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 변호사, 왼쪽에서 두 번째)가 3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양수산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완익 특조위원은 “정부 시행령안 대로라면 특조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대로 특조위를 구성하면 특별법 제정 취지에 맞는 활동은커녕 오히려 독립적 운영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이 도대체 어떻기에 특조위가 예정에도 없던 전원회의까지 열어 철회를 의결해야 했을까.
125명과 90명의 차이
특조위는 2월 17일 전체회의에서 자체적으로 시행령안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그러나 해수부가 3월 27일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특조위안과 큰 차이가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위원회 직원 정원과 직제의 차이. 특조위는 125명을 정원으로 제시했지만, 정부안은 90명으로 대폭 축소했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 제15조 1항은 ‘위원회에 두는 직원의 정원은 120명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특조위는 이를 근거로 상임위원 5명을 직원과 구분해 ‘직원 정원 120명+상임위원 5명=125명’을 총정원으로 했다. 이에 반해 해수부 시행령은 위원과 직원을 하나로 묶었다. 해수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제8조 1항은 ‘위원회에 두는 공무원의 정원은 위원장, 부위원장 등 상임위원을 포함해 120명으로 한다. 다만, 이 영(令) 시행 시 위원회에 두는 공무원의 정원은 별표와 같다’고 돼 있다. 본문에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 정원을 120명으로 명시했지만, 별표에서는 정원을 90명으로 줄여놓았다. 더욱이 상임위원을 정원에 포함함으로써 사실상 직원의 정원을 85명으로 줄인 것과 같다.
해수부 관계자는 “특조위가 90명으로 출범하더라도 활동하면서 필요 인력을 더 충원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원을 줄인 것은 특조위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한 세월호 특별법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그런데 상임위원은 법 통과 넉 달 뒤인 3월 5일 임명장을 받았고, 비상임위원은 3월 9일에야 임명장을 받았다. 위원 구성은 마쳤지만 4월 초까지 시행령이 통과되지 않아 직원 구성을 못한 특조위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4월 중순 시행령이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통과돼도 특조위가 정원에 맞춰 인적 구성을 마치려면 최소한 두 달 이상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특조위 관계자는 “시행령이 4월 중순 통과되면 4월 말쯤 직원 채용 공고를 내고 서류 접수와 심사 및 면접 등에 한 달 가까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새로이 충원한 직원의 경우 조사 업무 등에 대한 교육과 워크숍은 필수적이다. 즉 시행령이 4월 중순 통과돼도 특조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6월 중순쯤은 돼야 한다는 것.
그런데 만약 해수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처럼 90명 정원으로 특조위가 출범하면 충원은 아무리 빨라도 가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때쯤이면 특조위의 활동 기간이 얼마 남지 않는다. 더욱이 충원을 위해 시행령까지 개정해야 한다. 부처 협의로 시행령안을 가다듬고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치려면 시행령 개정이 올해 안에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특조위 직원을 추가로 뽑으려다 특조위 활동 기간이 끝날 수 있는 것. 특조위 관계자는 “충원은 이론상 가능할 뿐 활동 기간이 정해진 특조위 처지에서는 정부가 시행령안에서 제시한 90명으로 활동을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소위원회 무력화 시도
정원의 차이는 직제 구성과 연관이 있다. 특조위 시행령안은 3국 1담당관 10과 3팀 체제. 그에 반해 정부안은 1실 1국 3담당관 5과로 구성돼 있다. 정원과 직제의 차이는 직급 차이로도 이어졌다. 특조위는 중하위 직급에서 민간 출신과 파견 공무원 출신 비율을 비슷하게 유지했지만, 해수부 시행령에서는 파견 공무원은 6급 중심, 민간 별정직은 7급 중심으로 인원을 배치했다. 과거 정부에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특조위 시행령안은 업무 분장에 따른 소위의 책임성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직제와 직급을 대폭 축소한 정부안은 특조위를 실무기구 수준으로 기능과 소임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과 직제의 차이는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된 소위원회(소위)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16조는 △진상규명 △안전사회 △지원 소위원회 구성을 규정하고 있다. 소위원장은 상임위원 중에서 위원장이 지명(제16조 2항)하고, 소위 조직 및 운영은 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돼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이 같은 소위 구성을 규정한 것은 소위원장 임명권을 갖는 특조위원장이 실질적으로 특조위를 지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뿐 아니라 소위원장 아래 진상규명국, 안전사회국, 지원국을 두고 그 아래에 각각 3개 또는 4개 과를 두게 함으로써 소위원장이 사실상 조직을 장악해 업무를 주도할 수 있도록 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특조위를 소위 중심으로 운영하면 소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원 중심의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며 “소위원장이 관련 국의 고유 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사무처는 말 그대로 행정사무를 지원토록 하는 것이 특조위 시행령안에 담긴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안은 사무처장 아래 기획조정실과 진상규명국, 안전사회과, 피해자지원점검과를 두게 했다. 즉 소위 중심이 아닌 사무처장 주도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직제를 축소했다. 더욱이 세월호 특별법에서 소위를 구성토록 한 안전사회와 지원 소위는 정부안에서는 10여 명 수준의 ‘과’ 단위로 크게 줄였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월 1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세월호) 특별법은 ‘재해 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위원회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 시행령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해양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한정했다’며 ‘안전사회 업무의 축소는 명백히 특별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특조위 정원을 축소하고 사무처장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도록 직제를 짠 것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당시 위원 구성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정부가 실무진 구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특조위를 무력화하기 위함이라는 비판 여론이 많다. 한 특조위원은 “(특조위) 위원 구성에 관여하지 못한 정부가 시행령안을 통해 사실상 위원회를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조위는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다. 희생자가족대표회의가 추천한 상임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여당 추천 상임위원이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야당 추천 상임위원이 진상조사 소위원장을 맡도록 여야가 합의한 것. 그러나 정부안에 따르면 여당이 추천한 사무처장의 지휘를 받아 해수부에서 파견한 고위공무원이 기획조정실장으로 특조위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 이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때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임위원 구성에 조사 대상인 정부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것과 크게 배치된다. 특조위가 정부안에 대해 “소위원장을 직원에 대한 지휘 감독 권한이 없는, 심의만 하는 허수아비로 전락시켰다”고 반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부안은 기획조정실장을 보좌할 기획총괄 담당관까지도 해수부 출신이 맡게 했다. 더욱이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1과장은 법무부 파견 공무원이, 안전사회과장은 국민안전처 파견 공무원이 맡도록 한 보직 계획까지 시행령안에 구체적으로 담았다.
특조위 지원을 위해 공무원이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특조위를 사실상 주도하기 위한 직제와 보직 계획을 시행령안에 담은 것. 특조위 주변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당시 주요 조사 대상이던 해수부와 국가안전처가 정부안을 통해 조사 주체로 둔갑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