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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여성의 쌓인 분노가 너무 컸다?

여성의 쌓인 분노가 너무 컸다?

‘홍대 몰카 유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여성집회가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6월 9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집회. [동아DB]

‘홍대 몰카 유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여성집회가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6월 9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집회. [동아DB]

6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 수많은 여성이 모여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집회를 가졌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서 경찰이 여성 피의자를 1주일 만에 검거하고 구속까지 하자, 남성이 피해자라 빨리 수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벌써 두 달째 이어지는 이 집회는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불꽃페미액션’이라는 여권운동단체 회원들의 상의 탈의 시위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전개되는 강력한 페미니즘 운동이 과거와 다르게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점에서 그들이 왜 이렇게 사회적 관심을 받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첫째, 차별성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기존 페미니즘 운동과는 다르다. 비록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발상의 전환에 따른 고정관념 타파가 놀랍다. 예컨대 경찰관 성비를 여성 90%로 하라는 주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많은 한국 남성이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장관 등의 여성 비율을 30%만 채워도 대단히 높다고 여길 것이다. 아무리 여성 비율을 높게 잡아도 절반 수준인 50%까지 허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이어져왔다. 그런데 90%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성범죄 관련 수사에서 고정관념에 젖은 남성 경찰관의 문제가 심각하다 해도 수사 대부분을 여성에게 맡기자는 발상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여성이 남성에 근접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시각이 새롭다. 새로운 사물이나 생각의 등장은 언제나 화젯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사물을 사용하거나 그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사람은 선구자, 앞선 사람, 깨어 있는 사람 등 찬사를 받기도 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사람이 적잖다고 해도 일부 지지자는 이 순간에도 그들처럼 되기를 꿈꾸고 공부하며 행동으로 옮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비상시국에는 비상체제가 기존 체제를 대체해 권력 이동이 일어나듯, 지금은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 분야를 접수하고 있다. 권력 이동의 원동력은 대중의 높은 반응과 언론의 열띤 취재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높은 반응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일단 사회적 이슈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어젠다)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둘째, 선명성이다. 즉 극도로 강조된 여성 정체성이다. 이는 기존 정체성과는 정반대 속성을 지닌다. 예쁘고 아름답고 다소곳한 속성으로 대별되는 여성성을 폐기하고, 새로운 여성성을 만들고자 함이다. 우리는 여러 정체성을 지니면서 살아간다. 개인의 정체성을 단 하나의 속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사회적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제는 내가 속한 직업적 단체의 주장에 공감해 정부 규제를 비판하다, 오늘은 내가 속한 사회경제적 계층을 대변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자기모순일 수 있지만, 개인 이익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넘어가곤 한다. 그런데 지금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이라는 한 가지 정체성을 옹호하거나 권리 증진을 위해 태어난 투사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자신이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내이며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녔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여성이 아직 찾지 못한 권리를 얻고자 남성의 공격을 방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무찌르겠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그들을 여성 해방을 위한 잔 다르크인 양 추앙한다. 그러한 추앙과 경외의 마음이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지도록 기원한다. 

그들은 자기 몸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를 혐오하고, 자신의 어린 아들을 ‘한남유충’으로 비하하며, 대통령의 설명도 남자의 관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남자 기자의 취재에 강한 경계심을 보이며, 심지어 예수도 남자이기에 거부한다는, 그야말로 여성 대 남성 대결구도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동조하는 남성이라도 동지로 보지 않고, 남성 그 자체가 태생적 한계이므로 자신들과 결코 한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성으로 태어난 데 대한 억울함, 불안,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을 처절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일부 남성이 여성을 위하기는 하지만 이는 관대함이나 아량을 베푸는 것일 뿐, 과연 진심으로 여성을 동등하게 여기는지를 의심한다. 

셋째, 대결성이다. 이는 곧 세력의 결집을 의미한다. 최근 관련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감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간 피해를 받아왔다고 생각한 여성들은 엄청난 울분과 분노를 표출 중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겪은 불편과 공포가 매우 컸으므로 더는 경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세력인 남성들은 과거에 비해 여권이 많이 신장됐는데도 왜 만족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하면서, 여성들이 남성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조롱하기도 하고, 여성성을 상실한 여성을 혐오 덩어리로 취급한다. 

51 대 49의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많은 남성과 여성이 이 싸움에 동참하지 않았다. 소수 페미니스트와 여성의 약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남성이 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장에 나오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남성이다. 소수의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강력한 이슈와 특이한 방법으로 지지 세력을 넓혀 꽤 많은 여성이 집회에 참가하자 반대급부로 적잖은 남성이 비판 또는 적대 세력으로 동참해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DB]

[동아DB]

특이한 것은 남성들이 따로 집회를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집회에 참가하지만, 남성들은 집회 대신 손쉬운 인터넷 댓글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성들의 주장과 약진이 과거보다 강력해져 남성들에게 불안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들의 주장이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지난 칼럼에서 여성운동은 남녀 성대결보다 남녀 성차별 해소 측면으로 이뤄지고 전개돼야 바람직하다고 한 필자의 주장에 그들은 이렇게 항변할 것 같다. 

“양성평등을 외쳐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또 세상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가 남성을 정말 미워한다고 하고 남성 대통령도, 귀여운 아들도 다 꼴 보기 싫다고 말해야 남성들과 사회가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예요. 그리고 현재까지 그것이 맞아떨어지고 있네요.” 

필자가 보기에 지금의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은 일과성으로 그칠 뿐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다수 여성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집회에 참가한 그들도 인생을 좀 더 살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과연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고 한 바람이 다른 방식의 갈등만 빚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남녀 간 갈등과 반목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60~61)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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