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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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수로 돌아온 노소영 ‘300억’… SK “300억 받은 적 없어”

이혼소송 이기려 노태우 ‘새로운 비자금 의혹’ 제기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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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5-10-2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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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왼쪽은 노 관장의 선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12 및 5·18 선고 공판 법정에 선 모습. 동아DB·뉴시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왼쪽은 노 관장의 선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12 및 5·18 선고 공판 법정에 선 모습. 동아DB·뉴시스

    “300억 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 가족이 정상적 방법으로는 가질 수 없는 돈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받은 뇌물 중 검찰 수사에서 벗어나 있던 돈으로 보인다. 만약 그 돈이 실제로 SK에 전달돼 기업 성장의 시드머니가 됐다고 해도, 비자금 300억 원을 기여로 인정해 재산분할 근거로 삼으면 국가가 불법 자금세탁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불법원인급여’를 인정하지 않는 ‘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재확인해줬다.”

    대법 “뇌물은 재산분할 등 법 보호 대상 아냐”

    검사 시절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수사로 ‘노태우 비자금’을 첫 확인한 함승희 변호사는 10월 23일 주간동아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 변호사는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이던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 거액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는 외압으로 중단됐고 노태우 비자금 수사는 1995년에야 본격화됐다.

    대법원은 10월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 재산분할금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봤다.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회장에게 실제로 자금을 지원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비자금은 뇌물이므로 재산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로써 노 관장 측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거액의 재산분할을 이끌어낸 핵심 논리였던 ‘노태우 300억 원 비자금’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다. 해당 주장이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다, 선친을 둘러싼 새로운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쯤 비자금 300억 원을 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 전 회장에게 건넸다”며 모친 김옥숙 여사의 관련 메모와 어음 사진을 근거로 제시했다. 해당 비자금이 SK그룹으로 들어가 기업 성장의 종잣돈이 됐으니 그 과실인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특유재산도 배우자가 유지 및 증식에 기여했다면 이혼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본 대법원 판례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2심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최 회장이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SK그룹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억 원 등 금전이나 특혜를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2심 판결이 나오자 노 전 대통령 측이 SK그룹에 전달했다는 비자금 300억 원을 놓고 ‘사실관계’와 ‘법적 정당성’ 논란이 일었다. 우선 비자금 전달 사실을 입증할 뚜렷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3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누가 어떻게 전달했고, SK그룹 측은 이를 어떻게 보관해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규명된 바가 없다. 노 관장 측이 증거로 제시한 어음 6장도 의문을 샀다.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 300억 원을 전달했다면 그 증표로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인 ‘어음’이 아닌 ‘영수증’을 받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출처 불명 비자금을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노 관장 측이 선친의 또 다른 비자금이 있다고 법정에서 밝힌 의도는 뭘까. 우선 이혼소송 1심 재산분할 규모(665억 원)가 적다는 판단에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한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는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선 재산 형성 합법성을 따지지 않는 경향을 노린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檢 수사 벗어난 뇌물 ‘법 정신’ 따라 추징해야”  

    하지만 노 관장 측이 주장한 ‘300억 원 비자금’은 대법원에서 “불법 뇌물로 보인다”고 판단됐다.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근거로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재확인한 것이다. 불법원인급여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이다. 도박 자금이나 뇌물 등 불법적으로 주고받은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취지다. 앞서 2심 재판부는 “1991년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억 원 정도 금전 지원을 받은 것 자체가 불법원인급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추징금을 완납했다던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새로운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자 진상 규명과 함께 환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 현행법상 추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 대부분이 숨져 추가 수사가 어려운 데다, 뇌물죄 공소시효(최대 15년)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범죄수익 몰수는 피의자가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만 가능하다. 가령 불법 비자금의 경우 본죄인 뇌물죄가 성립해야 몰수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포함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안’이 제출돼 있다. 

    함 변호사는 “(노 관장 측이) 뇌물죄 공소시효도 지났고, 노 전 대통령 등 당사자가 죽었으니 ‘이제 괜찮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싶다”면서 “현행법상 어렵지만 법 정신에 따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숨겨진 불법 비자금을 추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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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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