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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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대한 목소리들을 수집한다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마리아 칼라스부터 김윤아까지… 시대와 장르 초월해 인간의 영혼 울려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5-06-10 09: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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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GETTYIMAGES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GETTYIMAGES

    나는 무엇이든 수집한다. 시간의 먼지가 내려앉은 골동품과 현대 그림들, 낡은 빈티지 물건들에 둘러싸여 산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모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목소리다.

    수장고에서 이뤄지는 ‘기묘한’ 만남

    혹자는 내게 “대체 엔니오 모리코네와 안숙선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 “마리아 칼라스 다음에 왜 빌리 홀리데이를 듣느냐”며 의아해한다. 그들에게는 내 플레이리스트가 무질서한 잡동사니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수집가는 안다. 18세기 청화백자 옆에 20세기 바우하우스 의자를 놓는 안목, 고려청자와 앤디 워홀을 한 공간에서 대화시킬 수 있는 감각. 그것이 수집의 진정한 예술이다. 그렇다. 나는 목소리를 수집한다.

    내 보이지 않는 수집품 창고에서는 기묘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을 미레유 마티유가 부른 ‘칼리파 부인(La Califfa)’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놓여 있다. 

    미레유 마티유의 ‘칼리파 부인’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1970년대 이탈리아 영화의 먼지 낀 필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에서는 2001년 한국의 봄날 떠나간 사랑의 빈자리에 피어난 벚꽃을 봤다. 이 두 목소리 사이에는 30년 시간과 1만㎞ 거리가 있지만, 내 수집장에서 그들은 이웃이다. 왜? 두 목소리 모두 ‘떠남’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재즈사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빌리 홀리데이. 뉴시스

    재즈사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빌리 홀리데이. 뉴시스

    미소라 히바리의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이 흐를 때 나는 일본 도쿄 스미다 강변의 노년을 본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마리아 칼라스의 ‘정결한 여신(Casta Diva)’에서는 고대 갈리아의 달빛 아래 선 드루이드 여사제를 만난다. 일본의 강물과 로마의 달빛, 얼마나 동떨어진 조합인가. 하지만 들어보라. 두 목소리 모두 ‘흐름’을 노래한다. 하나는 시간의 흐름을, 다른 하나는 신성의 흐름을.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가 러시아 민요 ‘백학’을 노래할 때의 장엄한 슬픔과,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가 ‘향수(Sodade)’를 속삭일 때의 깊은 그리움이 어떻게 다른가. 시베리아 설원과 대서양의 작은 섬, 바리톤과 여성 보컬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것을 노래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말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루트(Strange Fruit)’를 들어본 적 있는가. 1939년 홀리데이는 미국 남부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흑인들 시신을 노래했다. 그리고 20년 후 프랑스에서 바르바라는 ‘괴팅겐’을 불렀다. 전쟁으로 갈라진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꿈꾸며 한 사람은 증오를 고발했고, 한 사람은 용서를 노래했다. 하지만 두 목소리 모두 상처 입은 인류를 향한 간절한 호소였다.

    내 수집품 중에는 조공례의 구음 시나위 ‘대지의 창’도 있다. 서양음악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소리, 한반도의 5000년 바람과 산과 강이 만들어낸 이 원초적 울림을 들을 때 나는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른 슈만의 정제된 독일 가곡을 떠올린다. 극과 극이다. 하나는 야생이고, 하나는 문명이다. 하지만 둘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노래로 표현하려는 인간의 숭고한 시도다. 

    “목소리 수집은 곧 자신을 발견하는 일”

    영혼을 울리는 싱어송라이터 김윤아.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혼을 울리는 싱어송라이터 김윤아.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도대체 이 노래들의 공통점이 뭐냐”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루브르에 가서 이집트 파라오 석상과 다빈치가 왜 같은 건물에 있느냐고 묻습니까. 대영박물관에서 그리스 조각품과 중국 도자기가 왜 한 건물에 있느냐고 따집니까.”

    위대한 박물관이 인류 문명의 정수를 한곳에 모으듯, 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목소리들을 수집한다. 시대와 장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인간의 영혼을 울린 그 목소리들을.

    이 글은 나의 수집품을 공개하는 전시회다. 동시에 이것은 인류 전체의 유산이기도 하다. 마리아 칼라스가 신에게 기도할 때 그 신성함과 안숙선이 ‘진도아리랑’에서 풀어내는 한의 정서가 어떻게 하나의 인류애로 수렴되는지 보여주고 싶다.

    편견을 버리고 들어보라.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하며(Gracias A La Vida)’ 다음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가 나와도 놀랍지 않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다음에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백 투 블랙(Back To Black)’이 이어져도 당황하지 마라. 

    인간 목소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악기다. 현악기의 섬세함, 관악기의 웅장함, 타악기의 리듬감을 모두 품고 있는 동시에 그 어떤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감정의 떨림을 담아낸다. 목소리를 수집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수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전혀 다른 시공간의 두 목소리가 당신 안에서 만나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경험하기를. 

    이제 예술 소비자의 시대다. 덕후, 오타쿠, 컬렉터, 인플루언서 모두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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