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부터 이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무영 감독이다. 영화 ‘휴머니스트’는 시나리오 작가, 팝 칼럼니스트, 방송 리포터 등 전방위로 활동해 온 이무영의 감독 데뷔작. 감독이 되기 전부터 그는 충무로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박찬욱 감독의 B급 영화 ‘삼인조’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의 시나리오를 모두 그가 썼다. 영화와 음악, 그리고 대중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이기에 이무영이 만드는 영화가 어떤 장르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던 것이 사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영화 ‘휴머니스트’는 기존 장르 영화의 공식과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를 뒤집으며 시작한다.

전역한 군장성의 부잣집 아들인 마태오(안재모)는 어린 시절부터 돈의 정치-사회적 마력을 체득한 인물.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고, 음주운전으로 경찰관을 죽인다. 그리고 거액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을 시켜 아버지를 납치하는 범죄를 계획한다. 돈 때문에 마태오의 친구가 된 고자 유글레나(강성진)와 초등학교 때 뇌를 다쳐 지능이 떨어지는 아메바(박상면)가 납치극을 벌이지만, 일은 엉뚱하게 꼬이고 이들의 계획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경찰에게 맞아 장독이 오른 아메바가 똥물을 세 바가지나 마시고,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다리를 끌고다니는 거지가 등장하며,죽마고우를 삽과 망치로 내리치는 등 영화는 시종일관 엽기적-충격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수녀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겁탈하려 드는 사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영 볼썽사나운 일. 갖가지 방식으로 현대인의 모습을 조롱하며 “그래, 이래도 우리 사회가 잘 돌아간다고 믿느냐”고 반문하는 감독의 목소리는 인디밴드의 음악만큼이나 쩌렁쩌렁하게 관객의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