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멩코는 일반적으로 개인이 즐기는 음악이며 무용.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관중이 없으면 성립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때의 관객은 객석에 앉아 있는 근대적 관중이어서는 안 된다. 그 자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관중, 즉 공동체의 구성원이어야 한다.
플라멩코의 관객은 먼저 무용수들의 화려한 의상과 섬세하고 유혹적인 팔놀림, 대지를 세차게 밟아 두드리는 발 구름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멜로디만으로도 집시의 바람과 눈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플라멩코의 기타 연주에 사로잡힐 것이다. 손과 손을 마주쳐서 박자를 잘게 쪼개고, 그 속에 다시 춤과 음악을 삽입해 집시의 애환을 표현하는 공연이 펼쳐질 때면 관객은 어느새 무용수와 하나 되는 공동체를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플라멩코의 매력이다.
집시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는 플라멩코를 무대화해 세계 시장에 선보인 춤꾼은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데스. ‘안토니오 가데스 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흥분한 나머지 양쪽 볼에 홍조가 생기고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연에 대해 신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공연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어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2004년 서울에서 펼쳐졌던 한 플라멩코 스타의 공연을 기억할 것이다. 13명의 연주자와 1명의 남자 무용수의 땀이 커다란 극장을 가득 메웠던 기억. 2004년 6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호아킨 코르테스의 플라멩코 공연 말이다. 필자는 당시 2층에서 이 공연을 관람했는데, 대형 스크린 속에 드러난 남자 무용수 호아킨 코르테스의 몸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춤으로 다져진 그의 근육은 운동선수의 것과 달리 가늘고 길었다. 호아킨 코르테스의 무대 매너와 카리스마에 빠진 관객들은 공연 내내 소리를 질러댔다.
2005년 다시 찾아온 플라멩코,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는 이 공연처럼 서울을 뜨겁게 달구면서 더불어 플라멩코가 개인의 춤이 아닌 집단 예술임을 보여줄 것이다. 특히 이번 무대는 청각장애인 안무가 호아킨 마르셀로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예술감독인 웨인 폭스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희망과 꿈, 정열을 가지고 시작할 한 해의 첫 단추를 구슬프지만 자유롭고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을 품은 춤과 같이 시작하면 어떨까. 문의 02-1588-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