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 지호영 기자
코스피가 2500 선을 맴돌던 1월 22일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5개월 후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5월 29일 코스피는 9개월 만에 종가 기준 2700 선을 뛰어넘은 데 이어 6월 4일 기준 2770.84에 장을 마감했다(그래프 참조). 같은 날 코스피는 연초 대비 15.50% 오른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널뛰기한 S&P500 지수는 연 성장률 1.51%를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두산에너빌리티가 연초 대비 100% 넘는 수익률을 거두는 등 조선·방산·원전주가 주가를 견인한 영향이다. K-식품주 대장주인 삼양식품은 5월 황제주에 등극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한화자산운용, 인피니티투자자문 등을 거쳐 2021년 체슬리투자자문을 설립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코스피 3000 돌파를 예측해 ‘동학개미의 스승’으로 불렸으며, 책 ‘투자의 본질’ 등을 썼다. 6월 3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코스피는 다시 한 번 상승 모멘텀을 맞고 있다. 4일 박 대표를 만나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 전망을 물었다. 그는 “이제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여러 호재 덕분에 연말 코스피는 3100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거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자료 | 구글 파이낸스
‘환율 하락·상법개정안·유동성 장세’ 3박자 호재
왜 그런가.“국내 증시는 외국인 매수 없이 올라갈 수 없다. 최근 환율 하락으로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1475원까지 상승했던 환율이 최근 1370원대로 내려왔다. 앞으로 12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가리라 본다. 약달러 현상이 나타나면 외국인투자자는 달러를 팔아 위험자산을 산다. 외국인 매수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경기가 어려운데 증시가 올라갈 수 있나.
“실제로 내수경기는 안 좋다. 하지만 경제가 잠깐 슬럼프에 빠진 것과 구조적 약세장이 오는 건 다르다. 가령 외환위기 같은 구조적 약세장에서는 외국인투자자가 한국 채권부터 팔아치운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의 한국 채권 매수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볼 때 한국 경제가 불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 또 오히려 경제가 연착륙하면 이른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진다. 그럼 은행·증권·건설 섹터가 상승하게 된다. 최근 이들 섹터의 상승 움직임이 소프트랜딩을 방증한다.”
대선 결과는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사라지는 걸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증시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9배 수준으로 1.1배로만 올라가도 코스피가 3200이 된다. 일본 증시 수준인 1.4배가 되면 코스피는 4300으로 오른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부진한 상황인데 가능할까.
“지금은 국내 증시에서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많아 삼성전자의 획기적인 모멘텀 없이도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반도체가 지지부진한데도 상반기 조·방·원(조선·방산·원전)이 증시를 떠받들었다. 이 3개 주도 섹터에 K-뷰티 산업까지 포함하고 싶다. 또 반도체 업황을 보면 범용 반도체인 D램 가격이 오르고 있어 삼성전자 역시 6만 원대로 올라갈 여력이 마련됐다.”
조선·방산주가 많이 올랐다. 지금 사도 되나.
“현 주가가 높은 편이라 관망을 권한다. 퀀트 투자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주식시장에서는 2월과 8~9월을 약한 달로 본다. 지금 바로 매수하기보다 여름에 조정받아 눌림목이 오는 시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
5월 증권주가 강세였다. 상승 여력이 더 있나.
“PBR이 0.4배에서 0.6배으로 상승했지만, 국내 증시 상승장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섹터는 결국 증권주라서 아직 저렴한 가격이라고 본다. 증권이 은행 역할을 많이 가져왔고 투자은행(IB) 역할도 하고 있다. PBR 1배 미만을 기록할 주식은 전혀 아니라고 본다. 상법개정안 통과로 국내 증시가 건전해지면 더 오를 수 있다.”
단순히 PBR만 낮으면 사도 되나.
“PBR이 0.2~0.3배대 기업 중 영업적자가 지속된 기업은 제쳐야 한다. 중국·동남아시아와 비교해 경쟁력을 완전히 잃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인 산업 분야도 피하는 것이 좋다.”
“삼바 인적분할만으로 시총 30% 늘어날 것”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주식이 있나.“삼성바이오로직스다. 바이오 분야 TSMC가 될 거라고 본다. 기존에도 장기투자에 유망한 종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인적분할로 더 좋아졌다. 삼성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인적분할로 기존 두 회사 간 이해상충 요소도 해결됐다. 서울 강남 60평형 아파트가 40평형과 20평형으로 쪼개져 재건축되는 격이다. 분할만으로 시가총액이 최소 30%는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적대적 M&A(인수합병) 가능성 등 상법개정안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을 생각해보라. 선수들에게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할 상황만 만들어주면 되지, 그 사람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로 팀 쿡이 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상법이 개정돼 주주가치 충실 의무가 생기면 회사가치가 높아지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펀드 수익률도 상승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한국에서는 ‘경영권 위협’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미국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주주들이 회사를 가장 잘 발전시키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뿐이다.”
상법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국내 증시에 얼마나 선반영돼 있나.
“현재는 15% 정도밖에 반영돼 있지 않다. 국내시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진보 정권으로 바뀌어도 상법개정안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의심이 여전하다. 만약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증시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내년 초 이후엔 증시 흐름이 꺾이나.
“대개 홀수 해에는 투자를 권하고, 짝수 해에는 방어를 권한다. 올해 8~9월까지 조정 시기가 지나면 10월 말부터 내년 4월까지 5파 상승이 있을 거라고 본다. 이후 5월부터는 안전자산을 매수하는 것이 좋다. 미국 실업률 추이 등을 볼 때 내년 초부터는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 미국 중간선거로 불확실성이 작용하는 것도 악재다. 이대로라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잡을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