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후 가족은 줄곧 ‘해체 위기’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이 위기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가족 해체가 일종의 집단적 패닉현상으로 이어지는 우리와 달리, 이미 한 세대를 훌쩍 넘어 가족적 결속력이 약화될 대로 약화된 서구사회는 이 해묵은 위기를 좀더 느긋하게 바라본다.
서구 사람들에게 헤어짐과 고독은 이미 익숙한 일이며 그런 만큼 끊어진 가족관계를 대신할 대안적 인간관계도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수많은 실험적 공동체 중 가까운 미래에 가장 경쟁력 있는 유형을 꼽으라면 ‘패치워크 가족’을 들 수 있다.
패치워크는 쓸모 없는 작은 천조각들을 잘 배치하고 꿰매 아름답고 실용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수공예를 말하는데, 패치워크패밀리란 조각보처럼 여러 인간관계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가족적인 유대감을 이루어내는 공동체를 말한다.
전통적 핵가족 형태 점차 사라져
패치워크패밀리는, 50년대 전형적인 가족상으로 등장해 수십년을 군림해온 핵가족(부부와 그들 사이에 난 두 자녀)을 밀어내고 미래의 대표적인 가족형태로 떠올랐다. 특히 잦은 이혼과 재혼으로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린 미국의 경우 7년 뒤면 패치워크 가족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동거가 일반화되어 있는 독일의 경우, 이혼과 재혼으로만 이루어지는 가족보다 훨씬 더 화려한 무늬의 조각보 가족이 탄생하고 있다. 독일 제2방송 ZDF시리즈 ‘마마-마리안네’는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는 드라마다. 마리안네는 50대 이혼녀로 아들 딸을 모두 독립시켰다. 그렇다고 그녀가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사귀던 남자친구 얀이 동거를 권하자 두 사람은 살림을 합쳤다. 그러나 아침식사 때면 어김없이 마리안네의 아들이 찾아오고, 이어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딸이 출근해야 한다며 아이를 안고 문 앞에 서있다. 어디 그뿐인가. 과거의 시어머니가 아들, 그러니까 마리안네 전 남편의 새 여자친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옛 며느리인 마리안네와 같이 살겠다고 찾아온다.
만약 마리안네가 좀더 젊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어린 아들과 딸을 기르면서 또 동거하는 얀과 새로 아이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독일에서는 아이가 있는 1000만 가정 중 최소 150만에서 최대 250만 가정이 기존 핵가족과 전혀 다른 유형의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결혼율이 계속 감소하고 이혼율(36%)은 증가해 편부, 편모, 계부, 계모가 기르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데다 부모가 있더라도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동거부부가 많다. 1998년 통계를 보면 13가구 당 1가구가 편부모이며, 27세 이하 청소년 17%가 이런 가정에서 자랐거나 자라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런 가정의 3분의 1만이 진정한 의미의 편부모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어떤 형태로든 편부모를 보충하는 나머지 반쪽의 부모(동거 등의 형태)가 함께 양육을 분담하고 있다.
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경우도 대표적인 패치워크 가족이다. 네번째 결혼을 한 슈뢰더는 세번째 부인이 데리고 온 아홉 살짜리 클라라를 ‘내 딸’이라고 부르며 계속 키우고 있다. 클라라의 친아버지는 독일 제일방송 모닝매거진의 리포터 스벤 쿤체씨로 “슈뢰더씨가 아이를 길러주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연예인 하리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하리의 부인인 게르티는 첫 결혼에서 4명의 아이를 낳았고, 하리와의 사이에서 둘을 낳았으며, 여기에 두 사람은 다시 아이 1명을 더 입양했다. 그런데 게르티의 전 남편이 하리의 전 부인과 결혼하게 되는 바람에, 네 사람을 중심으로 복잡한 대가족이 형성된 셈이다.
이렇게 가족관계가 쉴새없이 흩어졌다 새로 맺어지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새로운 가족문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혼은 이혼을 부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혼 부모의 자녀가 이혼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18%나 높다고 말한다. 또 이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 사람들 중 누군가와 다시 재혼, 삼혼, 혹은 사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쉽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좀더 쉽게 파트너와의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의 진정한 원인은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에 있다.
그러나 패치워크 가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패치워크 가족이 미래의 대안가족으로 부각된 것은, 단지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파트너에서 저 파트너로 전전하는 방랑자들 때문이 아니다. 패치워크 가족은 핵가족문화에 감춰져 있는 성차별의식, 소수문화에 대한 배타성, 단절된 세대간 연대의식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에 호응한다. 즉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간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성향을 잘 대변해 주는 가족유형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적인 생활 패턴이 다양화함에도 법과 사회제도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요인을 중재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패치워크 가족을 탄생케 한 배경이기도 하다. 계부, 계모가 아무리 기저귀를 갈아주고 돌본다고 한들 독일법은 그들에게 양육권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도 정확한 병인을 알 권리마저 없다. 또 첫 결혼 때 국가로부터 단독주택 보조금을 받아 집을 지은 사람은 두번째 결혼부터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전 부인 혹은 전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생계비 지급 의무 때문에 생활이 어렵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독일은 현재 부실한 연금제도 때문에 2030년께가 되면 근로자 한 명이 한사람의 연금생활자를 부양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도 많이 배운 여성은 커리어 때문에, 못 배운 여성은 고비용의 양육비 때문에, 전체 가임여성의 3분의 1이 자녀를 낳지 않고 있어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줄어드는 인구문제의 해결 아닌 해결책이라 믿었던 유색 이민자들에게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민 2세들의 출산율은 98년 4.8%나 감소했다.
인구 감소는 연금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늘어나는 노령자를 누가 다 돌볼 것인가. 커리어 때문에 아이도 포기하는 마당에 노인들을 거둘 젊은이들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패치워크 가족은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고 이를 위해 다세대 거주공동체를 위한 주택프로젝트도 생겨나고 있다.
패치워크 가족은 자발적으로 맺어진 사회관계와 혈연을 결합하며 따라서 순수한 혈연가족처럼 정서적, 사회적 구속력이 크지 않다. 병든 친부모를 모르는 체하는 것은 감정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지만, 다세대 거주공동체에서는 그냥 이사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베를린의 마이크로사회학자 한스 베르트람 교수는 패치워크 가족이 비록 자신이 주는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이 적다 할지라도 서로를 지원해주는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회관계이면서 그와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의 끈끈함이 요구되는 패치워크 가족, 과연 미래의 가족은 이 두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서구 사람들에게 헤어짐과 고독은 이미 익숙한 일이며 그런 만큼 끊어진 가족관계를 대신할 대안적 인간관계도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수많은 실험적 공동체 중 가까운 미래에 가장 경쟁력 있는 유형을 꼽으라면 ‘패치워크 가족’을 들 수 있다.
패치워크는 쓸모 없는 작은 천조각들을 잘 배치하고 꿰매 아름답고 실용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수공예를 말하는데, 패치워크패밀리란 조각보처럼 여러 인간관계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가족적인 유대감을 이루어내는 공동체를 말한다.
전통적 핵가족 형태 점차 사라져
패치워크패밀리는, 50년대 전형적인 가족상으로 등장해 수십년을 군림해온 핵가족(부부와 그들 사이에 난 두 자녀)을 밀어내고 미래의 대표적인 가족형태로 떠올랐다. 특히 잦은 이혼과 재혼으로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린 미국의 경우 7년 뒤면 패치워크 가족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동거가 일반화되어 있는 독일의 경우, 이혼과 재혼으로만 이루어지는 가족보다 훨씬 더 화려한 무늬의 조각보 가족이 탄생하고 있다. 독일 제2방송 ZDF시리즈 ‘마마-마리안네’는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는 드라마다. 마리안네는 50대 이혼녀로 아들 딸을 모두 독립시켰다. 그렇다고 그녀가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사귀던 남자친구 얀이 동거를 권하자 두 사람은 살림을 합쳤다. 그러나 아침식사 때면 어김없이 마리안네의 아들이 찾아오고, 이어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딸이 출근해야 한다며 아이를 안고 문 앞에 서있다. 어디 그뿐인가. 과거의 시어머니가 아들, 그러니까 마리안네 전 남편의 새 여자친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옛 며느리인 마리안네와 같이 살겠다고 찾아온다.
만약 마리안네가 좀더 젊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어린 아들과 딸을 기르면서 또 동거하는 얀과 새로 아이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독일에서는 아이가 있는 1000만 가정 중 최소 150만에서 최대 250만 가정이 기존 핵가족과 전혀 다른 유형의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결혼율이 계속 감소하고 이혼율(36%)은 증가해 편부, 편모, 계부, 계모가 기르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데다 부모가 있더라도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동거부부가 많다. 1998년 통계를 보면 13가구 당 1가구가 편부모이며, 27세 이하 청소년 17%가 이런 가정에서 자랐거나 자라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런 가정의 3분의 1만이 진정한 의미의 편부모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어떤 형태로든 편부모를 보충하는 나머지 반쪽의 부모(동거 등의 형태)가 함께 양육을 분담하고 있다.
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경우도 대표적인 패치워크 가족이다. 네번째 결혼을 한 슈뢰더는 세번째 부인이 데리고 온 아홉 살짜리 클라라를 ‘내 딸’이라고 부르며 계속 키우고 있다. 클라라의 친아버지는 독일 제일방송 모닝매거진의 리포터 스벤 쿤체씨로 “슈뢰더씨가 아이를 길러주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연예인 하리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하리의 부인인 게르티는 첫 결혼에서 4명의 아이를 낳았고, 하리와의 사이에서 둘을 낳았으며, 여기에 두 사람은 다시 아이 1명을 더 입양했다. 그런데 게르티의 전 남편이 하리의 전 부인과 결혼하게 되는 바람에, 네 사람을 중심으로 복잡한 대가족이 형성된 셈이다.
이렇게 가족관계가 쉴새없이 흩어졌다 새로 맺어지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새로운 가족문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혼은 이혼을 부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혼 부모의 자녀가 이혼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18%나 높다고 말한다. 또 이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 사람들 중 누군가와 다시 재혼, 삼혼, 혹은 사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쉽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좀더 쉽게 파트너와의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의 진정한 원인은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에 있다.
그러나 패치워크 가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패치워크 가족이 미래의 대안가족으로 부각된 것은, 단지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파트너에서 저 파트너로 전전하는 방랑자들 때문이 아니다. 패치워크 가족은 핵가족문화에 감춰져 있는 성차별의식, 소수문화에 대한 배타성, 단절된 세대간 연대의식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에 호응한다. 즉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간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성향을 잘 대변해 주는 가족유형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적인 생활 패턴이 다양화함에도 법과 사회제도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요인을 중재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패치워크 가족을 탄생케 한 배경이기도 하다. 계부, 계모가 아무리 기저귀를 갈아주고 돌본다고 한들 독일법은 그들에게 양육권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도 정확한 병인을 알 권리마저 없다. 또 첫 결혼 때 국가로부터 단독주택 보조금을 받아 집을 지은 사람은 두번째 결혼부터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전 부인 혹은 전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생계비 지급 의무 때문에 생활이 어렵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독일은 현재 부실한 연금제도 때문에 2030년께가 되면 근로자 한 명이 한사람의 연금생활자를 부양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도 많이 배운 여성은 커리어 때문에, 못 배운 여성은 고비용의 양육비 때문에, 전체 가임여성의 3분의 1이 자녀를 낳지 않고 있어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줄어드는 인구문제의 해결 아닌 해결책이라 믿었던 유색 이민자들에게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민 2세들의 출산율은 98년 4.8%나 감소했다.
인구 감소는 연금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늘어나는 노령자를 누가 다 돌볼 것인가. 커리어 때문에 아이도 포기하는 마당에 노인들을 거둘 젊은이들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패치워크 가족은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고 이를 위해 다세대 거주공동체를 위한 주택프로젝트도 생겨나고 있다.
패치워크 가족은 자발적으로 맺어진 사회관계와 혈연을 결합하며 따라서 순수한 혈연가족처럼 정서적, 사회적 구속력이 크지 않다. 병든 친부모를 모르는 체하는 것은 감정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지만, 다세대 거주공동체에서는 그냥 이사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베를린의 마이크로사회학자 한스 베르트람 교수는 패치워크 가족이 비록 자신이 주는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이 적다 할지라도 서로를 지원해주는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회관계이면서 그와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의 끈끈함이 요구되는 패치워크 가족, 과연 미래의 가족은 이 두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