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익률 7.26%에서 올해 0.49%로
올해 들어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가 0%대 수익률을 보여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전북 전주에 자리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동아DB]
반면 올해 실적은 5월 말 기준이지만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5개월 수익률은 0.49%인데, 연말까지 예상 수익을 추정해 환산해봐도 1.16%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해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했던 국내외 주식의 실적이 형편없다. 국내주식은 -1.18%, 해외주식은 1.66%에 그쳤다. 그나마 대체투자 실적이 2.17%로 가장 높고 국내채권 0.45%, 해외채권 0.3% 수준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측은 경기에 연동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장병문 리스크관리센터 성과분석팀장은 “금융자산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주식시장이 활황이었기 때문에 국내의 경우 20% 이상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주식시장이 매우 좋지 않다. 연초부터 미국 금리인상과 더불어 미·중 무역분쟁 이슈가 있어 국내외 주식시장이 모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국내주식 가운데 비중이 큰 기업의 주가가 올해 초부터 약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상위 종목을 보면 삼성전자가 24.2%(31조5062억 원)이고 SK하이닉스 4.3%, 포스코(POSCO) 2.5%, 네이버(NAVER) 2.4%, 현대자동차 2.2% 순이다. 특히 전체 주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사분기 실적 부진과 미·중 무역분쟁의 우려로 상반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가가 연초 대비 12% 하락했다. 이에 국민연금 주식 수익률까지 동반 하락한 측면이 크다.
국민연금 측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큰 만큼 실적은 연말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 팀장은 “5월까지 코스피가 7%가량 빠지면서 국내주식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좋지 않지만 연말에 손해를 볼지 여부는 그때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변론했다.
1년째 CIO 부재로 방향 잃어
수익률 하락의 원인으로 수장의 부재가 첫손에 꼽힌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는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표를 낸 이후 1년 넘게 비어 있다. 기금을 책임지고 운용할 이가 없으니 좋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CIO 발탁은 일러야 8월 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월 8일 기금이사추천위원회가 CIO 공개모집에 지원한 30명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를 실시해 면접 심사 대상자 13명을 정하고, 21일 면접 심사를 치를 예정이다.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CIO가 책임져야 할 일들에 비해 보상은 적기 때문이다. 기본 2년 임기를 마치고 1년이라도 연장하려면 실적으로 업무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중·장기 실적을 목표로 짜여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 또한 임기를 마친 CIO는 관련 업종에 취직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나타내는 업계 관련자들이 지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측은 CIO가 없어도 조직적으로 굴러가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영혜 운용전략실 대외소통팀장은 “운용 실적을 하나의 요소로 평가할 수는 없다. 윗분이 자리에 없다고 해도 밑에서는 계속 일을 하고, 또 조직적으로 굴러가는 부분이 있다. 수익률이 수치적으로 낮은 부분은 복합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식운용실장, 대체투자실장 등 실무를 담당해야 할 각 운용실장이 대거 그만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지 팀장은 “현재 주식운용실장만 공석으로, 채권운용실장이 겸임을 하고 있는 것 이외에 공석은 없다. 언론에서는 엑소더스가 심하다고 하지만, 대부분 한 달 새 공석이 모두 채워졌다. 국민들이 염려할 만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 중에는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측 주장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와 업무 교류를 한 바 있는 업계 관계자 A씨는 “기금운용본부 내부적으로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고, CIO가 있든 없든 시스템적으로 돌아가게끔 꾸려져 있다. 최근 수익률이 좋지 않은 이유를 CIO 부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 단, 금융위기 등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A씨는 CIO보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문제가 더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을 전북 전주에 둬서는 운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국내 기업, 해외 기관과 교류하려면 운용부서가 서울에 상주하는 것이 여러모로 맞다. 젊은 인력은 전주에 내려가 경력을 쌓은 뒤 서울에 있는 관련 업계로 올라올 생각을 하고, 일부는 나이가 많아 민간은 힘드니 국민연금에서 지내겠다고 생각하면 조직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씨는 내부 인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외부 기관을 이용해야 한다는 방책을 내놓았다. “기금운용 아웃소싱 비중을 늘리든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연금자산 규모가 계속 커져 안목을 가지고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수정해 수익률 높여야
지난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규모로는 일본 GPIF(약 1355조 원), 노르웨이 GPF(약 1163조 원)에 이어 3번째다. 반면 수익률은 세계 6대 연기금 가운데 가장 저조하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6대 연기금의 평균 수익률은 캐나다 CPPIB 12.24%, 네덜란드 ABP 9.32%, 노르웨이 GPF 9.32%, 미국 CalPERS 9.16%, 일본 GPIF 6.64% 순이고 국민연금은 5.18%를 기록했다.세계 연기금 수익률이 높은 데는 최근 3~4년간 위험자산 비중을 확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월 한국투자증권이 내놓은 ‘2017년 글로벌 공적자금 세 가지 키워드’ 리포트에 따르면 네덜란드 ABP는 2015년 33.6%였던 주식 비중을 35.2%로 늘렸고, 이미 주식 비중이 50%인 캐나다 CPPIB 또한 점진적으로 55%까지 늘렸다. 일본 GPIF도 주식 비중을 50%로 높이고 채권 비중은 낮추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위험자산, 대체투자 비중 확대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성락 국제금융센터 금융시장실 연구원은 “전 세계 연기금뿐 아니라 국부펀드 대부분이 중·장기적으로 위험자산과 대체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올해는 주식과 채권 모두 밸류에이션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어 수익률 제고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포트폴리오 분산, 인플레이션 헤지 등을 위해 대체투자 수요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책임투자의 필요성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책임투자가 글로벌 연기금 사이에서 큰 화두였다. 일본 GPIF는 2014년 정부 주도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지난해 7월에는 책임투자를 위한 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노르웨이 GPF 역시 몇 년전부터 투자 금지 기업 기준을 세우는 등 책임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책임투자가 시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실적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