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물 때면 길이 열려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충남 서산의 작은 섬 간월도와 그 안에 자리한 간월암.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GETTYIMAGES
먼저 간월암은 충남 서산 부석면 간월도라는 작은 바위섬에 위치한 암자다. 면적이 3000㎡(약 900평)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섬이지만, 부처와 산신에 해신(용왕)까지 모신 어엿한 성지다. 간월도는 원래 천수만 한가운데 자리해 육지에서 배를 타고 한참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낙도였다. 1980년대 초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주도한 서산간척사업을 통해 지금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육지에서 50m 남짓 떨어져 있고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무학대사가 도를 깨우친 섬, 간월도
이곳은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무학대사(1327~1405)가 수도 중 홀연히 바다 위 달을 보고 도를 깨우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간월도(看月島: 달을 보는 섬)라는 이름도 그렇게 생겨났다.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일찌감치 내다봤고, 조선 개국 당시 왕사(王師)로 책봉돼 도읍을 정하는 데 관여하는 등 도승(道僧)의 면모를 보였다. 일반인에게는 그의 스승인 나옹선사와 함께 풍수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무학대사가 간월도에서 기도 생활을 했으니 풍수적으로 길지였음이 분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수행자 혹은 종교인의 기도처는 대부분 명당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좋은 기운이 깃든 터가 수행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깨달음 혹은 영적 각성을 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이 섬에 있는 간월암 또한 서해안의 작은 암자지만 존재감이 범상치 않다. 이곳은 간척사업 전 이미 바다 밑으로 천년 고찰 부석사(충남 서산 소재)가 있는 도비산과 그 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육지에서 뻗어 내려온 힘찬 산맥(용) 기운이 바다 밑을 통해 간월암에 이르러 구슬처럼 영롱하게 맺힌 영지(靈地)인 것이다.
간월도에서는 또 다른 훌륭한 인물의 자취도 발견된다. 대일 항쟁기에 가야산 자락에서 득도한 만공선사(1871~1946)는 조선 독립을 위해 이곳에서 천일기도(1942년 8월∼1945년 8월)를 드렸다. 만공선사가 기도를 마친 뒤 사흘 만에 조선이 독립을 맞이하는 경사가 생겨 간월암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이처럼 간월도는 우리나라가 격변을 겪을 때마다 특수한 인물에 얽힌 전설 같은 일화가 탄생한 곳이다. 풍수적으로 표현하자면 시대 흐름, 즉 천지운(天地運)을 감지하는 예지력과 관계가 깊은 명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몽생미셸 바위섬과 수도원. GETTYIMAGES
미카엘 천사 이야기 품은 몽생미셸
프랑스 몽생미셸 역시 대서양의 거센 조수차가 만들어낸 바닷길 성지로 유명하다. 노르망디 해안에는 밀물 때면 섬이 되고, 썰물 때면 광활한 갯벌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는 둘레 약 960m의 작은 바위섬이 있다. 몽생미셸은 이 섬의 이름이자, 그 한가운데 우뚝 선 높이 90여m에 이르는 수도원 이름이기도 하다.지하에서 융기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뤄진 몽생미셸섬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중세의 좁은 골목과 건축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구조다. 이곳은 건축적·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1979년 프랑스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 명성답게 신비한 스토리도 간직하고 있다. 708년 프랑스 아브랑슈 지역 주교 오베르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바다의 바위 위에 성을 지으라”는 계시를 전했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오베르 주교는 외딴섬에 성소를 세우고 ‘성(聖) 미카엘의 산’이라는 뜻의 몽생미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작은 예배당으로 출발한 몽생미셸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수도원으로 확대되며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중요한 순례지로 떠올랐다. 특히 10세기 무렵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수도원 활동이 시작됐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드러나기도, 혹은 숨겨지기도 하는 이 섬의 조건은 세속에서 벗어나 신성을 추구하는 수도사들에게 더없이 좋은 수행 공간이었다.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기도와 금욕, 필사 작업을 통해 지식과 신앙을 보존했다. 중세시대에는 조수 간만의 차가 최대 14m에 달하는 섬의 지형적 특징으로 몽생미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했다. 그럼에도 이곳은 중세 유럽에서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불리며, 죽기 전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성지 중 성지’로 꼽혔다.

몽생미셸 수도원의 공중정원. 수도사들이 회랑을 거닐며 명상과 사색을 하던 곳이다. GETTYIMAGES
이외에도 몽생미셸은 종교전쟁 때 개혁파들의 침범을 당하지 않은 난공불락 요새였고,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 1세 때는 교도소로 사용되는 등 지형에 얽힌 여러 역사를 갖고 있다.
여의도 연상케 하는 천연 수구막이
몽생미셸은 땅 기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일단 몽셀미셸섬은 그 자체로 물이 허망하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치해놓은 천연 ‘수구(水口)막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쿠에농강이 대서양쪽으로 흘러와 형성된 하구에 섬이 위치하는데, 마치 한강 여의도처럼 떡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풍수에서 수구막이는 재물을 상징하는 물길을 순화하고 보호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또 천사 이야기가 전해지는 수도원 터는 우뚝 솟은 첨탑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기운이 강하게 형성된 명당이다. 수도원 설계에도 중세시대 승천(昇天)을 의미하는 ‘수직성’이 극적으로 표현돼 있다. 당시 건축이 터 기운에 감응해 이뤄졌던 것 같다.
수도원은 전체 3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하층은 저장고와 군사방어구역, 중층은 수도사들의 일상 공간, 상층은 예배당과 회랑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공중정원인 클로이스터는 수도사들이 정원 둘레 회랑을 거닐며 명상과 사색을 하던 곳으로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수도원 첨탑 꼭대기에 놓인 대천사 미카엘 상은 마치 하늘과 땅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처럼 방문객들에게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다.
필자는 수도원 내 예배당에서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어느 순간 머리 백회 쪽으로 기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청량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했다. 한국의 성스러운 명당터에서 체험한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이처럼 종교적 성소는 터의 기준으로 볼 때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