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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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걷기 좋은 동네는 미래 도시설계의 화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3-29 08: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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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동해안 해파랑길, 서울 두드림길. 전국 곳곳에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되고 주말마다 여기저기서 걷기 대회가 열린다. 걷기의 운동 효과가 강조되면서 걸음마 떼고부터 해온 걷기를 새삼 다시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자동차를 탈 때보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도 줄이니 걷기만 해도 저절로 친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트렌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살아온 동네를, 매일 오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이웃과 눈인사라도 나눠본 적이 있는가.
    박소현(55)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동네 걷기’에 주목했다. “동네를 걸으면서 느끼는 장소에 대한 애착, 집 밖으로 걸어 나가 이웃, 타인과 접하는 사회적 교류, 더 나아가 잃어버린 공동체 가치를 새롭게 느끼는 계기와 기회도 동네 걷기의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최근 시정계획에서 도시재생과 마을 만들기가 화두(話頭)인 만큼 동네와 걷기를 결합한 연구는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주부 하루 평균 39분 걸어, 미국의 7배

    동네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얼마나, 왜 걸을까. 오래된 동네와 새 동네, 어느 쪽이 더 많이 걸을까. 걷기 좋은 동네와 많이 걷게 되는 동네는 어떻게 다를까. 지름길을 두고 더 먼 길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교수와 제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지난 10년 동안 현장을 누볐고 그 1차 결과물이 ‘동네 걷기 동네 계획’(박소현·최이명·서한림 지음/ 공간서가) 보고서다. 

    ▼ 이번 연구 대상 집단이 30, 40대 전업주부인 점이 눈에 띈다.

    “동네에서 제일 많이 움직이는 집단을 찾았더니 애 키우는 엄마들이더라. 워킹맘도 있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어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삼았다. 엄마는 대부분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그 과정에서 은행도 들르고, 장도 보고,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시거나 맛있는 만둣집이 있으면 하굣길에 들러 아이에게 사주기도 한다. 전업주부의 하루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일상생활 보행 데이터를 얻고자 피험자들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을 사용해 보행을 기록하게 했다. 이번 연구에서 장보기, 학교 가는 길, 마을버스, 오픈스페이스(근린시설)로 구분해 동네 걷기를 설명한 것도 실제 주부들의 일생생활을 반영한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 환경이란 무엇인지, 이에 따라 바람직한 주거지 계획과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동네 걷기를 기반으로 모색해보자는 데 있다.”

    ▼ GPS로 보행 경로 및 보행 시간을 수집해 분석하는 연구가 건축학계 최초라고 들었다.


    “동네 걷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7년이고, GPS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그전까지는 설문조사 위주로 진행했는데 응답 내용이 실제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경사가 심한 구릉지 지형에 가로환경이 여가보행(출퇴근 같은 목적보행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목적 없이 유유자적하는 것을 가리킴)에 적합하지 않은 동네인데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우리 동네는 걷기 좋다’거나 ‘나는 많이 걷는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특유의 주거문화를 반영한다. 평생 돈을 모아 어렵게 장만한 집이어서 실제 환경에 비해 ‘주거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한국의 주거만족도 연구는 조금 의심해봐야 한다는 외국 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방법론을 바꿔 실제 보행량을 측정했더니 예상대로 그 동네 주민들은 별로 걷지 않았다.”



    ▼ 서울 종로구 가회동, 노원구 상계동 주부가 동네에서 하루 평균 2.69km(약 39분)를 걷는데 미국 시애틀의 한국계 주부가 하루 평균 400m(약 6분)를 걸어 7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동네에서 전업주부들을 걷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장보기, 물건 사기다. 서울 북촌, 상계7동, 성산1동, 행당2동 이렇게 네 곳을 사례 대상지로 진행한 연구에서 네 곳 모두 동네 장보기 비중이 60% 이상이었고 84%인 곳도 있었다. 빈도 면에서도 평균 주 3회 이상 동네 가게를 이용하는 데 비해, 외부 대형마트는 주 1.5회 미만으로 이용했다. 반면 시애틀 주부들은 물건 구매를 위해 17%만이 동네를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 주부들의 86%가 동반보행을 하는 데 비해 시애틀 주부들은 21%만이 걸어서 아이와 함께 등하교를 하고, 대부분 자동차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미국 동네에서는 놀랄 만큼 안 걷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비교연구는 일방적으로 수입된 이론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지식생태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 요즘 사람들은 전통시장을 외면하고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게 대세라고 하는데, 연구 결과는 뜻밖에도 동네 가게에서 장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이 주거지 계획과 설계에 어떤 의미가 있나.

    “동네 장보기의 문제는 ‘공간복지’와도 관련이 깊다. 여든 넘은 노인이 차를 끌고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분들도 생필품과 건강한 먹거리가 필요하고, 동네 가게에서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공간복지에 관심이 없었다. 아파트단지를 크게 짓고 단지 내 상가를 만들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요즘은 단지 내 상가조차 필요 없다고 말한다. 요즘 누가 동네 가게에 가느냐, 어차피 대형마트 간다고 이유를 댄다. 그러나 실증적인 연구 결과는 그와 반대다. 상가를 아예 없애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소필지 개념으로 작은 가게가 여러 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 책 제목은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인데 부제는 ‘걸어서 좋은 동네, 걷기가 좋은 동네’다. 이번 연구에서 ‘동네’가 먼저인가, ‘걷기’가 먼저인가.

    “도시설계에서 걷기는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걷기라고 하면 광화문광장 걷기, 시청 앞 걷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걷기 이전에 일상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상업지구 걷기가 아닌 동네 걷기를 연구하게 된 이유다. 또 걸어서 얻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동네 걷기의 목적이 단순히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나 도시설계 학자들은 의식하지 않고 동네에서 30분 정도 걷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동네 길은 이동을 위한 통로만이 아니라 산책, 머무름, 놀이, 대화가 이뤄지는 여가공간이자 놀이터, 만남의 공간이다. 그런 개념에서 좋은 동네란 ‘걸어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동네’다.”

    박소현 교수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윤석중 시인의 동시 ‘넉점 반(네 시 반)’이 떠올랐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시냐구요.”/ “넉점 반이다.”//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아기는 오다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심부름 하러 동네 길을 걷다 해찰할 일이 하도 많아서 해가 꼴딱 져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에서 박 교수가 꿈꾸는 ‘걷기 좋은 동네’ ‘건강한 도시’의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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