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로고(왼쪽부터). 각 사 홈페이지 캡처
월트디즈니는 대규모 투자로 콘텐츠 제작 및 비즈니스 모델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오픈AI에 10억 달러(약 1조4300억 원) 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의 투자는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 경쟁을 넘어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기술 우위를 점하려는 초대형 전략이다. 해외 미디어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그 압력이 고스란히 한국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웨이브 떠나 넷플릭스 손잡은 SBS
생존을 위해 국내 OTT 생태계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는 비용 절감, 규모의 경제 확보, 콘텐츠 투자 확대를 목표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해외 OTT에 맞서는 ‘토종 OTT 연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양사는 2023년 12월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티빙과 웨이브의 연대 움직임은 표면적으로는 국내 OTT 시장에 ‘공동 전선’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시장 내 경쟁 구도는 점점 더 분절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웨이브 주요 주주인 SBS가 약 1년 전 넷플릭스와 협력계약을 체결하면서 ‘탈웨이브’ 동향을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30일부터 웨이브에서는 SBS 콘텐츠가 더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하는 등 플랫폼으로서 강력한 배급력을 증명해온 데다, 재정도 안정적이라 SBS에는 달콤한 선택지였다.
쿠팡플레이는 스포츠 중계라는 비장의 카드로 독자 노선을 구축하고 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단독 중계권, 국가대표 A매치, K리그 중계 등 초대형 스포츠 콘텐츠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스포츠 중심 슈퍼 앱’(애플리케이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스포츠는 시청 충성도와 실시간 시청률이 매우 높은 영역이라 한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하면 타 OTT 기업이 도전장을 내밀기 어렵다. 쿠팡플레이가 가입자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플랫폼 로크인(lock-in) 효과를 강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국내 OTT 경쟁 구도는 기존 드라마·예능 중심에서 스포츠와 이커머스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내 OTT들의 시도가 넷플릭스의 파죽지세 앞에서 효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다. 넷플릭스는 2024년 상반기 기준 한국에서만 약 1조 원 이상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으며 ‘오징어 게임’ ‘지옥’ ‘D.P.’ ‘블랙의 신부’ 등 여러 한국 드라마를 세계적 히트작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 제작사의 IP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로 수출돼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정착된 만큼 제작사와 방송사가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확대해가는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티빙·웨이브 등 국내 OTT에 구조적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높은 제작비 부담, 제한된 시장 규모, 기술·마케팅 투자 능력의 격차가 누적되면서 국내 OTT의 생존 전략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스포츠 콘텐츠 투자 강화하는 쿠팡플레이
결국 한국 OTT는 세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티빙과 웨이브, SK텔레콤, CJ, 방송 3사 등 기존 시장 플레이어들이 강력한 통합을 통해 넷플릭스에 맞설 수 있는 대규모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통합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만큼의 투자 여력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여전히 장애물이다.둘째, 쿠팡플레이처럼 특정 장르나 콘텐츠 형태에 집중해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스포츠, 어린이 콘텐츠, K팝 등 세계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지 않아도 국내시장에서 독보적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셋째, OTT 서비스를 이커머스나 포인트 경제와 결합하는 결합 구독 모델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빅테크 기업이 결제·쇼핑·멤버십과 OTT 서비스를 묶어 판매함으로써 이용자 로크인을 강화한다면 이는 전통적 OTT와는 다른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 독주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 OTT가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제휴, 콘텐츠의 기술적 혁신, 다른 플랫폼과의 결합 모델, 스포츠 같은 비정형 콘텐츠 도입은 생각보다 강력한 경쟁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전략을 빠르게 확립하고 제작사·방송사·플랫폼을 아우르는 협력 구조를 만들어내는 OTT가 살아남을 것이다. 넷플릭스 등 해외 OTT 공세 속에서 한국 토종 OTT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한국 콘텐츠산업 전체를 재정렬할 변곡점임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