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현 모어댄 대표는 폐자동차에서 수거한 가죽시트, 에어백 등을 이용해 가방, 지갑 등 패션 제품을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조영철 기자]
논문 쓰던 대학원생, 폐차장 돌며 사업 구상
2년 전 SK이노베이션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모어댄’은 폐차업자마저 등을 돌린 쓰레기를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키는 사회적 기업이다. 모어댄은 폐자동차에서 나온 천연가죽을 수거해 세척, 코팅 등 여러 작업 과정을 거친 후 재생가죽원단으로 만든다. 안전벨트, 에어백 등도 가공을 거치면 쓸 수 있다. 이후 30년 이상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장인에게 원단을 보내 가방과 지갑을 만든다. 모어댄이 생산하는 제품은 ‘컨티뉴(Continew)’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온라인 쇼핑몰의 반응은 대개 ‘재생가죽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등 호평이 주를 이룬다. 최이현(36) 대표는 “환경을 생각하는 의도로 만들었지만 소비자는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에 디자인과 가격 면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그가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폐자동차 가죽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영국 유학 시절 타고 다니던 차가 뺑소니를 당했어요. 주차해놨는데 누가 새벽에 뒤에서 받았더라고요.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폐차를 해야 했어요. 정말 아꼈던 차라 그냥 폐차할 수 없어서 가죽 시트를 뜯어 왔죠. 패션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소파를 만들라고 해서 해봤는데 꽤 괜찮더라고요. 마침 리즈대 대학원에서 ‘코퍼레이트 커뮤니케이션(corporate communication)’을 전공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마케팅과 연관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폐자동차 가죽시트를 재사용하는 일이 기업 마케팅과 관련이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라면 사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왜 한국에서는 가능할 거라고 본 건가요.
“한국은 자동차 강국입니다. 현대·기아차, 쌍용차, 대우차 등 자동차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걸 연구하고 있었어요. 조사해보니 시골 마을에 차를 기부한다든지, 취약계층을 돕는다든지 같은 일회성 기부 사업이 전부더라고요. 학계에서는 그걸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지 않아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그건 아니니까요. 또 유럽은 자동차업계에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데 한국은 이제 막 강화되는 단계더라고요.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제안 사업으로 패션 아이템 생산에 대해 썼고, 진짜 한국에서 가능한지 도전하고자 2013년 말 들어와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디어만 갖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겠네요.
“사실 거창하게 사업을 구상한 건 아니고, 이게 가능한 사업인지 평가받고 싶었어요. 2014년 4월 구상안을 갖고 소셜벤처 경진대회에 나갔어요. 입상을 했고,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좀 더 구체화하고자 전국 300여 개 폐차장을 돌며 가죽시트를 구했어요.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 가죽을 달라고 하니 경계를 하시죠. 그래도 꾸준히 찾아갔고 이해관계가 맞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폐차 부품에서 다른 건 다 재활용이 가능한데 유일하게 천연가죽만 안 됐거든요. 몇 개 폐차장에서 가죽을 공급받기로 약속을 받아냈죠.”
▼폐차에서 나온 가죽이 쓸 만한 건지 궁금해요.
“보통 10년 타면 폐차하더라고요. 폐차장에 가면 에쿠스, 다이너스티, 그랜저 등 고급 승용차에서 나오는 가죽시트는 정말 질이 좋아요. 특히 뒷좌석의 등 부분 가죽은 새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상태가 좋더라고요.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좀 닳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저희도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아요.(웃음) 간혹 사고 차량에서 수거한 가죽일 거라 오해하는 분도 있는데, 오히려 사고 차량의 가죽은 뜯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아요. 또 에어백도 재활용이 안 되는 부품인데, 리콜이 들어가면 교체해야 하거든요. 최근 BMW에서 에어백 리콜을 실시하면서 뜯어낸 에어백을 저희가 받아 소프트 백팩으로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가죽시트를 뜯으러 다녀야 했지만 이제는 일정하게 가죽을 공급받을 정도로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론칭 당시 최 대표도 ‘누가 이런 가방을 살까’ 싶었지만 지금은 경기 스타필드 고양점 매장을 일부러 찾아가는 고객이 생겼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렇게 된 데는 매스컴의 힘이 컸다.
▼요즘도 폐차장으로 가죽을 수거하러 가나요.
“가끔 가는데 지금은 여러 업체로부터 가죽시트 매달 1t씩 일정하게 공급받고 있어요. 더 받고 싶지만 보관할 곳이 없어요. 지난해 전국 6600여 개 스타트업이 참가하는 ‘도전! K-스타트업’에 나간 덕분이에요. 5개월간 이어진 대회 과정이 KBS에서 방송됐는데 그때 운 좋게 톱10까지 갔어요. 방송이 나가고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자동차 시트 관련 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 같아요. 가죽시트 원단은 보통 가로세로 30cm를 한 평이라고 쳐요. 차 한 대 만드는 데 원단 100평으로 10~30평 정도 잘라서 쓰고 나머지 70~90평은 폐기물로 버려요. 그걸 업체마다 kg당 60원씩 내고 버리는데 필요 없으니 저희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한 거죠. 단, ‘꾸준히 받아가야 한다’는 조건이었어요. 그쪽은 폐기물 처리해서 좋고, 저희는 원단을 꾸준히 받아서 좋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폐기물 처리
폐자동차 폐기물을 소재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모어댄 ‘컨티뉴’ 제품들. 가방 가격은 20만~30만 원 선이다.[사진 제공 모어댄,조영철 기자]
“그래서 저희 가방에는 가죽 이음새 부분이 필연적으로 들어가요. 그걸 하나의 디자인으로 보이게끔 재단하는 거죠. 기성제품처럼 통원단으로 가방을 만들 수 없으니 가방 하나 완성하려고 샘플만 15번씩 고쳐야 했어요. 보통 기성제품은 샘플을 많아야 두 번 정도 뜨는데, 그에 비하면 정말 고생한 거죠. 개발비만 1000만 원 넘게 들었어요.”
▼30년 넘은 장인이 가방을 만든다고 들었는데 섭외는 어떻게 했나요.
“처음에는 다들 안 한다고 했죠. 대부분 이미 국내 유명 가방을 만드는 분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팀 인력 가운데 명품 가방을 만드는 MCM에서 상품기획을 했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장인을 찾아가 직접 설득했고, 안면이 있던 터라 한 번 해보겠다고 한 거죠. 사실 저희 브랜드가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질이 떨어지면 소비자들이 구매를 안 할 것 같더라고요. 또 ‘주워 온 가죽으로 만들면서 값은 20만~30만 원씩 비싸게 받는다’는 인식을 없애려면 제품이 좋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임가공비가 더 들어도 제대로 만들어야 판매가 되겠다’ 싶어 처음부터 그런 분을 섭외하려고 공을 들였죠.”
▼사업 초창기보다 유명해졌는데 최근 매출은 어떤가요.
“지난해 9월 오픈해 판매했는데 판매 수량 자체가 적었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잘 팔리기 시작하더니 가죽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요. 올해 9월 스타필드 고양점에 매장을 냈는데, 미리 만들어둔 물량이 보름 만에 다 팔렸어요. 지금은 주문을 미리 받아서 생산을 맞춰가고 있어요. 올해 초 700만 원이었다 10월에는 5000만 원가량 팔렸을 정도로 매월 매출도 오르고 있죠. 올해 목표가 2억 원이었는데 연말까지 잘하면 3억 원을 찍을 것 같아요.”
창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바닥부터 시작해야 운영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에 창업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간혹 운 좋게 처음 시작한 사업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최 대표 역시 4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수를 꿈꾸던 유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한 사업가로 거듭났다.
▼원래 창업에 꿈이 있었나요.
“전혀요. 아주 어릴 때 꿈은 개그맨이었고, 철들고 나서는 대학교수를 하고 싶었어요. 군대에 다녀와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갔는데 살 만하더라고요. 1년 정도 살고 싶은 마음에 스물다섯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죠. 광고홍보를 전공했는데 대학을 졸업할 즈음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고, 석·박사 학위를 따려고 영국으로 건너갔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떠올랐던 생각을 평가받고자 시작한 게 커요.”
▼공부만 하다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걱정을 좀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2남2녀의 막내라 가족도 ‘막내는 알아서 하겠지’라고 믿어주는 게 있었어요. 공부도 내키면 하는 스타일이라 반에서 1등도 했지만 하기 싫을 때는 꼴등도 했죠.(웃음) 사실 취업 기회도 있었어요. 영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 즈음 삼성에서 제의가 들어왔는데 와 닿지가 않더라고요. 영국 학생들도 공부하면서 취업하려고 방학 때 인턴을 나가기도 하는데 저는 계속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뭘까’를 고민했고 그런 걸 가족도 이해해준 거죠.”
▼사업이 이렇게 잘되리라 예상했나요.
“아뇨. 해보고 안 되면 영국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이 사업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제 내려놓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졌거든요. 그동안 공부했던 것도 이 사업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SK이노베이션 지원은 어떻게 받은 건가요.
“처음 사업을 구상할 때 사회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같이 고려했어요. 다니는 교회가 있는데 퇴직한 목사 한 분이 탈북민 등 사회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어요. 저희 회사도 어디에선가 소외받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큰 목적이거든요. 그쪽 단체와 연결돼 취업을 연계했죠. 이런 사업안을 SK이노베이션 지원 사업 공모에 제출했는데 그쪽도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라 선정된 거예요. 투자를 받은 건 아니고 무상으로 사업 초기 자금 1억 원을 지원받았어요. 사회적 기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SK이노베이션 이외에도 LG, 현대·기아차도 지원을 해줬어요.”
모어댄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10월 11일부터 사흘간 열린 ‘패션월드 도쿄 2017’에 참가해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카드, 폴크스바겐 같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매대행 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했다. 또 26일에는 미국 소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소개된 지 20일 만에 펀딩 목표금액 1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2만3000달러(약 2562만 원) 모금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으며, 내년 4월 27일 지구의 날에 맞춰 공식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찍고 미국 진출 눈앞에
모어댄 사무실에는 최이현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받은 상과 인증서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조영철 기자]
“사실 국내 판매 계획이 없었어요. 해외시장이 환경을 고려한 제품에 더 긍정적이라 해외 판매만 생각했죠. 실제로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요. 한국 매장에 일본인 관광객이 들어오면 항상 사가더라고요. 일본인은 유니크한 걸 좋아하는데, 자동차 시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신선하게 여기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토트백 디자인을 따로 만들었어요. 또 최근 미국 출장을 두 달 동안 다녀왔는데 현지 법인을 세웠고, 내년 론칭에 앞서 대형 편집숍 ‘브랜즈워크’ 입점 계약도 맺었어요.”
▼회사가 단기간에 확장된 느낌인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일은 늘었는데 사람이 모자라 직원을 구해야 해요. 정식 공고를 내봤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 같아 그동안 못 했거든요. 처음에는 직원이 11명에 불과헸지만 정말 핵심 인력들이라 그 정도 인원으로도 사업을 꾸려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마케팅과 시각디자인 분야에 전문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폐자동차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것 이외에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모어댄 제품을 전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누구나 재활용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거고요. 양복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이탈리아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경우 옷도 만들지만 원단도 제공하거든요. 모어댄에서 확보한 가죽원단으로 누구나 멋진 가죽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원단 제공 사업에도 도전해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