렌즈 부문을 과감히 정리했다. 삼성전자 출신 임직원을 대거 영입해 회사 진용을 갖췄고,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서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호우경보가 내린 8월 29일 서울 역삼동 삼양옵틱스 서울사무소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결단과 투자, 선택과 집중

대표 취임 이후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이며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거 같다. 코스닥 상장도 성공했다. 

“2013년 8월 VIG파트너스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경영진을 새로 찾았는데, 우연히 나와 연결됐다. 이쪽 업계가 특수하다 보니 컨설팅을 하면서 인연이 됐다. 삼양옵틱스 역사는 길지만 법정관리 등 밝은 역사보다 어둡고 슬픈 역사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했고, 카메라 교환렌즈 부문을 주력으로 분할해 사실상 새롭게 출발했다. 2017년 코스닥 상장이라는 성과도 냈고…. 밝은 역사를 가진 회사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감한 결단과 투자가 회생의 바탕이 된 거 같다. 

“대표로 취임할 때만 해도 삼양옵틱스는 쌍안경, CCTV 렌즈 등 다양한 아이템을 생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심하다 잠재력이 큰 교환렌즈에 집중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서 벗어나 ‘삼양’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키워야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OEM 사업과 CCTV 렌즈 부문을 과감히 정리한 거고. CCTV 렌즈는 회사 매출의 40%를 차지했지만 수익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중국이 맹추격 중이라 선제적으로 정리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교환렌즈 사업은 성과를 냈나 보다. 

“당시 삼양옵틱스는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매뉴얼 포커스(MF) 제품을 출시하고 있었다. MF 렌즈 부문 매출은 괜찮았지만 이것 또한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늘 같은 ‘카를 차이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당시 MF 렌즈시장에서는 독일 회사들이 강자였는데, 그중 ‘카를 차이스(Carl Zeiss)’가 독보적 기술을 자랑했다. 일본 회사들은 오토매틱 포커스(AF·자동초점) 렌즈를 주력으로 생산했다. 카를 차이스의 고가 제품과 삼양옵틱스의 제품은 워낙 가격 차이가 났다. 고백하면 당시 카를 차이스가 성층권에서 놀았다면 우리는 지표면에서 놀았다고나 할까. 우리는 비교적 경쟁이 적은 일종의 니치마켓(틈새시장)에서 제법 이익을 봤다. 그런데 언제까지 안주할 순 없었다. 카메라 전문가가 주로 찾는 MF 렌즈시장도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커가지만 기술력 문제를 돌파하지 않은 채 ‘지표면’에서만 논다면 중국 업체들에게 곧 추격당할 상황이었다. 프리미엄 MF 렌즈 라인업을 탄탄히 하면서 4조 원대 시장인 AF 렌즈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광학을 연구한 독일인 카를 차이스(1816∼1888)는 카메라 마니아에겐 익숙한 이름이자 정밀한 렌즈 브랜드로도 정평이 나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남긴 첫 발자국을 촬영한 카메라에도 이 렌즈가 장착됐다. 당연히 삼양옵틱스와의 기술력 차이는 컸다. 황 대표는 프리미엄 렌즈 개발에 집중하고자 2016년 1월 경남 창원에 새 공장을 완공했고, 연구개발 비중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나 마니아가 찾는 MF 렌즈와 달리 AF 렌즈는 시장이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할 거 같은데. 

“그렇다. AF 렌즈시장은 MF 렌즈시장보다 20~25배 크지만 소니, 파나소닉, 올림푸스, 니콘 등 일본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함께 생산하고 있고 우리는 시그마, 토키나, 탐론 같은 렌즈 전문회사와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교환렌즈로 명함을 내밀려면 글로벌 기업이 만드는 카메라 본체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완벽히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렌즈를 생산해야 한다. 독자적인 광학설계와 응용기술 같은 핵심 기술력을 갖춰야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다. 우리는 2년 반 연구 끝에 2016년 AF 렌즈를 출시하고 지속적으로 라인업을 확대하면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현재 MF·AF 렌즈시장은 어떤가. 

“MF 렌즈시장에서 AF 렌즈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 내년에는 AF 렌즈 수요가 더 많을 것으로 본다. MF 렌즈를 찾는 전문가 수요는 한정돼 있지만 일반인이 쉽게 조작 가능한 AF 렌즈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니 강자들이 즐비한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한다.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황 대표에겐 미안하지만, 비장함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기자는 순간 당랑거철(螳螂拒轍)을 떠올렸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들과 한국 중소기업의 한판 승부. 부슬비가 흩날리는 흙길에서 사마귀는 거대한 카메라 렌즈를 실은 수레를 날카로운 앞발로 위협하며 멈추려 한다. 지금 승부 결과는 명약관화하지만 10년, 20년 뒤 세계 카메라시장 판도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삼양옵틱스는 업계 최초 동영상 촬영 전용 VDSLR 렌즈와 영화 촬영용 시네마 광각렌즈(XEEN)를 선보여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출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기 조작에 능숙한 젊은 세대는 사진보다 동영상을 선호하고, 스마트폰으로 쉽게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면서 일반인도 동영상 촬영을 즐긴다. 이런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동영상 촬영에 그치지 않고 더 전문적으로 촬영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만큼 세계 최초로 동영상 촬영 전용 렌즈를 개발했다. 영화 촬영용 렌즈도 꾸준히 신제품을 내면서 입소문이 났다. 보통 영화 한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 3~4대가 동시에 쓰이는데, 우리 제품은 현재 서브(보조) 카메라로 사용되고 있다. 내년에는 우리 제품으로만 촬영한 영화들이 나올 거다.”


58개국에서 만나는 ‘SAMYANG’

2016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국제사진 · 영상 전시회(Photokina)에 참여한 삼양옵틱스 전시 부스.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2016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국제사진 · 영상 전시회(Photokina)에 참여한 삼양옵틱스 전시 부스.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사실 글로벌 카메라 기업들은 자사 카메라 본체에만 착용할 수 있는 렌즈를 만들 정도로 폐쇄적이고 진입장벽도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업체가 맹추격 중인데, 자칫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결국 독자적 핵심 기술을 갖추느냐 여부에 달렸다. 중국에 없는 핵심 기술을 특화하면서 최대한 빨리 글로벌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가야 한다.” 

특화된 핵심 기술이라면…. 

“예를 들어 고성능 렌즈를 소음 없이 움직이는 ‘초음파 모터’ 같은 기술이다. 자율주행차량과 VR(가상현실) 기기, 드론 등에 사용되는 비구면 렌즈(기존 구면형 렌즈를 포물면, 쌍곡면 등으로 바꾼 고부가 렌즈)도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쪽 분야의 기술력은 시행착오를 통해 쌓아야 해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 전문인력이 바뀌면 제품도 팍팍 바뀔 정도니까. 일본 회사들은 공장마다 장인(匠人)이 있어 제품 개발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의 노하우를 잘 활용한다. 우리도 개발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일본 회사로부터 자문을 받거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인은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 우리는 비교적 빠르게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다.” 

고성능 프리미엄 렌즈 포트폴리오 확대라는 그의 ‘선택과 집중’은 성공적이다. 세계 58개국에 ‘삼양(SAMYANG)’이라는 브랜드로 수출하고 있고, 2014년 515억 원이던 매출액(영업이익 144억 원)이 지난해 663억 원(영업이익 201억 원)으로 올라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삼양옵틱스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인정해 지난해 4월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AF 렌즈(AF35mm F2.8 FE)는 유럽 테크니컬이미지출판협회(TIPA)가 선정한 CSC 프라임 렌즈 부문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됐으며,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IF, reddot)에서 수상하는 등 기술력과 디자인을 인정받고 있다. 

어릴 적부터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나. 

“학교 다닐 때는 사진반을 했지만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카메라 관련 일을 할 줄은 몰랐다.(웃음) 삼성정밀에 입사해 이쪽 일만 했고 평생을 일본 업체와 경쟁하면서 살다 보니 남들보다 시장 이해와 적응이 빠른 거 같다.”


“한평생 日 업체와 경쟁하다 보니…”

경남 창원의 본사 전경.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경남 창원의 본사 전경. [사진 제공 · 삼양옵틱스]

중소기업으로서 어려움도 클 거 같다. 

“지난해 삼성이 카메라 부문 사업 철수를 공식 발표하면서 전방산업이 사라지자 후방산업(제품 소재나 원재료 공급 업종)도 타격을 받았다. 대기업이 사라지고 우리만 남은 상황에서 카메라 부품 협력사들이 과거에 비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현재 50개 협력업체와 함께 하는데 일부 제품은 중국,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협력업체 수준이 곧 우리 수준이고, 핵심 부품은 국산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협력회사들과 안정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인력 문제다. 렌즈는 광학과 물리학을 기초로 한 100% 아날로그 산업이라 렌즈 설계와 구성은 물론, 전자회로를 붙이고 회로를 작동시킬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돼야 한다. 고급 기술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산업인지라 중소기업이 이끌고 가기에는 힘에 부친다. 임금 수준이 높아도 근무지가 경남 창원이고, 중소기업이라는 핸디캡도 있다.” 

어떻게 해결하나. 

“우리가 인력을 키울 수밖에. 2013년 연구소 인력이 9명이었는데 현재는 31명으로 대폭 늘렸다. 힘들더라도 가르치며 대비할 수밖에….”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VIG파트너스가 대주주인 만큼 한계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우려를 할 수도 있다. 다만 독립된 경영을 보장하고, PEF 특성상 수익을 낸 뒤 엑시트(떠남)한다 해도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분명하고 희망이 있으며 결과를 낸다면 주인이 누구든 상관없다. 누가 주인이 되더라도 우리가 하는 일이 경쟁력 있고 돈이 된다면 걱정할 건 없다고 본다.” 

앞으로 계획은. 


“현재 해외에서 전체 매출의 96%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제는 국내 소비자에게 어필해 국내시장 비율을 높이고 싶다. 성능 좋은 제품을 비교적 값싸게 공급하면서 국내시장을 넓혀가겠다. 우리 회사의 기술이 내재화되고 오래갈 수 있도록 삼성에서 배운 노하우를 다 쏟아붓고 은퇴하고 싶다.(웃음)”




주간동아 2018.09.05 1154호 (p28~31)

  •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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