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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복 많은 고양이, 슈페트를 아시나요?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유산 중 얼마나 상속받을까

세상에서 가장 복 많은 고양이, 슈페트를 아시나요?

슈페트 인스타그램(@choupettesdiary)

슈페트 인스타그램(@choupettesdiary)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가 2월 19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숨졌다. 패션 불모지 취급을 받던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 샤넬, 이탈리아 펜디 등 패션 강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를 맡았다는 점 때문에 추모 기사가 많이 쏟아졌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그의 여덟 살짜리 반려묘 슈페트의 추모 글이었다. “위로의 말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차디차게 식었다 지금은 완전히 부서진 심장으로 저는 애도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여러분의 친절한 말씀과 호의에 힘입어 아빠(라거펠트) 없는 삶에서도 긍정적 의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검은 망사베일을 쓴 슈페트의 사진과 함께 슈페트의 인스타그램(@choupettesdiary)에 오른 이 글에는 눈물과 웃음이 함께 담겼다. 긍정적 자세로 미래를 맞겠다는 뜻의 영어숙어 ‘to put my best foot(사람의 발) forward’를 ‘to put my best paw(네 발 동물의 발) forward’로 살짝 비틀어 썼기 때문이다. 

물론 한낱 암고양이의 인스타그램이 눈길을 끈 것은 이런 말장난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추정한 라거펠트의 유산 2억 달러(약 2230억 원)를 물려받게 됐기 때문이다. 라거펠트는 평생 독신으로 산 데다 막내로 태어나 장수했기에 직계 비속이나 존속, 형제자매가 없다. 2011년부터 동거한 슈페트가 유일한 가족인 셈이다. 라거펠트는 2015년 프랑스 신문 ‘르피가로’와 인터뷰에서 “슈페트가 유산 상속자(heiress)가 될 것”이라며 “프랑스법은 동물에게 유산을 상속할 수 없게 돼 있지만 나는 법적으로 독일인이라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슈페트가 유일한 상속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복 많은 고양이’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슈페트가 나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라던 생전 라거펠트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의 뮤즈가 된 고양이   

슈페트의 인스타그램에 오른 검은 망사베일 차림의 슈페트 사진과 글(왼쪽). 슈페트의 원래 주인이던 샤넬의 남자 전속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 [슈페트 인스타그램@choupettesdiary, 위키피디아]

슈페트의 인스타그램에 오른 검은 망사베일 차림의 슈페트 사진과 글(왼쪽). 슈페트의 원래 주인이던 샤넬의 남자 전속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 [슈페트 인스타그램@choupettesdiary, 위키피디아]

프랑스어로 여자아이의 머리 타래를 뜻하는 슈페트는 원래 샤넬의 남자 전속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의 새끼고양이였는데, 2011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 라거펠트가 키우게 됐다. 해외출장을 간 지아비코니 대신 2주간 슈페트를 돌보게 된 라거펠트가 “미안하지만 슈페트는 내 걸세”라고 선언하자 지아비코니가 웃으며 선물했다고 한다. 

연한 갈색의 귀 부위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얀 털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슈페트는 이후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핸드백이나 의상 색깔에 영감을 준 고양이로 유명해졌다. 화보집을 촬영했을 뿐 아니라, 일본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에무라 슈의 뷰티제품과 독일 자동차 복스홀의 광고모델로 나서며 2013년 한 해에만 300만 달러(약 33억5340만 원) 넘는 광고 수입을 올렸다. 고양이 사료 광고모델 제안도 들어왔는데 라거펠트가 “나는 상업적이지만 슈페트는 그렇지 않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라거펠트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내 생애 결혼이란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와 사랑에 빠질 줄 몰랐다”며 슈페트를 스웨덴 출신 영화배우로 우아함의 상징이던 그레타 가르보에 비견했다고 하니 자존감 하나는 짱이지 싶다. 

당연히 슈페트의 일상 또한 상상을 불허한다. 애묘인은 고양이를 키우는 자신들을 ‘집사’라 부르곤 하는데 슈페트는 진짜 집사를 여럿 둔 고양이기도 하다. 별도의 경호원 1명 외에도 2명의 전용 메이드가 슈페트를 돌보고 가꿔준다. 이들 메이드는 슈페트 명의의 별도 회사까지 관리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슈페트 명의의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애슐리 추딘은 이번 추모 글 때문에 패션잡지와 인터뷰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슈페트는 심지어 라거펠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은쟁반으로 최고급 식사를 즐긴다. 파리 유명 요리사에게 의뢰한 레시피에 따라 조리된 킹크랩과 훈제 연어, 캐비아가 혼합된 전용 사료만 먹는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애나 윈터가 “다시 태어나면 슈페트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을 정도다. 

과연 고양이에게 그토록 엄청난 유산 상속이 가능할까. 영국 ‘이브닝스탠더드’는 2월 24일 법조계 분석을 토대로 슈페트의 유산 상속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법무법인 서상의 이정환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이나 프랑스에선 인간이 아니면 유산 상속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독일, 영국, 미국에선 가능하다. 신탁재단에 자산을 위탁하고 그 관리를 맡기는 방식으로 허용된다. 여기에 해당 동물 대신 의사결정을 내릴 위탁인과 이를 대조검토할 변호사까지 엄격한 법적 장치가 마련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유산을 물려받는 백만장자 애완동물은 생각보다 많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여러 언론이 보도한 ‘애완동물 부자 리스트(Pet Rich List)’에 따르면 1위를 차지한 독일산 셰퍼드 군터 4세의 재산은 3억7500만 달러(약 4192억5000만 원)에 이른다. 1991년 카를로타 리벤슈타인이라는 독일 백작부인이 숨지면서 애완견 군터 3세(군터 4세의 아버지)에게 남긴 8000만 달러의 유산이 4배 가까이 불어난 결과라는 설명까지 등장한다.


  ‘백만장자 동물 클럽’ 존재하지만 가짜도 많아   

‘백만장자 동물 클럽’ 회원으로 인터넷상에 
소개되는 동물들. 왼쪽부터 독일 셰퍼드 군터 4세, 
‘뚱한 고양이(grumpy cat)’ 타르타 소스, 
스카츠 덤피 종 암탉 기구, 곰 ‘바트 더 베어 2’. 
이 중 군터 4세와 기구는 허구의 동물이다. [데일리메일]

‘백만장자 동물 클럽’ 회원으로 인터넷상에 소개되는 동물들. 왼쪽부터 독일 셰퍼드 군터 4세, ‘뚱한 고양이(grumpy cat)’ 타르타 소스, 스카츠 덤피 종 암탉 기구, 곰 ‘바트 더 베어 2’. 이 중 군터 4세와 기구는 허구의 동물이다. [데일리메일]

2위는 슈페트 같은 고양이다. 특유의 시무룩한 표정으로 ‘뚱한 고양이(grumpy cat)’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미국 암고양이 타르타 소스다. 올해 여섯 살인 타르타 소스는 자수성가로 부자가 됐다. 앞니가 아랫니보다 튀어나온 앞니반대교합과 왜소증이 결합해 특유의 귀여운 표정을 짓는 이 고양이는 2012년 생후 5개월 만에 인터넷 스타가 되면서 각종 캐릭터 상품과 영화(‘뚱한 고양이의 가장 끔찍한 크리스마스’) 출연으로 지금까지 1억 달러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이 리스트에서 350만 달러의 재산으로 13위에 오른 슈페트가 유산 2억 달러를 전액 물려받게 되면 ‘세계 최고 부자 고양이’ 타이틀은 슈페트 차지가 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만큼은 아직 타르타 소스에게 뒤진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만 놓고 보면 2월 26일 현재 타르타 소스가 240만 명으로 슈페트의 29만5000명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유명 인사의 애완동물이 그 뒤를 잇는다.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반려묘 올리비아 벤슨(9700만 달러)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반려견 4마리(3000만 달러)가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 개나 고양이지만 의외로 닭과 곰도 있다. 5위에 오른 암탉 기구(Gigoo)와 10위에 오른 ‘바트 더 베어 2’다. 영국 출판업계 거물이던 마일스 블랙웰이 2001년 급서하면서 1500만 달러의 유산을 받은 기구는 유독 다리가 짧고 통통해 애완용으로 많이 키우는 스카츠 덤피 종의 암탉이라고 한다. 또 올해 18세가 된 ‘바트 더 베어 2’는 타르타 소스처럼 자수성가형이다. 미국 유타주에 사는 조련사 부부에게 길들여져 ‘닥터 두리틀 2’ 같은 영화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 출연으로 600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다. 

2월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슈퍼리치 동물에 대한 보도가 허구이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군터 4세에 관한 이야기는 독일의 인도적 지원단체 ‘군터재단’이 홍보를 위해 지어낸 허구의 내용이 와전되고 계속 부풀려진 경우다. 암탉이 1500만 달러를 물려받았다는 것 역시 가짜뉴스다. 마일스 블랙웰의 7000만 파운드 유산으로 세워진 비영리법인 블랙웰재단은 “동물 복지에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특정 암탉에게 유산이 돌아간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라거펠트의 유산이 모두 슈페트에게 갈 것이란 관측도 과장됐다. 라거펠트는 지난해 4월 프랑스 잡지 ‘뉘메로’와 인터뷰에서 “슈페트는 여러 유산 상속자 중 하나”라며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밝힌 바 있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호 (p8~10)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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