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투자, 인재들의 도전이 필수다. GETTYIMAGES
HBM 강하지만 AI 모델 약한 한국
한국은 AI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우선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시장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1위 공급자로 자리매김했다. AI 모델을 훈련시키고 AI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고성능 컴퓨팅 시설이 필요하다. 컴퓨팅 시설의 핵심 부품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이고, 이러한 GPU를 구동하는 데 필수적인 부품이 HBM이다. AI 기반 시설의 핵심 부품을 한국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하지만 AI 모델 개발이나 사용자가 직접 사용하는 AI 서비스 관련 영역에서 한국은 아직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상당한 컴퓨팅 기반 시설이 필요하고 소프트웨어 인재들도 양성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글로벌 AI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캐나다는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AI 연구 거점으로 삼고 딥러닝 등 AI 관련 기술을 육성하면서 AI 개발을 위한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그 덕에 AI 머신러닝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를 배출할 수 있었다. 힌턴 교수는 지난해 12월 스웨덴 왕립 공학 아카데미에서 개최된 한 토론에 참석해 캐나다의 연구 지원 정책에 대해 “캐나다는 훌륭한 기초연구 자금 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은 딥마인드와 스태빌리티 AI, 프랑스는 미스트랄 AI라는 세계적 AI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 더욱이 프랑스는 오픈소스 AI를 공유하는 플랫폼 ‘허깅 페이스’를 만들어 개발자들의 협업을 돕고 글로벌 오픈소스 AI 생태계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최초로 AI 장관을 임명하고 ‘국가 전략 AI 2031’을 추진하면서 AI 기반 시설 구축에 적극 투자하는 상황이다.
기업 활발한 투자, 인재들 도전 나서야
한국 정부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AI 모델과 서비스 개발을 촉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민간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AI 기반 시설 구축에 적극 투자하고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9월 ‘4대 AI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AI 연산 인프라를 2030년까지 현 수준의 15배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민관 합작 투자로 4조 원을 투입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단기적으로는 2026년 상반기까지 첨단 GPU 1만8000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과기부는 인프라 확충과 함께 6년간 약 1조 원을 투입해 범용인공지능(AGI) 연구개발도 지원하기로 했다. 또 AI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8100억 원 규모의 정책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한국은 1994년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과 함께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시작해 3년 뒤인 1997년 전국에 광대역망을 확보했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높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게 됐고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싸이월드와 네이버 지식인, 다음 카페 등을 전 세계가 부러워했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AI 시대를 맞이해 2000년 초 IT 강국으로 우뚝 섰던 한국의 자존심을 찾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활발한 투자, 그리고 인재들의 도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