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광화문에 뜬 ‘色다른 꿈’

동아미디어센터,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앞두고 대형 예술작품으로 변신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다니엘 뷔렌, “다채로운 색과 빛으로 서울 도심 물들이길 기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3-2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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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장소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 동아미디어센터

    • 전시 기간 2020년 12월 30일까지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모나리자’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두꺼운 유리 벽 안에 안치된 모습을 보며 자란 프랑스의 예술 지망생들은 미술관의 ‘권위’를 어떻게 넘어서고자 했을까. 그 한 예를 보고 싶다면 루브르박물관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에 가보면 된다. 루이 13세의 재상(宰相) 아르망 리슐리외의 저택이었고 루이 14세가 거주하던 고풍스러우면서도 위엄 있는 건물 광장엔 높낮이가 다양한 260개의 줄무늬 기둥이 흩뿌려져 있다. 아이들은 낮은 기둥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장난기 많은 청년은 높은 기둥 위로 기어 올라가 만세를 부른다. 적당한 높이의 기둥에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미술관에 ‘갇힌’ 예술을 밖으로 끌어내 대중에게 돌려준 장본인은 다니엘 뷔렌(Daniel Buren·81). 줄무늬 기둥 작품 ‘두 개의 고원(Les Deux Plateaux)’은 설치 당시에는 옛 궁전과 어울리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30년 넘도록 파리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외지인들에게도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파리 명소로 꼽힌다. 

    뷔렌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다. 1960년대 기존 미술의 권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영미권에서 팝아트로 등장했다면, 프랑스에서는 뷔렌이 주도하는 개념미술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는 ‘미술작품이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리고, 관객이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이라는 당대 인식에 반기를 들었다. 미술관을 ‘부르주아 손에 들린 위험한 무기’라고 비판하며 추상화가 동료들과 ‘베엠페테(B.M.P.T)’라는 예술그룹을 결성, 반(反)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줄무늬 패널을 등에 짊어진 ‘샌드위치 맨’이 거리를 활보하는 1968년 퍼포먼스는 그의 예술 철학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예술에는 현장이 있고, 현장에는 예술이 있다. ‘인 시튀(In Situ)’, 즉 장소특정적 예술 철학이다.

    16개 층 979개 창문에 컬러필름 부착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뷔렌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에 설치된 ‘빛의 관측소’(The Observatory of Light·2016),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에 설치된 ‘아이의 놀이처럼’(Like Child’s Play·2014) 등이 그의 최근 대표작으로 꼽힌다. 

    뷔렌의 2019년 무대는 서울이다. 동아미디어그룹은 내년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한 동아미디어센터를 대형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기로 하고 그 파트너로 뷔렌을 택했다. 이에 뷔렌은 동아미디어센터 16개 층을 8가지 컬러 필름과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폭 8.7cm 띠로 뒤덮은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Les Couleurs au Martin Calme, travail in situ·2019)으로 화답했다. 

    3월 19일 다니엘 뷔렌이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각 층을 돌며 자신의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홍중식 기자]

    3월 19일 다니엘 뷔렌이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각 층을 돌며 자신의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홍중식 기자]

    동아미디어그룹의 사명과 뷔렌의 작품은 묘하게 닮았다. 현재 일민미술관과 신문박물관이 입주해 있는 옛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은 “조선총독부를 감시해야 한다”는 동아일보 창립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뜻에 따라 현 위치에 1926년 세워졌다. 그로부터 74년 후인 2000년 바로 그 옆에 새로 들어선 동아미디어센터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전층 유리 외관을 채택했다.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라는 동아일보 캐치프레이즈를 외관에서부터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이 빌딩에는 ‘꿈을 담는 캔버스’를 모토로 삼은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입주했다. 광화문은 동아미디어그룹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현장이자, 다양한 목소리와 꿈을 표현하는 화폭이다. 뷔렌에게 예술은 미술관이 아닌 세상 속, 즉 현장에 있다. 현장의 빛, 날씨, 계절, 사람들의 참여와 반응에 따라 예술이 다채롭게 완성된다고 믿는 그에게 광화문 한복판의 대형 유리빌딩은 최적의 ‘오픈 캔버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올바른 미디어의 선구자 역할 하겠다”

    1986년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에 설치된 ‘두 개의 고원(Les Deux Plateaux)’. [강지남 기자]

    1986년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에 설치된 ‘두 개의 고원(Les Deux Plateaux)’. [강지남 기자]

    ‘아이의 놀이처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 DB-ADAGP Paris, Image courtesy of 313 Art project]

    ‘아이의 놀이처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 DB-ADAGP Paris, Image courtesy of 313 Art project]

    ‘빛의 관측소’,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 DB-ADAGP Paris, Image courtesy of 313 Art project]

    ‘빛의 관측소’,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 DB-ADAGP Paris, Image courtesy of 313 Art project]

    3월 20일 ‘올해의 현장’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뷔렌은 “동아일보가 100년간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온 언론사라는 얘기를 듣고 이번 프로젝트 제안에 크게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작품 구상을 위해 지난해 여름 서울을 방문한 뷔렌은 광화문 일대를 둘러보고 동아미디어센터 각 층을 돌며 동아일보와 채널A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했다. 그리고 총 21층 건물의 5층부터 20층까지 979개 창문 안쪽에 8가지(노랑, 보라, 주황, 빨강, 초록, 파랑, 진파랑, 분홍)의 컬러 필름을 부착하기로 했다. 폭 8.7cm의 띠를 줄무늬 모양으로 붙인 창문도 중간 중간 배치했다. 이로써 거대한 유리 건물은 밝고 유쾌한 예술 작품으로 변모했다. 뷔렌은 “이 작품이 다채로운 색과 빛으로 서울 도심을 물들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뷔렌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색’도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새벽 나절에는 색색의 호롱불 같고, 미세먼지 많은 날엔 도시가 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봄의 속살 같다. 해가 진 뒤에는 어두운 서울 도심에서 홀로 다채로운 즐거움을 뽐내는 축제의 문 같기도 하다. 작가는 무엇을 의도했을까. 뷔렌은 “내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의 몫”이라며 미소 지었다. 팔레 루아얄의 줄무늬 기둥이 누군가에게는 옛 궁전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행위지만 다른 이에게는 놀이터, 식탁, 웨딩사진 촬영 명소이듯 ‘한국의 색’도 1만 가지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리라. 동아미디어그룹 관계자는 “20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밝은 꿈을 대한민국 심장부인 서울 도심 광화문에서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동아미디어그룹은 이 작품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담아내 올바른 미디어의 선구자 역할을 하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다시 한 번 다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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