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매끈한 K팝 세계에도 서울지하철 1호선 열차와 한강 다리, 팍팍한 콘크리트와 아파트의 자리는 있다. 특히 청춘의 절망과 방황이 K팝의 주요 테마로 부상한 지난 10년간 이런 이미지는 제법 자주 활용돼왔다. 24인조 걸그룹 트리플에스(tripleS)는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거리에서 춤추는 소녀’를 주된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장 임팩트 강한 작품 중 하나였던 ‘걸스 네버 다이(Girls Never Die)’에 이어 최근 발표한 신곡 ‘깨어(Are You Alive)’에서도 이들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계관을 선보인다.
스물 네 명이 좁은 방에 모여 있는 뮤직비디오 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어지럽게 쌓인 스물네 개의 운동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된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깨어’는 언젠가 세계와 화해할 청춘의 성장통을 그리는 다른 청춘 서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위협적인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녀들의 1인칭 시점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이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 ‘꿈’은 절망으로부터 도피처이면서 동시에 절망의 근원이기도 하다. 제목처럼 ‘깨어’나면 정확히 무엇이 이뤄지는지 선명하지 않다. “더 숨이 차 / 더 뛰어도 꿈은 더 사라져” 같은 절망의 표현은 절절하게 와 닿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존재다. 이들의 군무는 때로 카메라를 향해 쏟아지지만 때로는 카메라를 철저히 외부인으로 남겨둔다. ‘여고생’을 언제라도 가해할 수 있는 ‘시선’조차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는 데는 무력하다는 듯이. 그러니 굴하지 말고 끝내 살아남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소재의 민감성을 설득력 있게 돌파하면서 울림이 큰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스물 네 명이 좁은 방에 모여 있는 뮤직비디오 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어지럽게 쌓인 스물네 개의 운동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된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24인조 걸그룹 트리플에스가 5월 12일 새 앨범 ‘어셈블25’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깨어’를 선보이고 있다. 뉴스1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녀들
교복이 등장하는 어느 K팝 뮤직비디오도 ‘여고생 대상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깨어’는 거기서 용기를 낸다. 한국식 체크무늬 교복 치마에 때가 탄 흰 운동화를 신은 여고생들이 일렬종대로 흙바닥에 서서 춤추는 광경은 매우 스펙터클하다. 그들은 보잘것없고, 상처받았으며, 언제라도 대상화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긴장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바닥을 힘껏 짓밟고 서서 도전적인 자세로 춤춘다. 춤추는 멤버들로부터 뒷걸음질치는 카메라를 멱살 쥐듯 붙잡고 “사실 난 행복하고 싶은 걸 누구보다 더”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다.‘깨어’는 언젠가 세계와 화해할 청춘의 성장통을 그리는 다른 청춘 서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위협적인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녀들의 1인칭 시점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이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 ‘꿈’은 절망으로부터 도피처이면서 동시에 절망의 근원이기도 하다. 제목처럼 ‘깨어’나면 정확히 무엇이 이뤄지는지 선명하지 않다. “더 숨이 차 / 더 뛰어도 꿈은 더 사라져” 같은 절망의 표현은 절절하게 와 닿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존재다. 이들의 군무는 때로 카메라를 향해 쏟아지지만 때로는 카메라를 철저히 외부인으로 남겨둔다. ‘여고생’을 언제라도 가해할 수 있는 ‘시선’조차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는 데는 무력하다는 듯이. 그러니 굴하지 말고 끝내 살아남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소재의 민감성을 설득력 있게 돌파하면서 울림이 큰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