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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륜성왕, 한국에서 현시하다

‘간다라 불교’ 융성의 주역 카니슈카 왕의 희귀석상 발견

전륜성왕, 한국에서 현시하다

[김도균]

[김도균]

“이 아이가 속세에 머물면 장차 위대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요, 출가하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깨달은 자)가 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설화에서 히말라야산의 성인 아시타가 남긴 예언으로 소개되는 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전륜성왕은 산스크리트어의 차크라바르틴 또는 차크라바르티라쟈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도 힌두신화에 등장하는 이상적 왕으로, 하늘에 있는 통치의 수레(차크라)를 돌려 지상의 모든 나라를 통일하고 평화롭게 통치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인도 역사상 차크라바르틴을 자처한 왕은 여럿 있었지만 불교신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불린 왕은 둘이다. 그 첫째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왕이다. 인도대륙 최초로 통일왕조를 수립한 마우리아왕조의 3대 왕으로 불교를 국교로 삼아 불교 융성의 토대를 이룩했다. 

아소카는 할아버지 찬드라굽타 시대부터 시작된 정복사업을 완수한 뒤 전쟁과 살육에 대한 환멸에 빠져 불교에 귀의했고 자비와 불살생, 비폭력의 이상을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한문으로 번역된 불경에 아육왕(阿育王) 또는 아수가(阿輸迦)로 등장하는 그는 석가모니 사후 그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통일하고자 모두 4차례 이뤄진 불경 결집 중 제3차 결집을 후원한다. 또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제국 각지에 8만4000개의 스투파(불탑)를 세워 인도제국과 주변국에 불교를 대대적으로 전파한 성왕(聖王)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마우리아왕조는 그의 사후 47년 만에 멸망하고, 이후 인도대륙은 이민족에게 분할 점령된다. 특히 인도 북서쪽,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와 파키스탄 북부의 비옥한 일대를 일컫는 간다라지역에는 그리스계 왕조와 중앙아시아계 왕조가 번갈아 들어서면서 동서양 융합이 일어난다. 



바로 간다라 불교미술의 탄생지다. 불상은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 간다라와 인도 북부 마투라에 처음 등장하는데, 대승불교의 탄생 및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 

간다라지역을 통치한 왕조 가운데 최대 판도의 제국을 건설한 왕조가 중국 서북부에서 출원한 유목민족인 월지족 계열이 세운 쿠샨왕조다. 1~2세기 쿠샨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끈 카니슈카 왕은 아소카 왕처럼 불교에 심취해 제국 곳곳에 불탑과 사찰을 건립하고 불상을 퍼뜨렸다. 한자로 가니색가(迦膩色迦)로 표기된 카니슈카는 아소카 왕의 제3차 결집 이후 300여 년 만에 이뤄진 제4차 결집도 후원해 불경의 집대성을 완성했다. 

대승불교의 초기 이론가이자 마명(馬鳴)이란 한자명으로 유명한 아슈바고샤는 카니슈카 왕이 불교국가인 인도 동북부 마가다왕국을 복속시키면서 배상금 대신 데려왔다는 전설의 고승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행적을 서사시로 읊은 ‘붓다차리타(불소행찬)’와 대승불교의 개론서로 유명한 ‘대승기신론’의 저자로 추정된다. 인도 불교가 중국과 그리스 문명권인 파르티아까지 전파되는 세계화가 이뤄진 것도 카니슈카 왕 때 일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제2의 아소카’로 불리며 두 번째 전륜성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카니슈카 왕 재위기에 제작된 간다라 불상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카니슈카 왕의 조각상은 드물다. 세계적으로 파키스탄 카불박물관과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 인도 마투라박물관 3곳에 카니슈카 왕의 입상이 소장돼 있지만 상반신이 없거나 목 윗부분이 훼손돼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후대에 간다라지역을 정복한 왕조들이 이전 왕조 군주의 조각상을 대거 파괴했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의 용안을 뵙습니다”

그런데 카니슈카 왕의 얼굴이 보존된 희귀한 전신상이 발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복합문화공간 인터아트채널에 전시 중인 간다라시대 석조상이다. 높이가 120cm인 이 석조상은 지난해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알렉산더 대왕이 만난 붓다 : 간다라 미술展’에 전시됐던 파키스탄 출신 개인 소장자의 작품이다. 당시에는 ‘쿠샨왕조 시대의 귀족’으로만 소개됐다. 

하지만 원로미술사가인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그 조각상이 부처에 버금가는 비범한 인물상임을 간파했다. 조각상 전체에 불상에서나 볼 법한 영기문(만물의 영기화생 원리를 식물과 동물 형상으로 표현한 문양)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먼저 해당 인물의 머리카락이 부처의 머리카락과 같은 나발(螺髮) 형식으로 돼 있다. 나발은 소라고둥처럼 동그랗게 말린 머리카락을 지칭한다. 서양미술사학자들은 간다라 불상의 나발을 보고 그리스 조각의 곱슬머리를 흉내 낸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부처의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는 32상 80종호의 특징을 표현한 것으로 마투라 불상에서도 발견된다. 


키나슈카 왕으로 추정되는 간다라 시대 석상(왼쪽)과 그 얼굴 및 왼손에 든 연꽃을 확대한 사진. [김도균]

키나슈카 왕으로 추정되는 간다라 시대 석상(왼쪽)과 그 얼굴 및 왼손에 든 연꽃을 확대한 사진. [김도균]

또 조각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지물(持物·attribute)이 범상치 않다. 지물은 신화 속 주인공의 힘을 상징하는 특정 사물을 말한다. 헤르메스 하면 지팡이와 날개 달린 신발, 관음보살 하면 정병과 연꽃이 등장하는 식이다. 문제의 간다라 조각상의 오른손엔 연꽃으로 보이는 꽃이 들려 있고, 왼손은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칼집 형태로 봐 칼을 쥐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칼은 제왕을, 연꽃은 자비를 상징한다. 

셋째로 인물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와 목걸이, 칼집 장식과 신발에도 다양한 영기무늬가 풍성하게 표현돼 있다. 특히 만물이 영기화생하는 근원으로서 동그란 보주(寶珠)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친타마니’라고 부르는 보주는 본디 석가모니 부처의 지물로, 만물을 생성시키는 생명력의 원천으로 표현된다. 조각상에 무수히 등장하는 보주 문양은 석가모니에 필적할 만한 공력을 지닌 인물임을 상징한다는 것이 강 원장이 내린 결론이다. 

그런 인물로는 과연 누가 있을까. 속세에 머물면서 부처에 필적하는 존재, 바로 전륜성왕이다. 해당 석상은 간다라 석상이다. 따라서 카니슈카 왕일 개연성이 크다.


간다라 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

파키스탄 카불박물관(왼쪽)과 인도 마투라박물관 소장의 카니슈카 왕의 석상. 모두 얼굴이 남아 있지 않지만 특히 카불박물관 석상의 신발과 하의가 인터아트채널에서 전시 중인 석상과 유사하다. [사진 제공 · 강우방]

파키스탄 카불박물관(왼쪽)과 인도 마투라박물관 소장의 카니슈카 왕의 석상. 모두 얼굴이 남아 있지 않지만 특히 카불박물관 석상의 신발과 하의가 인터아트채널에서 전시 중인 석상과 유사하다. [사진 제공 · 강우방]

강 원장은 카니슈카 왕과 관련된 미술자료를 추적하다 카불박물관이 소장한, 하반신만 남은 카니슈카 왕 석상의 형태와 해당 석상이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발 복사뼈 부분의 둥그런 보주 문양이 흡사했다. 


석상의 받침대 왼쪽에 새겨진 기호(왼쪽). 옛 소련 출신 고고학자 키말 아키셰프가 분류한 쿠샨왕조 7명 왕의 상징기호표에서 카니슈카 왕에 해당하는 기호와 일치한다. [김도균, 사진 제공 · 강우방]

석상의 받침대 왼쪽에 새겨진 기호(왼쪽). 옛 소련 출신 고고학자 키말 아키셰프가 분류한 쿠샨왕조 7명 왕의 상징기호표에서 카니슈카 왕에 해당하는 기호와 일치한다. [김도균, 사진 제공 · 강우방]

그런데 조각상을 받치는 석대의 왼편에서 특이한 상징기호가 발견됐다. 명문이라고 하기엔 기호가 2개밖에 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도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현지 간다라미술연구자로 활동중인 박교순 박사가 그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옛 소련 출신 간다라미술 연구자인 키말 아키셰프(1924~2003)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일대의 발굴조사를 토대로 쿠샨왕조 왕 7명의 상징문양을 분류한 표에서 해당 기호를 찾아냈다. 카니슈카 왕의 경우 5개의 상징기호가 사용됐는데, 그중 2개와 일치한다는 것.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지만 개인 소장 석상 가운데 카니슈카 왕의 석상이 몇 점 더 있습니다. 이탈리아 소장자의 카니슈카 석상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강 원장이 입증한 이번 석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카니슈카 왕 시대의 금화. 한쪽 면엔 카니슈카 왕(위), 다른 면엔 석가모니 부처가 부조돼 있다. [사진 제공 · 강우방]

카니슈카 왕 시대의 금화. 한쪽 면엔 카니슈카 왕(위), 다른 면엔 석가모니 부처가 부조돼 있다. [사진 제공 · 강우방]

그렇지만 카니슈카 왕의 석상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고개가 더 있다. 카니슈카 왕은 금화를 많이 찍어냈는데 한쪽 면에는 부처의 전신, 다른 쪽 면에는 자신의 전신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동전에 등장하는 카니슈카 왕은 풍성한 턱수염을 자랑하는 반면, 석상의 인물은 섬세한 콧수염을 가진 모습이다. 또 카니슈카 왕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경계에서 출원한 월지족 출신인데, 석상이나 동전의 인물은 서구적 외모를 하고 있다. 

강 원장은 “고대 왕은 신이나 부처와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이었다”며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영화(靈化)된 형태, 이상적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간다라 불상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형상화된 것은 사실주의적 서구 미술의 영향보다 영기화생의 원리에 따라 이상적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간다라 불상 제작에 그리스 출신 예술가들이 참여하다 보니 그리스적 양식이 가미될 수는 있지만 그 제작 원리는 마투라 불상과 똑같이 영기화생의 원리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18.12.14 1168호 (p66~68)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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