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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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문경은·김진 감독 3파전

농구공 대신 머리로 승부…3연패 노리는 모비스, 태풍의 핵 LG, 설욕 벼르는 SK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2-16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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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학·문경은·김진 감독 3파전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과 김진 창원 LG 감독, 문경은 서울 SK 감독(왼쪽부터).

    현역 시절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최고 스타플레이어로 꼽히며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던 허재(50) 전주 KCC 감독이 최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중도 사퇴했다. 2005년 KCC 유니폼을 입고 지도자 길로 들어선 그는 10시즌 동안 챔피언결정전에서 2차례 우승하는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깬 지도자였다. 그러나 우승후보로 꼽혔던 올 시즌 선수들의 잇단 부상 탓에 부진을 거듭하자 결국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승부의 세계는 이처럼 냉정하다. 그렇다면 올해 남자프로농구에서 마지막 순간에 웃을 감독은 누구일까. 김진(54) 창원 LG 감독, 문경은(44) 서울 SK 감독은 설욕을 벼르고 있고, 유재학(52) 울산 모비스 감독은 한국 남자프로농구 역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노리며 수성을 외치고 있다.

    ‘2014~2015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종반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세 감독의 얽히고설킨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SK와 모비스가 시즌 초반부터 양강 구도를 형성하던 차에 중반기까지 하위권에 처져 있던 LG가 새해 들어 한 달 넘는 기간에 11연승을 내달리는 등 놀라운 상승세를 자랑하며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아직 시즌이 채 끝나지 않았고 농구가 워낙 변수가 많은 종목이긴 하지만, 현재 전문가 대부분은 올 시즌 패권이 이 세 팀 중 한 팀에게 돌아갈 것으로 내다본다.

    10개 구단이 팀당 54경기씩 정규리그를 치르는 남자프로농구는 6개 구단이 플레이오프(PO)에 올라 최종 챔피언을 뽑는다. 현 6강 PO 대진은 정규리그 우승팀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주고자 4강전에서 4위-5위 승자와 만나도록 짜여 있다. 정규리그 2위는 3위-6위 승자와 4강에서 맞붙는다.

    SK와 모비스가 정규리그 1, 2위를 가져갈 것이 유력한 상태에서 LG의 최종 순위에 따라 6강은 물론 4강 PO 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SK와 LG는 모비스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2011~2012시즌 감독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문경은 감독은 2012~2013시즌 정규리그 챔피언에 올랐지만 당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던 유재학 감독과 치른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 전패를 당하며 정상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사제의 인연에서 라이벌로 유재학-문경은

    2013~2014시즌 김진 감독도 유 감독에게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1~2002시즌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스)을 이끌고 통합우승을 맛봤던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개인 2번째이자 1997년 창단한 LG팀 역사상 첫 챔프전 우승에 도전했지만 정규리그 2위 유 감독과 만나 2승4패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 김 감독이나 문 감독은 이번 PO가 지난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는 복수혈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유 감독은 현역 시절 ‘가드의 교과서’로 불렸다. 기아자동차 시절 28세에 무릎 부상으로 아쉽게 조기 은퇴했다. 훗날 그는 “남들보다 일찍 은퇴한 게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유 감독은 현역 생활의 아쉬움을 지도자로 풀어낸 경우다.

    연세대 82학번인 유 감독은 은퇴 후 1991년 모교에 코치로 부임했다. 당시 연세대엔 90학번 문경은이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문경은은 대학 시절부터 유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프로 무대에서도 계속됐다. 문경은은 서울 삼성에서 2001~2002시즌 인천 SK 빅스로 이적했고 빅스엔 유 감독이 있었다. 유 감독은 1999~2000시즌부터 최종규 전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을 거쳐 감독 자리에 올랐다. 36세 나이에 첫 지휘봉을 잡았으나 초보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늘 중·하위권에 머무르던 전자랜드를 2003~2004시즌 사상 첫 4강 PO로 이끌었고, 그때 선수단의 중심축이 바로 문경은이었다.

    유 감독과 문 감독은 젊은 나이에 지도자로 데뷔해 사령탑에 올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 감독은 2011~2012시즌 감독대행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36세에 시작한 유 감독보다는 늦었지만 문 감독이 팀 수장에 처음 오른 것도 41세였다.

    문 감독은 요즘도 종종 2012~2013시즌 챔피언결정전을 떠올리며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다. 정식 사령탑으로 데뷔한 그 시즌 문 감독은 정규시즌에서 이렇다 할 고비 없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모비스와의 챔프전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당시 챔프전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전력은 떨어지지만 벤치파워에서 앞서는 모비스의 우세를 점쳤고, 결국 초보 사령탑 문 감독은 백전노장 유 감독에게 무릎을 꿇었다. 문 감독은 “정말 많은 공부가 됐다. 만약 그때 내가 챔프전 우승까지 했더라면 감독 생활이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를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문 감독은 “스승이자 선배인 유 감독님과 다시 한 번 챔프전에서 맞붙고 싶다”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재기의 칼을 가는 김진

    2003~2004시즌, 대구 동양의 김진 감독은 ‘40대 젊은 지도자’의 기수였다. 고려대 80학번으로 당시 42세였던 그는 ‘82학번 5인방’으로 불린 전창진 감독(이하 당시 소속· TG), 유재학 감독(전자랜드), 추일승 감독(KTF), 이상윤 감독(SK), 정덕화 감독(SBS)과 함께 40대 초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 감독은 ‘젊은 피’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합리적 성품에 지략까지 갖춘 그는 2001~ 2002시즌 동양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지휘했다.

    김 감독은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야오밍, 왕즈즈가 버티던 중국을 결승에서 꺾는 신화를 만들어내며 금메달을 일궜다. 김 감독이 평생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바로 부산 대회 금메달이다.

    김 감독은 40대 초반 시절 프로농구를 주름잡는 명장이었지만 이후 한동안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재기의 칼을 갈았고, 2002~2003시즌 이후 11년 만인 지난 시즌 LG를 이끌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모자란 게 무엇인지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고, 반성도 많이 했다”며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문 감독과 마찬가지로 전력상 우위에 있다는 평가 속에서도 2승4패로 모비스에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김 감독이 주춤하는 사이 유 감독은 한국 남자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거듭났다. 2004년부터 모비스를 지휘하고 있는 유 감독은 최근 2시즌 연속 모비스를 정상으로 이끌며 신선우 전 현대 감독, 전창진 부산 KT 감독을 제치고 역대 최초로 4번째 챔프전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감독이 됐다. 김 감독이 부산 대회 지휘봉을 잡아 20년 만에 금메달을 이끌었다면, 유 감독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사령탑을 맡아 12년 만에 한국 우승을 지휘했다. 둘은 12년의 세월 속에 나란히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농구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썼다. 그러나 한국 남자프로농구 무대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김 감독은 2014~2015시즌 PO를 통해 그동안 자신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후배 유재학’을 다시 넘어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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