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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불 꺼진 상가

“관리비만 내고 장사하세요”

쇼핑 메카인 동대문 복합상가 공실 급증  …  온라인 쇼핑 늘고 중국인 관광객 감소 여파

“관리비만 내고 장사하세요”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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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2·4·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에는 굿모닝시티, APM,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 대형복합쇼핑상가가 병풍처럼 들어서 있다. 이들 대형상가는 외환위기로 국내 경기가 최악이던 상황에 개장했다. 사양길로 접어들던 동대문시장에 이들 대형상가가 잇달아 들어선 것을 계기로 2000년을 전후해 동대문시장은 패션관광특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신 유행의 옷을 구매하려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으면서 침체된 상권이 되살아났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재래 의류시장의 부활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기획―생산―판매를 한데 묶는 산업집적체를 형성해 시장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동대문시장의 성공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밀리오레와 두산타워

1999년 10월 19일자 ‘동아일보’는 ‘동대문시장의 하루 유동인구는 20만∼30만 명으로 국내 최대’고 ‘20, 30대가 주 고객으로 하루 거래액은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동대문시장은) 외국상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쇼핑코스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동대문 상권의 부흥을 이끈 복합쇼핑상가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곳이 밀리오레와 두산타워(두타)다. 이탈리아어로 ‘가장 좋은’이란 뜻을 가진 밀리오레는 옷과 신발, 액세서리 등 패션 보조 제품을 판매하는 체인점으로 1998년 8월 동대문 앞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서울 명동과 부산, 대구, 광주, 수원 등으로 체인점을 확장했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패션 전문점 두타는 1999년 2월 개장했다. 지하 7층, 지상 34층으로 개장 당시 서울 중구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높았다. 두타는 ‘옷을 주제로 한 놀이동산’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서울의 대표 관광명소가 됐다. 이후 2009년 5월 고급화와 대형화, 디자이너 매장 확대와 감각적인 패션 전문점을 콘셉트로 리뉴얼 오픈했다. 

밀리오레와 두타 등 복합쇼핑상가는 젊은 고객을 유치하고자 건물 앞에 무대를 설치해 다채로운 공연장으로 활용했다. 매일 밤 청소년들이 모여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동대문 복합쇼핑상가 앞 광장은 한때 ‘청소년의 해방구’로 통했다. 

2000년을 전후해 젊음과 패션의 메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동대문시장은 홈쇼핑, 인터넷 쇼핑이 유행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유커가 한국을 본격적으로 찾아오면서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중 갈등이 불거진 후 본격적인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8월 28일 찾아간 동대문 복합쇼핑상가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빈 점포가 많았다. 

지하 2층에서 지상 7층까지 상가로 운영되는 밀리오레의 경우 1, 2층은 간혹 이가 빠진 것처럼 드문드문 빈 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층수가 높아질수록 빈 점포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특히 6, 7층은 빈 점포를 세는 것보다 영업 중인 상가를 세는 게 더 빠를 만큼 ‘입점문의’라고 써 붙인 점포가 많았다. 특히 에스컬레이터에서 바로 보이지 않아 코너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점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6층의 절반가량, 7층의 80% 가까이가 비어 있었다.


일부 상가 공실률 80% 육박

화려한 외양과 달리 서울 동대문 복합쇼핑상가에는 빈 점포가 크게 늘었다. [구자홍 기자]

화려한 외양과 달리 서울 동대문 복합쇼핑상가에는 빈 점포가 크게 늘었다. [구자홍 기자]

10년 전부터 동대문시장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해왔다는 김모 씨는 “동대문 일대 대형복합쇼핑상가에 입점한 소매점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고 있다”며 “일부 복합쇼핑상가의 경우 공실률이 80%에 이를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빈 점포가 늘면서 임대료도 크게 떨어졌다”며 “분양가로 상가를 분양받은 점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굿모닝시티의 1층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상가의 경우 1구좌(3.3㎡ 조금 넘는 크기)에 최고 2억5000만 원에 분양됐다. 개점을 앞둔 2007년 말에는 기대감이 높아져 분양가에 웃돈을 주고도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1층 상가는 개점 초기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임대료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1층은 그나마 임대료라도 받을 수 있지만 2, 3층으로 올라갈수록 임대료가 형편없다. 월평균 임대료가 50만 원도 안 된다.” 

공인중개사 김씨의 얘기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의 경우 3.3㎡ 남짓한 1구좌로는 물건을 제대로 진열할 수 없어 보통 2구좌에서 많게는 5구좌까지 임차해 장사한다. 그런데 어떤 구좌는 임대가 워낙 안 돼 임대료를 받지 않는 대신 관리비만 내고 쓰게 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개점 초기 형성됐던 권리금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한 온라인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는 ‘보증금 500만, 월세 35만 원. 권리금 없음. 저는 (권리금) 400만 원 내고 들어왔는데, 빠른 거래를 위해 권리 포기해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다른 사이트에는 ‘현재 공실로 상시 입주 가능합니다. 보증금, 월세 모두 없고 관리비(약 30만 원)만 내시고 장사하세요’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동대문시장을 찾던 주 소비층인 젊은이들이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 등으로 옮겨간 영향이 가장 크다. 지난해 초 한 쇼핑몰 운영업체가 실시한 쇼핑채널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5%가 ‘모바일 쇼핑’을 꼽았을 정도. 

한 대형복합쇼핑상가 관계자는 “모바일 쇼핑 비중이 높아진 만큼 상가의 빈 점포가 증가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를 주도해야 할 젊은 세대가 취업난 등으로 과거에 비해 소비를 줄인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커가 오지 않으면서 빈 상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2016년 사드 보복 조치에 동대문 쇼핑타운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은 크게 줄었지만, 중국인이나 동남아 상인들이 점포를 직접 임대해 구매대행을 하는 곳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따이공’이라 부르는 보따리 상인들이 과거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해 중국으로 보냈다면, 최근에는 직접 도매상을 차려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이 직접 도매상을 차리면 환전과 물류, 여행업 등 부가서비스까지 몽땅 중국인 차지가 되고 만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이 줄줄이 폐업하는 사이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네팔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상인들이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세월호, 메르스, 사드, 그리고 탄핵

모바일 쇼핑이 활성화되고 유커의 발걸음마저 뜸해지자 동대문 복합쇼핑상가 점포들이 점점 비어가고 있다. [구자홍 기자]

모바일 쇼핑이 활성화되고 유커의 발걸음마저 뜸해지자 동대문 복합쇼핑상가 점포들이 점점 비어가고 있다. [구자홍 기자]

조준영 굿모닝시티쇼핑몰관리단 대표는 △모바일 쇼핑 증가 △쇼핑몰 공급 과잉 △인구 감소에 따른 쇼핑객 감소 △중국 의류·패션시장의 성장 △유니클로, ZARA 같은 글로벌 의류기업의 국내 진출 등 동대문시장이 어려워진 5가지 이유를 열거했다. 조 대표는 “동대문시장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전국 재래시장의 의류 상점도 어려워졌다는 얘기”라며 “구조적 이유 탓에 동대문시장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밀리오레에서 4구좌를 임대해 10년째 침구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한번 문을 닫으면 다른 상인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5~6년 전부터 빈 점포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가 비는 이유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 때문은 아닐까. 상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무제와 동대문 상가 폐업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정도로 점포를 크게 운영하는 상인은 몇 안 된다”며 “대부분 나 홀로 점포를 운영 중인데 최저임금 인상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고용을 유지하면 월급 일부를 보전해주겠다지만, 이는 규모가 큰 자영업자만 돕는 꼴밖에 안 된다”면서 “고용지원금으로 줄 돈이 있으면 청년이나 경력 단절 여성의 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게 경제활성화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지원금 몇 푼 줘봤자 고용주의 임금 부담을 조금 덜어주는 정도다. 그 돈으로 창업하게 하면 간판과 가구, 인테리어 업자에게도 돈이 흘러가고, 심지어 광고 전단을 만드는 인쇄업계까지 돈이 돌게 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활성화도 시키려면 고용지원금보다 창업자금 지원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 다른 상인도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면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깎아준다고 하는데, 언 발에 오줌 누기, 바닷물에 소금 뿌리기밖에 안 된다”며 “열정과 의욕이 있는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S공인중개사사무소 김모 대표도 “장기간 빈 점포는 관리비만 부담하는 조건으로도 쓸 수 있다”며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는 2014년부터 4연타를 맞고 휘청거렸다는 게 상인들의 중론이다. 2013년과 2014년 초까지 국내 경기 상승과 유커의 유입으로 반짝 특수를 누리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는 것. 2015년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몇 달을 공쳐야 했고, 2016년 사드 배치 여파로 유커가 발길을 뚝 끊으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얘기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탄핵과 대선까지 겹쳐 시장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창업 지원이 더 필요

밀리오레에서 8년째 장사를 해오고 있는 이모 씨는 “동대문시장이 서울에서도 중심 상권에 속하는 곳이라 이곳에서 8년을 버텼는데 이제는 지역 상권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게를 알아보고 있다는 그는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같은 서울 중심 상권은 권리금이 거의 사라졌는데, 오히려 동네 사거리 쪽 상가에는 권리금이 남아 있더라”고 덧붙였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는 일대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백, 수천 개 소매점이 빽빽이 들어찬 곳으로 유명했다면, 이제는 영화와 VR(가상현실)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하는 것. 

한 복합쇼핑상가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김모 대표는 “수백 개로 쪼개진 점포를 각 점주가 개별적으로 임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소매점주들의 동의를 받아 1개 층 전체에 특정 업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단체 입점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소매업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단체 입점하는 업체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쇼핑과 여가를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동대문 복합쇼핑상가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터뷰 | 조준영 굿모닝시티쇼핑몰관리단 대표
“휴무일에 광장 활용토록 숨통 터달라”
굿모닝시티쇼핑몰 [동아DB]

굿모닝시티쇼핑몰 [동아DB]

서울지하철 2 · 4 ·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 위치한 복합쇼핑상가는 요일에 따라 하루씩 돌아가면서 쉰다. 밀리오레가 월요일, APM과 굿모닝시티가 화요일에 쉰다. 주말에도 영업하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하루씩 전체 상가가 문을 닫는 것이다. 그러나 폐업 위기에 몰린 일부 소매점은 상가가 문을 닫는 날에도 재고 소진을 위해 상가 앞 광장에서 계속 영업하기를 원했다. 

조준영 굿모닝시티쇼핑몰관리단 대표는 “지금까지 복합쇼핑상가 전체가 문 닫는 날에도 관청의 이해와 배려로 상가 앞 공개공지(광장)에 일부 소매점이 좌판을 열고 관광객과 행인을 대상으로 장사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최근 민원이 제기되자 구청에서 더는 공개공지에서 장사하지 못하도록 시정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동대문 복합쇼핑상가를 관할하는 서울 중구청은 행인들의 통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과 개점한 이웃 상가의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시정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 대표는 “공개공지 활용은 굿모닝시티 생존과 직결된다”며 “쇼핑몰 입점률이 극히 저조한 상황에서 동대문패션관광특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대문상권을 살리려면 공개공지 활용에 대해 행정당국이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굿모닝시티 앞 광장이 활성화되면 동대문패션관광특구의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8.09.05 1154호 (p12~15)

  •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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