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7

2023.12.01

다뉴브강의 진주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중세 시간여행 ②

[재이의 여행블루스] 성 이슈트반 대성당 등 2000년 역사 품은 고풍스럽고 화려한 건축물 즐비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3-12-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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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고자 만든 영웅광장. [GettyImages]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고자 만든 영웅광장. [GettyImages]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노란색 아담한 객차를 타고 도착한 영웅광장역. 1896년 나무로 만든 지하철 역사(驛舍)와 기둥은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유지·보존이 잘 돼 있다. 저심도 전철역으로 시공돼 3m 계단만 걸어 올라가면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고자 만든 ‘영웅광장(Heroes’ Square)’에 다다른다. 헝가리어로는 ‘회쇠크 광장’으로 불리는 광장 한복판에는 높이 36m의 건국 1000주년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기둥 위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데 오른손에는 왕관을, 왼손에는 로마교황의 십자가를 들고 있다. 기념비 받침 부분에는 유목민이던 헝가리 부족을 이끈 역대 왕과 영웅들의 조각이 각기 다른 포즈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웅광장 좌우에는 헝가리 국립미술관 중 하나인 ‘부다페스트 미술관’과 ‘뮈처르노크 현대미술관(Műcsarnok Muzeum)’이 나란히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특히 현대미술관은 라파엘로, 루벤스, 고흐, 마네, 르누아르 등 유명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전시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풍스러운 안드라시 거리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 고풍스러운 성 이슈트반 대성당. [박진희 제공]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 고풍스러운 성 이슈트반 대성당. [박진희 제공]

    영웅광장은 부다페스트의 샹젤리제 거리로 불리는 ‘안드라시 거리(Andrássy út)’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안드라시 거리는 1868년 당시 외무장관이던 안드라시 백작이 프랑스 파리에 다녀온 후 도시 계획을 세워 1872년 완성한 거리다. 에르제베트 광장에서 영웅광장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총 길이 약 2.3㎞의 대로다. 길 양옆으로는 지은 지 100년 넘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고풍스러운 멋을 뽐낸다. 건축물 하나하나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보존 거리로 지정했다. 중세 건축물들의 화려함에 넋을 잃고 걷다 보면 어느 샌가 웅장하고 기품 넘치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án Bazilika)’에 이른다.

    헝가리의 성인이자 초대 국왕이던 이슈트반에게 봉헌된 대성당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1851년 착공돼 1905년 완성됐다. 헝가리 건국의 해인 896년을 기리고자 96m 첨탑을 세웠는데, 이는 국회의사당과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탑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다페스트 시내 전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당대 저명한 헝가리 화가였던 모르 탄(Mór Than), 베르털런 세케이(Bertalan Székely), 줄러 벤추르(Gyula Benczúr)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중앙 돔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헝가리 국민화가 카로이 로츠(Károly Lotz)의 작품이다. 대성당의 하이라이트는 제단 뒤편 황금 성골함에 보존된 이슈트반의 오른손 미라인데, 이슈트반의 미라가 발견됐을 당시 오른손만 부식되지 않아 지금까지 전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오른손이 항상 십자가를 잡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직접 눈앞에서 오른손 미라를 마주하는 순간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성스러운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세월 따라 이어진 도로를 여유롭게 걷다 보면 부다페스트의 낭만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마냥 걷기만 해도 행복감이 솟구친다. 도시 매력에 푹 빠지다 보면 현지인의 삶과 문화까지 속속들이 눈에 들어온다. 걷다가 출출해질 때는 헝가리식 육개장이자 건강식인 ‘굴라시’가 제격이다. ‘구야시’로도 불리는 이 음식은 쇠고기와 양파, 고추, 파프리카 등을 넣어 만든 매운 수프로 헝가리 전통음식이자 가장 대중적인 메뉴다. 칼칼하고 시원해 우리 입맛에도 무척 잘 맞는다. 헝가리는 과거 공산국가 최초로 공산당을 해체했는데, 당시 헝가리의 개혁을 ‘굴라시 공산주의’라고도 지칭했다.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드는 굴라시 조리법이 다당제와 자본주의를 섞은 개혁 방법과 닮아서다. 굴라시는 얼큰한 국물 요리라 빵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헝가리 와인까지 곁들인다면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충분하다.

    이색적인 세체니 온천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 외부가 이색적인 세체니 온천. [GettyImages]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 외부가 이색적인 세체니 온천. [GettyImages]

    하루의 노곤함을 달래는 데는 헝가리 온천이 좋다. 헝가리 온천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고대 로마 시절에 시작됐는데, 16~17세기에 걸쳐 오스만제국의 터키인들이 로마 온천을 터키식으로 발전시켰고 부다페스트는 유럽을 대표하는 온천지역이 됐다. 한국 온천과 비교하면 그리 뜨겁지 않고 미네랄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시내를 걷다 보면 따뜻한 연기를 내뿜는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부다페스트에만 각기 다른 특성과 효능을 뽐내는 온천이 100여 개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세체니 온천(Széchenyi Baths and Pool)’이다. 스페인의 떠오르는 신예 사진작가 요시고(Yosigo)가 찍은 세체니 온천 사진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온천은 야외 온천 3개와 실내 온천장 15개를 갖췄는데 지하 1000m에서 뽑아 올리는 뜨거운 온천수가 으뜸이다. 노란색 건물은 1913년 지어졌고, 정식 온천으로 개방한 때는 1931년이다.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 외부는 온천장 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로마 양식을 살린 내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부다페스트 온천들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수영장을 겸하는데, 이곳 역시 온천욕을 할 때 반드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온몸의 피로가 풀렸다면 다시금 힘을 내 다음 목적지로 향해보자.



    부다페스트 건축의 백미 국회의사당 야경. [박진희 제공]

    부다페스트 건축의 백미 국회의사당 야경. [박진희 제공]

    첨탑과 돔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국회의사당’은 부다페스트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헝가리 왕국의 수도 1000년을 기념해 지은 건물로 측면 길이가 123m, 다뉴브강 쪽을 향한 정면 길이는 268m, 최고 높이는 96m나 된다.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의사당 건물이다.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화려하고 강렬한 365개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 앞 광장은 헝가리 민주화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1956년 공산 독재에 맞서 투쟁한 ‘헝가리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소련군 철수 및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켜켜이 쓰러져간 곳이다. 국회의사당은 밤이 되면 아름다운 불빛이 강물에 어려 더욱 화려해지는데 다뉴브강 좌우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즐겨보자.

    루인 펍에서 밤 감성 즐기기

    [GettyImages]

    [GettyImages]

    며칠 동안 종횡무진 다녀 도시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졌을 테니, 이제는 좀 더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볼 차례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뜨겁고 활기찬 곳, ‘루인 펍(ruin pub)’에서 마지막 밤을 아름답게 장식해보자. 헝가리에 서양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많은 공장이 이웃 국가로 이주했다. 이렇게 남은 공장 건물들은 철근 기둥과 거친 벽돌만 남아 흉물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유독 빈 공장 건물이 많은 유대인 지구에서 폐건물들을 개조해 펍이나 문화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루인 펍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면서 부다페스트의 밤 문화로 자리 잡았다. 루인 펍은 단순히 술만 파는 것이 아니라, 공연도 하고 영화도 보여준다. 이색적인 풍경에 감성까지 충만하다 보니 유명한 루인 펍은 데이트를 하는 현지인과 펍 문화를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붐벼 이들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할 정도다.

    부다페스트는 2000년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넘쳐난다. 그러면서도 동유럽 특유의 소박함이 도시 곳곳에서 묻어난다. 서울 못지않은 큰 도시지만, 볼거리가 대부분 도시 중심과 다뉴브강변에 몰려 있어 걸어서 도시를 탐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마도 머물면 머물수록 부다페스트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두고 보라. 며칠을 예정하고 이 도시를 방문했든 반드시 그 일정보다 더 오래 머물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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