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8

..

손석한의 세상관심법

일심동체란 없다

상대와 내가 다름을 인식해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9-03-04 11: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shutterstock]

    [shutterstock]

    2월 26일 부산에서 한 남성이 헤어지자는 동거녀의 말에 화가 나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됐다. 다행히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남녀가 사귀고 헤어지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며 이별의 슬픔을 감내한다. 하지만 일부는 크게 화를 내거나, 상대방에게 폭언 또는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 사건처럼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이별 범죄’다. 누구나 살면서 수 번은 겪는 이별인데, 이렇게 과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별이라는 자극에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다. 소유란 내가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하며 내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소유 대상은 물건이지 사람일 수 없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인간은 타인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노예제나 신분제가 대표적이다.

    “넌 내 거야, 날 떠날 수 없어”

    만민이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에도 타인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연인이 되면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당신은 내 거야”라는 말을 던지고, 이를 들은 상대방은 감격스럽게 받아들인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처럼 여기는 일도 여전히 만연하다. 심지어 직장이나 조직에서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당신은 내 사람이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한다. 즉 인간은 친밀감을 때때로 소유로 착각한다. 

    물론 대다수 사람은 이성적으로 ‘타인을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향한 소유 욕구가 강하게 치밀고, 그 결과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그릇된 판단을 내린다. 



    물건은 스스로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실수로 잃거나 의도적으로 버릴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떠나간다. 이 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내 것인 사람이 떠난다는 사실은 소유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즉 상대방으로부터 떠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공격 욕구가 치솟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아 통찰력 부족 때문이다. 자아 통찰력이란 자신의 특성이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이다. 자아 통찰력을 통해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아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갈등이 벌어지면 모든 책임을 상대방이나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연인 사이의 이별도 일종의 갈등이다. 이별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책임 소재 또한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자아 통찰력이 부족해 이 사실을 모른다면 이별 통보를 납득할 수 없다. 상대방이 단순히 변심했거나 나에게 더는 매력을 느끼지 않아 작금의 상황에 놓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된 언행으로 상대방이 상처 입었거나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을 모른다. 혹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더라도 이 또한 상대방이 먼저 저지른 악행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예를 들어 “네가 내 연락을 제대로 받지 않고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줬기 때문에 내가 때로는 심한 말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절대로 너에게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연인에게 푼다

    과거 인물에 대한 복수를 헤어진 연인에게 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의 삶은 현재의 일상에 무의식적 차원에서 깊이 관여한다. 예컨대 어릴 적 부모의 충분한 보살핌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할 수 있다. 한쪽 부모와 헤어짐이나 부모의 불화를 경험한 사람 역시 마음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기 쉽다. 

    이런 사람에게 상대방의 이별 통보는 어릴 적 불안을 다시 야기하는 셈이다. 이별이라는 상황에 직면하면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아 두렵고 화가 난다. 지금의 이별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이를 막지 못하면 종국에는 응징으로 번지는 경우도 생긴다. 부모에 대한 복수극을 헤어진 연인에게 펼치는 셈. 그러나 상대방은 과거의 부모가 아니라 현재의 연인이다. 정신분석학 용어로 이 같은 현상을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ence)’라 부른다. 

    네 번째 이유는 질투의 극단적 표현 때문이다. 질투는 상대방에 대한 시기 감정을 유발한다. 특히 삼자 간 질투는 나를 배신한 사람과 나를 이긴 사람 모두를 증오하게 한다. 그래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그의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도 간혹 있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선 무척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는 동생이 태어난 뒤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를 보인다. 동생을 괴롭히거나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에게 떼를 쓰면서 반항적인 행동을 한다. 

    연인이 새로운 상대를 만나지 않더라도 질투는 생긴다. 내가 아닌 미래의 새로운 상대에게까지 질투가 번지는 것. 미지의 누군가가 나의 현 연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연인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별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연인의 몸과 마음을 손상시켜 새 출발을 막으려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망가뜨려 못 쓰게 만든다는 못된 심성의 발로다. 

    만남과 이별은 우리 삶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돼 있다. 그러니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그와 나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일심동체는 현실적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이상적 관계다. 혹시 이뤄진다 해도 순간적인 현상일 뿐이다.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이라도 그와 나는 분명하게 다른 독립된 인격체임을 반드시 명심하자. 그래야 또 다른 강렬한 감정인 증오로 번져 파괴라는 결과로 끝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