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석유로 연명해오던 쿠바, ‘자연 붕괴’ 임박

극심한 빈곤과 경제난으로 국가 기능 사실상 마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1-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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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위)은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 “쿠바로 가는 석유나 돈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쿠바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친베네수엘라 시위가 열렸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위)은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 “쿠바로 가는 석유나 돈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쿠바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친베네수엘라 시위가 열렸다. 뉴시스

    쿠바 혁명은 1959년 1월 일어났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 체 게바라 등이 친미국가였던 쿠바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고 아메리카 대륙 최초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한 사건이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한 피델 카스트로가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무상 교육, 무상 의료, 그리고 배급제였다. 당시 쿠바 국민은 가구별로 제공되는 배급카드를 갖고 국영 상점에 가면 생필품과 식료품을 시장보다 3분의 1가량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군에 체포·압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쿠바의 공산주의 체제를 ‘지상 낙원’이라고 동경했다. 20대 시절 수도 카라카스에서 친쿠바 성향의 마르크스당에 가입했고, 24세이던 1986년 쿠바에 가서 1년간 혁명가 교육을 받았다. 

    선사시대 수준의 전력망

    마두로는 그동안 전임자인 우고 차베스와 함께 쿠바와의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쿠바는 차베스가 1999년 베네수엘라 정권을 차지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차베스가 2013년 사망하자 권력을 승계한 마두로를 적극 지지했다. 마두로는 그동안 쿠바에 무상으로 석유를 지원하는 등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력한 경제재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 공산체제에 생명줄 역할을 했다.

    마두로 정권 붕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서반구 패권 회복 구상의 다음 타깃으로 쿠바를 지목했다. 쿠바의 공산정권은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 쿠바에선 에너지 부족으로 정전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지난 14개월간 전국적으로 정전 사태가 12차례나 발생했을 정도다. 하루 18시간 이상 정전이 이어지는 지역도 다수다. 그나마 사정이 가장 낫다는 수도 아바나에서도 하루 10시간 정도 정전이 이어진다. 

    이는 노후화된 발전시설과 연료 부족 때문이다. 쿠바는 전력 생산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발전소는 대부분 건설된 지 50년 가까이 됐으며, 제대로 유지·보수조차 받지 못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쿠바의 발전설비는 선사시대 기술이라고 할 만큼 낡았다”고 지적했다.



    또 베네수엘라는 화력발전소를 돌릴 정도로 쿠바에 충분한 석유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여 년간 하루 9만~10만 배럴 석유를 쿠바에 무상 또는 저가로 지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강화됐고, 이에 따라 석유 수출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쿠바에 하루 평균 2만7000배럴 원유와 연료를 수출했는데, 이는 2024년 같은 기간 하루 평균 3만2000배럴보다 16% 감소한 수준이다. 

    마두로 정권이 무너진 상황에서 베네수엘라가 석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쿠바 경제는 사실상 붕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력 생산은 물론 교통, 제조업, 생필품 유통 전반이 마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호르헤 피뇽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이 중단되거나 급감할 경우 쿠바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쿠바에서는 지난 14개월간 전국적으로 정전 사태가 12차례나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정전된 수도 아바나 거리 모습. 뉴시스

    쿠바에서는 지난 14개월간 전국적으로 정전 사태가 12차례나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정전된 수도 아바나 거리 모습. 뉴시스

    2020년대 들어 인구 25% 쿠바 탈출

    쿠바 경제는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스페인의 쿠바 인권감시소(OCDH)에 따르면 쿠바 인구의 90%가 극심한 빈곤 상태이고, 70%는 하루에 한 끼 이상 굶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범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루이스 로블레스는 “식량, 의약품, 병원, 학교 등 모든 것이 없는 재난 상황이며, 공무원들은 한 달에 몇 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쿠바는 이미 장기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굶주림, 전염병 확산, 인구 유출에 노출돼 있다”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바나 등 쿠바 주요 도시의 기능은 마비됐다. 쓰레기 수거가 중단되면서 위생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의사는 있지만 사용할 약품이나 수술 장비 등이 없다 보니 의료체계도 붕괴됐다. 해외 가족 지원이 없으면 약품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쿠바 공산정권은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열흘가량 버틸 수 있을 배급량을 공급했지만, 이제는 아예 배급소에 각종 식품과 생필품이 없는 상황이다. 연금 생활자의 월 소득은 3000쿠바페소(약 18만 원)인 반면, 달걀 30개 한 판 가격은 3600쿠바페소(약 22만 원)에 달한다. 관광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되다 보니 젊은 층을 비롯한 기술 인력이 대거 탈출하고 있다. 전체 인구 1093만여 명 가운데 2020년 이후 275만여 명이 쿠바를 떠났다. 중남미 전문가들은 “쿠바가 공산혁명 이후 67년 역사상 최악의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최악 상황인 데다,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다 보니 쿠바 공산당은 4월 개최할 제9차 당대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쿠바 공산당 당대회는 일당 체제인 쿠바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2021년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새 지도자로 선출된 바 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그동안 그 나름 개혁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쿠바 관련 발언의 결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 “쿠바는 그동안 베네수엘라로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석유와 돈에 의존해 살아왔다”며 “그 대가로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두 독재자에게 ‘보안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더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바로 가는 석유나 돈이 더는 없을 것이다. 제로다”라며 “나는 그들(쿠바)이 너무 늦기 전에 합의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쿠바에 대해 군사 압박과 경제제재 등 체제 전복을 언급했지만, 이제는 이런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압박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쿠바를 지탱해온 구조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NYT도 “쿠바 경제가 이제 ‘자유 낙하’ 상태에 처했다”면서 “미국 정부 관리들도 쿠바가 ‘자연 붕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쿠바 강경파로 유명한 릭 스콧 상원의원(공화당)은 “쿠바 공산정권은 올해(2026)나 내년(2027) 붕괴할 것”이라며 “마두로 정권 몰락이 쿠바에 결정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정부에 쿠바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을 요구하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무기한 통제하기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합의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린 건드린 멕시코 노리나

    현재 쿠바의 유일한 생명줄은 좌파가 정권을 잡고 있는 멕시코다. 멕시코는 지난해 쿠바에 하루 평균 1만2284배럴 원유를 수출했다. 이는 전년 대비 56% 증가한 수치로, 멕시코산 원유는 쿠바 전체 원유 수입량의 44%로 1위를 차지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대(對)쿠바 수출은 주권 국가의 법적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며, 모든 것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멕시코는 그동안 석유 공급뿐 아니라, 쿠바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의료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에 놓인 쿠바를 뒷받침해왔다. 

    문제는 셰인바움 대통령과 멕시코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손보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멕시코는 올해 예정된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재검토를 앞두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멕시코 원유의 대쿠바 수출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쿠바계인 카를로스 히메네스 하원의원(공화당)은 “셰인바움 대통령이 쿠바의 살인적인 독재 정권에 석유를 보내며 미국 정책을 계속 훼손한다면 USMCA에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USMCA에 사활을 걸고 있는 셰인바움 대통령이 결국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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