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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꽃처럼 예쁜 밥을 섞어 먹다

저마다 매력 뽐내는 전국 비빔밥

꽃처럼 예쁜 밥을 섞어 먹다

오밀조밀 섬세한 진주비빔밥, 돼지비계와 함께 먹는 전남 함평 육회비빔밥, 제주 성게비빔밥, 묵나물이 든 강원도 비빔밥(왼쪽부터).

오밀조밀 섬세한 진주비빔밥, 돼지비계와 함께 먹는 전남 함평 육회비빔밥, 제주 성게비빔밥, 묵나물이 든 강원도 비빔밥(왼쪽부터).

얼마 전에 외국인 친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로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돌솥비빔밥 사진 아래에는 ‘어떻게 먹으면 좋은가’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이탈리아 작은 어촌 마을 출신인 어린 친구는 영국 런던에서 생애 처음으로 비빔밥을 본 것이다. 시차가 있어 ‘mix them all together(전부 섞어서 먹어)’라는 답을 너무 늦게 보냈고, 그는 이미 비빔밥의 다양한 재료를 조금씩 덜어 친구와 정갈하게 나눠 먹은 뒤였다. 모두 섞으라는 답을 본 그는 그렇게 하면 아름다운 작품을 망치는 기분이 들 것 같단다. 그러고 보니 비빔밥은 한 그릇을 만드는 데 준비할 것이 참 많음에도 고운 자태로 상에 올라오자마자 온통 뒤섞여야 하는 모순을 지니긴 한다. 비빔밥을 칭하는 골동반(骨董飯)은 ‘어지럽게 섞는 밥’이라는 의미고, ‘화반(花飯)’은 꽃처럼 예쁜 밥이라는 뜻을 지닌다. 결국 꽃처럼 예쁜 밥을 어지럽게 섞어 먹는 것이 정답인가 보다. 

비빔밥의 기원에 대해선 섣달그믐 저녁시간 남은 음식을 해 넘기지 않고 소진하려 한데 섞어 먹었다, 제사상에 오른 나물과 탕국 등을 넣고 비벼 먹었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경북 안동식 비빔밥이 바로 제사 나물에 탕국을 넣어 비벼 먹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시장이 유명한 전남 함평에서는 소 허벅지나 엉덩이 살을 채썰어 얹은 육회비빔밥이 유명하다. 함평식 육회비빔밥에 꼭 함께 나오는 것이 바로 돼지비계다. 돼지비계만 따로 손질해 시루에 쪄 기름을 뺀 뒤 길쭉길쭉 가늘게 썰어 낸다. 뽀얗고 깨끗한 돼지비계를 육회비빔밥에 넣고 잘 섞으면 고소함은 물론이며 참기름처럼 밥에 윤기를 더해 차지고 부드럽다.

꽃처럼 예쁜 밥으로는 진주비빔밥이 떠오른다. 애호박, 고사리, 시금치, 무, 숙주나물 등을 정갈하게 조금씩 돌려 담은 뒤 김, 육회, 청포묵을 올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전주비빔밥은 당근, 콩나물, 오이처럼 아삭거리는 재료가 더 풍성하게 올라가고 생김새도 굵직굵직하면서 대찬 느낌이 난다. 전주비빔밥에는 사골이나 양지머리 국물로 지은 밥을 사용한다. 

황해도 해주비빔밥은 돼지기름으로 밥을 볶아 소금으로 간한 다음 여러 가지 나물과 버섯, 닭고기를 올려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미역, 톳, 파래처럼 바다 나물을 듬뿍 넣는 경남 통영비빔밥, 코끝이 알싸해지는 멍게를 넣은 비빔밥, 바다의 버터를 듬뿍 올린 것처럼 부드러운 성게비빔밥, 꼬막이나 재첩처럼 조갯살을 올리고 풋풋한 채소와 함께 섞어 먹는 비빔밥 등 지역마다 계절마다 다양한 비빔밥이 존재한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는 간을 전혀 하지 않거나 싱겁게 맞추고 고유의 색, 씹는 맛, 특유의 향이 살아 있도록 조리한다. 하나씩 맛보면 밍밍하나 여러 재료가 한 그릇 안에서 뭉쳐졌을 때 비로소 맛이 어우러지며 몇 배나 훌륭한 진가를 발휘한다. 즐거운 시너지 효과다. 이어령 교수는 ‘푸성귀는 푸른색으로 동쪽을 나타내고, 고추는 붉은색으로 남쪽을 가리킨다. 달걀노른자위 같은 황색은 중앙을 상징하고 그 흰자위의 흰빛은 서쪽을 뜻한다. 물론 김이나 검은콩의 검은색은 북쪽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방색 음식을 먹는 것은 곧 우주를 먹는 것이요, 내 몸이 우주를 담는 것이다’라고 했다.  




주간동아 2018.04.18 1134호 (p77~77)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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