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 얀 판에이크, 60×82cm, 1434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그림 중앙에 남녀 한 쌍이 화면을 꽉 채울 만큼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부부가 서 있는 곳은 침실입니다. 부인은 진녹색 드레스를 입고 오른쪽 손을 남편의 왼손 위에 손바닥이 보이게 올려놓았고, 흰 천을 마치 미사포처럼 머리에 쓰고 있으며, 왼손으로 풍성한 치맛자락을 잡아 불룩한 배 쪽으로 끌어 올린 모습입니다. 남편은 검은색 중절모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망토 형태 코트를 입고 있는데, 가장자리에 모피를 두른 매우 고급스러운 옷입니다.
남편은 서약하듯 오른손을 가슴 앞에 세우고, 왼손으로는 부인의 손을 잡는다기보다 받치고 있습니다. 유럽 전통 결혼식에서는 남녀가 서로 오른손을 잡는데, 그림 속 아르놀피니는 왼손으로 부인의 오른손을 받치듯 해 결혼식이냐 약혼식이냐 논란이 있습니다. 이목구비가 자그마한 부인과 달리 남편은 코가 길고 크며 날카로운 인상입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눈썹과 주름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이들이 서 있는 방 안 풍경을 보면 부유한 집안임을 알 수 있는데, 천장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습니다. 그림 오른편으로 붉은 휘장이 쳐진 침대가 자리하고, 맞은편 창문 아래에 오렌지가 놓여 있습니다. 뒤편 벽면 정중앙에 달린 톱니바퀴 모양의 동그란 볼록 거울 속에 부부의 뒷모습과 함께 남성 2명이 보입니다. 이들 중 오른쪽 푸른색 옷을 입은 남성이 화가 에이크고, 그 옆에 붉은색 옷을 입은 이는 그의 조수입니다. 거울 아래에는 붉은색 소파가 놓여 있고, 부부 발치에는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림 왼쪽 하단 구석에는 나무로 만든 슬리퍼 한 켤레도 보입니다. 그림 속 모든 인물과 사물은 마치 사진을 찍은 듯 세밀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이 더 궁금해집니다.
최초의 2인 초상화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마치 결혼식 기념촬영처럼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제작될 시기 동서양에서는 세계와 인간을 보는 눈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 산수화를 보면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주 작게 표현한 대신 산과 자연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 오면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대거 등장합니다. 인식체계와 예술양식에서 자연보다 인간이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인간보다 신과 자연이 주인공이었습니다. 1434년이라고 제작연도를 확실히 명기한 이 그림은 삶을 주제로 하고 인물 중심으로 묘사해 당시의 변화된 세계관과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소중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