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7

2023.12.01

우연히 구긴 종이도 예술작품이 된다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종이 아끼라는 회사 지침 어기고 A4 용지 구겼다 펴니 창의적 작품 탄생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3-12-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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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성, 크리에이티브, 창조 도시… 이런 말들이 요즘같이 유행한 적은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떠오른다. 창의적인 사람이 꼭 돼야만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의적이라는 사람의 소위 새로운 아이디어도 결국은 기존 아이디어의 반복이거나 편집에 불과한 것이 많다. 정말 새로운 아이디어는 거의 없다. 미술 전시회를 자주 다니는 필자의 지인은 발상의 신선함에 감동받는 작품이 1년에 몇 점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고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가끔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 창의성 관련 책 100권을 읽고, 동영상 200편을 보는 것보다 자신이 먼저 예술가가 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에 대한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리스인의 지혜를 빌리면 된다. 창의적인 예술가라는 생각은 근대 산물일 뿐이다. 과거에는 내 생각, 내 작품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내가 천재인 것이 아니라 ‘지니’가 우연히 나를 찾아온 것이고 나는 그 순간을 운 좋게 포착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창작의 고통과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한 사무직원이 A4 용지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한 뒤 사진을 찍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다빈치스쿨 제공]

    한 사무직원이 A4 용지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한 뒤 사진을 찍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다빈치스쿨 제공]

    종이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한 뒤 사진을 찍어 만든 작품. [김재준 제공]

    종이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한 뒤 사진을 찍어 만든 작품. [김재준 제공]

    창의성을 위한 미술 수업을 많이 진행했다. 문화예술벤처 ‘아트라이프샵’의 강좌, 일민미술관의 성인 대상 미술 창작 수업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미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 후 스스로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매우 많은 사람이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물론 이런 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직 창조의 신이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다. 창조적인 예술가들을 볼 때면 그들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서도 미니 강좌를 시작해보자.



    아이디어, 흔히 콘셉트라는 것을 하나 만든다.

    반드시 독창적일 필요는 없다.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쓴다.

    이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만든다. 이 과정을 매일매일 반복한다.

    반복하면서 내면을 면밀히 관찰한다. 지루하지 않고 즐거우면 이를 계속한다.

    이후 10일이나 100일 동안 반복한 결과를 전시한다.

    만약 지루하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 아이디어를 만든다.

    그리고 그 콘셉트를 반복한다. 만일 또 지루해진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기다린다. 아이디어가 독창적일수록 반복의 즐거움은 커진다.

    만약 아이디어 내기가 어렵다면 창조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창작은 우연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일민미술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사무직원이 A4 용지를 구겼다 편 후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이것은 조각이자 설치이고, 일상에서 발견한 그만의 생각이다. 재미있다. 좋은 작품이다. 반복할수록 흥미롭다. 시각적으로도 볼만하다. 종이가 구겨진 모양이 모두 다르고 찍은 사진이 모두 다르다. 이렇게 하나의 콘셉트로 만들어진 다양한 변주의 모음을 ‘조형어법’이라고 한다.

    종이 구김이 만든 다양한 변주

    이 직원은 처음에는 종이를 아껴야 한다는 회사 지침(?) 때문인지, 우습게도 멀쩡한 종이를 구겼다 펴는 행위에서 스릴을 느꼈다고 한다. 멀쩡한 A4 용지를 와삭 구기니 마음이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구긴 종이를 펼 때 편안함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A4 용지가 구겨지는 모습이 상처받는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첫 시도에서 여러 생각이 퍼져나간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위로받는 것도 같다. 사람들과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처음 종이 상태가 순수였다면, 구겨진 후에는 성숙이 아닐까.

    종이로 다른 시도를 해봤다. 구겨진 종이를 물에 적신 뒤 말리면 각이 커지는 특성이 생겨 입체감이 살아난다. 종이의 부분을 사진으로 찍으면 다른 무언가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있었다. 봄눈이 산을 덮은 것 같았다. 눈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듯한 것도 사진으로 찍으면 마치 무엇을 연출한 것처럼 보여 재미가 느껴졌다. 종이를 단순하게 구겼다 펴는 작업으로 전시까지 했다. 종이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해 찍은 사진 작품 16장이 전시됐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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