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서비스에 가입할 때는 업체 약관과 재무건전성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프리미엄 390’ ‘프리미엄 490’ ‘프리미엄 780’과 ‘프리미엄 플러스’ 등 네 종류의 패키지 상품이 있었다. 중간 가격의 ‘프리미엄 490’을 클릭하니 월 3만5000원씩 140개월(총 490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보였다. 관과 꽃 장식 같은 장례용품과 40여 가지 서비스 항목도 표 하나에 정리돼 있었다.
상품계약신청 화면으로 넘어가니 작은 화면에 엄청난 스크롤 길이의 약관이 뜬다. 대충 ‘동의’하고 계좌번호 등 몇 가지 개인정보를 입력하니 가입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얼마 후 상담원으로부터 가입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서면 가입 확인서에 서명해 회신하면 가입이 완료된단다.
참으로 빠르고 간편하다. 그런데 뭔가 꺼림칙하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느냐”고 물으니 “홈페이지에 모두 명시돼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기억에 남는 건 납부금과 납부 기간뿐. 그 편의성으로 외면하기 어렵지만 이용하기엔 불안한 상조서비스, 무엇을 더 살펴봐야 할까.
표준약관 확인 필요
상조서비스는 장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보험과 달리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고 양도 거래도 가능하다. 따라서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대부분 전화나 인터넷 등을 통해 비대면 방식으로 계약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장례용품과 서비스에만 신경 쓰고 약관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나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상조회사와 계약할 때는 특히 약관을 꼼꼼히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상조회사는 대부분 납부금을 선불 지급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소비자원에 신고를 접수해 구제받은 상조 피해 사례 604건 중 80.9%는 환급 관련 사안이었다. 상조상품의 경우 해약 환급률이 낮고 최초 환급 시점이 늦어 소비자 불만이 많았다. 중도해약 시 위약금이 얼마나 되는지, 만기 때는 얼마나 환급해주는지 등의 정보는 약관에 있는 만큼 가입 전 꼼꼼히 살펴보는 게 좋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및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고시에 따르면 상조회원 가입일이 2011년 9월 1일 이전이면 납부 대금의 80.5%를, 이후면 85%를 최종 환급금으로 받을 수 있다. 환급이 가능한 최초 시점은 납부 10회 차며,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업체가 공정위의 표준약관보다 불리한 약관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므로, 가입 전 업체에서 표준약관을 사용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 상조회사의 재무건전성은 향후 장례서비스 진행 여부와 직결되므로 이 역시 꼭 확인해야 한다. 고객 납부금 대비 총자산비율(고객 납부금+자본총액)을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이 높을수록 미래에 발생 가능한 부도나 폐업 등 상조 관련 위험에 대응할 능력이 높은 회사다. 상조회사들이 대체로 부채 초과 상태이긴 하지만 매출 수익을 미래 시점에 인식하게 하는 상조업 회계 처리 특성상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상조회사 비교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각종 상조업체의 전체 평균 대비 지급 여력, 부채비율, 법정보전비율 등을 상호 비교해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상조회사가 법적으로 의무화된 소비자 피해보상 보험계약을 체결했는지 여부다.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자 피해보상 보험계약을 체결한 상조업체를 자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10월 1일 시장조사 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조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례풍습’ 1위가 ‘장례 준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81.8%·복수응답)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1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 장례비가 12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막대한 장례비 거품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영리재단 아름씨에스의 임준확 이사장은 “상조회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현재 상당수 상조회사는 자체적으로 모든 물품과 서비스를 패키지로 모아 판매한다. 기자가 해당 상품에서 특정 품목을 빼거나 종류를 바꿀 수 있는지 문의하자 “뺄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가격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품목 변경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관과 수의 등 장례용품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항목을 정해진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이런 상품에 가입하면 불필요한 지출이 생길 수 있다. 품목별로 선택 가능한 업체를 택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청 설립인가를 받은 대한장례업협동조합의 경우 소비자 맞춤형 주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비자가 수의, 제단 장식, 운구차량, 도우미, 상복 등 장례용품에서 필요한 것만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윤영웅 대한장례업협동조합 사업총괄이사는 “공급자 중심의 패키지 상품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과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용이 청구되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이 없으며, 결제도 후불이라 좀 더 합리적”이라고 소개했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경우에는 장례 절차 도중 업체가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임 이사장은 “악덕 업체의 경우 가진수의(부속품류 일체를 갖춘 수의)와 멧베(염습할 때 시체를 묶는 베)를 따로 판매하는 등의 수법으로 수의 값을 이중 청구하곤 한다. 상복 개수, 운구차량 주행거리 등을 조작해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는 없어도 불합리한 가격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져야 덤터기를 쓰는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화장용 장례용품 인식 부족
공정거래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상조업체의 등록 여부와 고객납입금(선수금) 잔고 등을 공개하고 있다.
또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닌 상조회사의 상조서비스와 달리 5000만 원까지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는다. 금융감독원 감시를 받는 보험회사가 판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성도 높다. 하지만 상조회사 상품과 달리 피보험자가 지정돼 있고 양도가 불가능하므로 상조회사 상품과 장단점을 비교한 후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시설공단과 서울의료원은 ‘착한 장례비’ 실현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고인이 평소 즐겨 입던 의복으로 수의를 대신하라’고 제시했다. 또 ‘화장률이 74%에 이르는데도 장례비가 줄지 않는 이유는 매장용 장례용품을 화장에 그대로 사용하거나, 화장용 장례용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화장할 때는 밀도가 높은 값비싼 관보다 값싼 화장용 관을 구매하는 게 효율적이고, 수의도 저렴한 친환경 수의를 사용하면 유골을 오염시키는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임준확 이사장은 “생전에 자신의 사후 부고 범위, 장례형식 등을 미리 적어놓는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하면 후손이 허례허식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장례로 산 사람이 빚 무덤에 앉아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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