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SK의 돌풍이 거세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꼴찌 다툼을 점친 야구인들이 대다수. 열 명 중 다섯은 아직 쌍방울티를 벗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SK를, 나머지 절반은 구대성까지 일본(오릭스 블루웨이브)으로 떠나버린 점을 들어 한화를 유력한 꼴찌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 달을 넘긴 그라운드는 이변의 연속을 넘어 아예 SK-한화의 약진으로 굳어졌다. 원인 없는 결과 없는 법. 2약으로 여긴 두 팀이 승승장구 행진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살펴보자.
한층 다져진 닮은꼴 마운드
야구의 절반은 투수놀음이다. 일단 선발 로테이션만 안정되어도 감독들은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 승률인 5할 승부를 충분히 꿈꿔볼 만하다. SK와 한화의 4월 약진의 원동력도 우선 투수진의 안정에 있다.
먼저 한화는 시즌 전 우려한 변수들을 모두 없앴다.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훈련 부족이 예상되던 송진우, 지난해 초 오른쪽 어깨수술 뒤 1년여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이상목 등이 확신할 수 없는 물음표 전력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코칭스태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거뜬히 제 몫을 해내었다. 송진우가 2승 1패에 방어율 3.57, 이상목이 4승 1패에 방어율 3.66의 빼어난 성적으로 마운드를 달구는 중. 특히 송진우는 삼성의 이강철과 현역 투수 개인 통산 최다승을 놓고 경쟁이 한창이다. 올해들어 송진우가 3승을 추가해 136승이 됐고 이강철은 구원승을 올려 134승이 된 상태. 여기에 2년차 투수 조규수(3승3패) 역시 한결 업그레이드한 투구 패턴으로 한몫 거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놀라운 건 역시 노장 한용덕의 재기. 지난해 중간계투요원으로 뛰던 그가 ‘땜빵’ 선발을 맡아 이 정도 활약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한화는 한용덕과 이상목이 다승 선두권 그룹(이상 5월7일까지의 성적)을 형성하였고 송진우, 조규수가 이를 받치는 형태다. 여기에 ‘까치’ 김정수까지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걸고 투혼을 불사른다.
SK 투수진도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마무리, 선발을 번갈아 뛰던 좌완 이승호가 올해는 선발로만 뛰고 있어 한결 안정감을 더해주고 있고, 여기에 김원형, 김희걸, 정수찬과 외국인 선수 에르난데스가 마운드를 책임진다.
구원 투수진 또한 다른 팀과 비교하면 한단계 위라는 평가. 특히 상대 타자와 경기 상황에 따라 셋업과 최종 마무리로 번갈아 등판하는 ‘조(규제)-조(웅천) 브라더스’의 위력은 대단하다. 여기에 왼손 오상민, 언더핸드스로 정대현 등이 중간계투진으로 5분 대기조를 형성한다. 재정적으로 탄탄하다는 그룹의 아낌없는 투자가 조웅천, 조규제의 영입 등에서 볼 수 있듯 금세 효과를 보았다. SK가 이들 둘에게 들인 돈만 20억원이다.
SK가 이미 시드니 전지훈련 때부터 기대를 걸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채종범. 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입단한 프로 2년차 외야수.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플로리다 마무리 훈련,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 경남 남해 캠프 등에서 쉼 없는 러닝과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채종범은 최근 4할대의 타격을 유지하는 등 이 부문 1위를 휩쓸고 있다. 타격 센스, 임팩트 순간의 손목놀림 등 톱타자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또한 퇴출 용병이 속출하는 다른 팀에 비해 외국인 선수 3명이 모두(에르난데스, 브리토, 에레라)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도 큰 강점.
SK가 2년차 선수의 깜짝 활약에 탄력을 받는 형국인 반면, 한화는 올드 스타 장종훈의 확실한 부활에 타선 전체가 살아났다. 지난 95년 3할2푼6리의 타율을 기록한 뒤 5년간 3할 문턱에 가본 적이 없던 장종훈의 최근 타격은 ‘회춘’이라는 말을 실감케 할 정도.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장종훈이 이렇듯 부활할 수 있던 이유로 심리적 안정감을 든다. 지난해 말 구단과 3년간 7억원에 다년 계약을 맺음으로써 트레이드 위험 없이 꾸준히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그동안 가장 문제시해 온 상체의 앞쏠림현상을 고쳐 타격 밸런스를 바로잡은 것도 큰 이유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왕을 따내던 1990~92년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홈런왕도 다시 한번 노려볼 만하다는 얘기.
한편 이영우, 송지만, 임주택 등 주전들이 초반에 부상을 당했음에도 김수연이라는 새 별이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는데다, 오랫동안 부진하던 김종석이 새롭게 타격에 눈을 떠 상승세의 뒤를 받치고 있다.
체력 · 얇은 선수층이 ‘아킬레스건‘
두 팀의 공통점은 우선 팀 컬러를 바꿨다는데 있다. 김영덕, 이희수 감독으로 대표된 한화의 관리야구가 과연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와 맞을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진 것도 사실. 또 창단 2년째를 맞은 SK에 쌍방울 시절의 패배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전지훈련에서 한화는 철저한 실전 위주의 훈련을 해왔다. 그것이 이광환 감독의 훈련 스타일이었고 다행스럽게도 이탈자는 없었다. 오전 훈련, 오후 경기를 통해 시범경기 시작과 동시에 실전을 방불케 하는 투-타 밸런스를 보여온 팀이 바로 한화다. 자율야구는 일단 연착륙한 셈. 그러나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앞으로의 걱정거리기도 하다. 체력훈련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팀들보다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 장마를 거쳐 땡볕 혹서기로 접어들 무렵 한화의 투-타 운용을 조심스레 지켜볼 필요가 있다.
SK 역시 확 달라졌다. 요즘은 그 앞에서 쌍방울 얘기를 하기가 곤란할 정도. 지난해만 해도 1∼2점 차를 뒤집지 못하고 패하거나 경기 후반 역전패를 당하는 일이 허다해 무기력 증세를 보인 SK는 선수단 전체가 ‘한번 해보자’는 기세로 충만하다. 4강 도약도 노려볼 만하다는 분위기. 남은 문제는 선수층이 너무 얇다는 데 있다. 주축 선수 중 2∼3명만 부상당하면 얼마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SK는 시즌 내내 현금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 보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름을 지켜봐야 한다. 두 팀의 상승세가 메뚜기 한철로 끝날지, 아니면 위대한 반란으로 자리잡을지는 좀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 18년 역사가 증명하듯 모든 평가는 여름 혹서기 후로 미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