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건설사들의 수조 원대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노대래·공정위)의 직무유기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담합 여부에 대한 공조수사(조사)를 해야 할 사정기관을 경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고, 그 결과에 따라 두 사정기관 사이에 파열음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경제범죄수사대)는 6월 25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가스공사가 2009년 5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발주한 29개 ‘주배관 공사’ 입찰에서 국내 1군 건설사 22개 업체가 낙찰 회사와 입찰가격을 미리 결정하기 위해 공구를 분할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입찰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2920억 원대 부당 이익(국고 손실)을 취한 정황이 드러나 업체 담당 임원과 법인대표 등 30여 명을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빅 7 등 22개 건설업체 수사 대상
경찰이 건설사의 입찰 담합 수사 건에 대해 예외적으로 중간 수사결과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한 이유는 입찰가격이 단일 공사로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이후 최대인 2조129억 원 선이고, 입찰을 통해 얻은 부당이익 규모가 2900억 원 선에 달하는 데다, 수사 대상인 22개 건설업체가 이른바 ‘빅 7’ 건설사를 포함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요 건설사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담합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엠바고(보도 자제)가 깨져서 어쩔 수 없이 발표하게 됐다. 그 후로도 수사를 계속 진행했으며, 최종 수사결과 내용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와 다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에는 빠진 부분이 있었다. 경찰이 이번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 직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담합 사건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으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2013년 5월쯤 공정위에 찾아가 고발했지만 접수조차 받지 않았다. 당시 건설사들이 담합한 증거도 함께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제보를 접하고, 사건과 관련된 공정위의 전·현직 직원을 일찌감치 불러 심문절차를 마쳤다.
문제는 관련 직원뿐 아니라 공정위 전체가 이런 혐의 내용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 공정위 신영선 사무처장은 경찰 수사와 관련해 “우리는 직무유기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 감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5월쯤 조사를 해달라며 제보자가 공정위를 찾아와 상담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런데 담합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제보자에게 증거를 보충해 다시 오라고 했더니 연락이 끊겼다. 우리는 이번 사안을 직무유기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도 고민에 빠졌다. 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형법상 정의된 직무유기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례가 없고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기준도 애매하다. 어쨌든 9월 안에 결론을 내려 담합 사건과 함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 122조에 규정된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할 때 성립하는데, 대법원의 최근 판례는 직무유기의 고의성을 죄의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태만이나 착각, 분망(奔忙·매우 바쁨) 등으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소홀히 한 경우는 직무유기죄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입찰 담합 자진 신고하기도
수조 원대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가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히려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의 공정위 수사로 행여나 자신들에게 부과될 과징금이 더 커지는 건 아닌가 우려하는 것이다. 건설업계 주변에선 “경찰의 직무유기 수사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공정위가 이번 입찰 담합 건에 대해선 약간의 에누리도 없이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입찰 담합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로 관련 임직원이 벌금을 받고 징역살이 몇 개월 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공정위 조사가 끝나고 건설사가 물게 될 과징금(건설사가 취한 부당이익의 10% 선)이다. 경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대로 부당이익이 3000억 원 선으로 확정될 경우 건설사에 따라 수백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할 판이다. 공정위가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댈수록 우리로선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입찰 담합에 가담한 2개 건설사가 공정위에 자신들의 입찰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기도 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첫 번째 업체에게는 과징금의 전부를, 두 번째 업체에게는 과징금의 50%를 면제해주는 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한 셈이다. 이들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공정위가 입찰 담합 조사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 빠르게 자진 신고해 과징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됐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공정위도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상 입찰 담합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우리는 공정거래법상 위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입찰 담합 건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결과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과징금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4대강 살리기 사업 입찰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시정 명령, 경고 처분을 받은 대형 건설사들이 법원에 낸 처분 취소 소송은 6월 건설사들의 패소로 끝났다. 이로써 한국가스공사 ‘주배관’ 공사 입찰 담합 사건의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장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각 건설사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경제범죄수사대)는 6월 25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가스공사가 2009년 5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발주한 29개 ‘주배관 공사’ 입찰에서 국내 1군 건설사 22개 업체가 낙찰 회사와 입찰가격을 미리 결정하기 위해 공구를 분할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입찰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2920억 원대 부당 이익(국고 손실)을 취한 정황이 드러나 업체 담당 임원과 법인대표 등 30여 명을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빅 7 등 22개 건설업체 수사 대상
경찰이 건설사의 입찰 담합 수사 건에 대해 예외적으로 중간 수사결과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한 이유는 입찰가격이 단일 공사로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이후 최대인 2조129억 원 선이고, 입찰을 통해 얻은 부당이익 규모가 2900억 원 선에 달하는 데다, 수사 대상인 22개 건설업체가 이른바 ‘빅 7’ 건설사를 포함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요 건설사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담합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엠바고(보도 자제)가 깨져서 어쩔 수 없이 발표하게 됐다. 그 후로도 수사를 계속 진행했으며, 최종 수사결과 내용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와 다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에는 빠진 부분이 있었다. 경찰이 이번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 직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담합 사건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으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2013년 5월쯤 공정위에 찾아가 고발했지만 접수조차 받지 않았다. 당시 건설사들이 담합한 증거도 함께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제보를 접하고, 사건과 관련된 공정위의 전·현직 직원을 일찌감치 불러 심문절차를 마쳤다.
문제는 관련 직원뿐 아니라 공정위 전체가 이런 혐의 내용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 공정위 신영선 사무처장은 경찰 수사와 관련해 “우리는 직무유기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 감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5월쯤 조사를 해달라며 제보자가 공정위를 찾아와 상담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런데 담합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제보자에게 증거를 보충해 다시 오라고 했더니 연락이 끊겼다. 우리는 이번 사안을 직무유기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도 고민에 빠졌다. 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형법상 정의된 직무유기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례가 없고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기준도 애매하다. 어쨌든 9월 안에 결론을 내려 담합 사건과 함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 122조에 규정된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할 때 성립하는데, 대법원의 최근 판례는 직무유기의 고의성을 죄의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태만이나 착각, 분망(奔忙·매우 바쁨) 등으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소홀히 한 경우는 직무유기죄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금강 벽제보(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부과 명령을 받은 건설사들은 법원에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6월 모두 패소했다.
수조 원대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가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히려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의 공정위 수사로 행여나 자신들에게 부과될 과징금이 더 커지는 건 아닌가 우려하는 것이다. 건설업계 주변에선 “경찰의 직무유기 수사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공정위가 이번 입찰 담합 건에 대해선 약간의 에누리도 없이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입찰 담합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로 관련 임직원이 벌금을 받고 징역살이 몇 개월 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공정위 조사가 끝나고 건설사가 물게 될 과징금(건설사가 취한 부당이익의 10% 선)이다. 경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대로 부당이익이 3000억 원 선으로 확정될 경우 건설사에 따라 수백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할 판이다. 공정위가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댈수록 우리로선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입찰 담합에 가담한 2개 건설사가 공정위에 자신들의 입찰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기도 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첫 번째 업체에게는 과징금의 전부를, 두 번째 업체에게는 과징금의 50%를 면제해주는 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한 셈이다. 이들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공정위가 입찰 담합 조사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 빠르게 자진 신고해 과징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됐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공정위도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상 입찰 담합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우리는 공정거래법상 위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입찰 담합 건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결과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과징금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4대강 살리기 사업 입찰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시정 명령, 경고 처분을 받은 대형 건설사들이 법원에 낸 처분 취소 소송은 6월 건설사들의 패소로 끝났다. 이로써 한국가스공사 ‘주배관’ 공사 입찰 담합 사건의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장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각 건설사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