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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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맛보기 힘든 토종쌀 이야기

‘돼지찰’로 떡 해서 먹고, ‘불도’로 임금 기분 내볼까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10-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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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의 고향을 모르고 먹어왔던 흰쌀. [사진 제공·김민경]

    벼의 고향을 모르고 먹어왔던 흰쌀. [사진 제공·김민경]

    얼마 전 맛 좋다는 햅쌀 한 포대를 얻었다. 여름에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4kg짜리 쌀이 있는데 통 줄지가 않아 여태 햅쌀밥 한 그릇 지어 먹지 못하고 있다. 얻은 게 햅쌀이 아니라 곰팡이 곱게 핀 치즈였거나, 잘 훈연한 돼지뒷다리 햄이었다면 이틀을 두지 못하고 다 먹었을 테다. 혹은 쌉싸래한 맛에 젓갈양념이 푹 밴 갓김치나 탱탱한 백명란 한두 줄이 있었다면 햅쌀밥을 안쳤을지도 모른다. 염치없게도 밥을 앞에 두면 윤기와 찰기, 촉촉함을 따지는 등 제법 까탈스러워진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쌀 소비량을 보면 꾸준히 줄고 있다. 2009년에는 인당 쌀 74kg, 2018년에는 61kg을 소비했다. 10년 사이 20%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2016년부터 쌀 소비량 감소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유명 요리사와 연예인이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집밥’을 시도하며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 시점과 맞물린다. 더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숨은 고수들의 가정식 요리법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밥을 짓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집에서 직접 지어 먹는 밥 한 끼가 자기표현 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돼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우리가 먹는 쌀 요리는 대부분 ‘밥’이다. 맨밥, 돌솥밥, 김밥, 연잎밥 같은 것들이다. 반찬이나 다른 요리와 곁들여 먹는다 해도 밥이 가진 고유한 맛이 식사의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흰쌀밥에 김장김치, 물에 만 밥에 오이지, 식은 밥에 굴비구이를 떠올리면 절로 군침이 돈다. 맛 좋은 상상의 중심에는 잘 지은 밥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품종의 쌀이 꽤 많이 재배, 유통되고 있다.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아키바레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벼 재배 면적은 73만7770ha(약 7377km2)다. 이 중 아키바레는 6만ha, 고시히카리는 1만2925ha, 히토메보레는 2324ha를 차지한다. 일본 품종의 재배 면적 비율이 전체 벼 재배 면적의 10%를 넘어선다. 경기도만 보자면 일본 품종 재배율이 64.3%, 충북은 34%에 달한다.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권 사람들은 일본 품종의 쌀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일본 품종 쌀을 아무렇지 않게 구입하는 편인데, 이유를 돌이켜보니 스스로가 우스워진다. 일본으로 여행을 가보면 그야말로 밥맛이 꿀맛이다. 시골에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라도 밥맛은 최고다. 그 경험들이 일본 품종 쌀에 묵직한 신뢰를 심어줬다. 물론 내가 지은 밥이 그토록 꿀맛인 적은 없었다. 변명을 보태자면 ‘통일벼’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아키바레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970년. 이때 밥상을 차지하고 있던 통일벼에 비해 일본 쌀의 품질과 밥맛이 좋다는 인식이 넓고 깊게 퍼졌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종벼 살리려는 노력 잇따라

    아름다운 황금 들판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획일화의 결과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사진 제공·김민경]

    아름다운 황금 들판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획일화의 결과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사진 제공·김민경]

    그럼 우리 벼, 토종쌀은 어디에 있을까. 한반도의 벼농사 역사는 5000년에 이르니, 일본과 비교해 뒤처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1910년부터 3년간 일본이 한반도의 벼 품종을 조사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토종벼는 1451가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일제강점기 내내 한반도의 쌀 생산량을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고자 다수확 품종의 농사를 강요했다. 이때 많은 토종 품종이 사라졌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 생산성이 좋은 통일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한국 고유 품종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런 와중에 토종벼의 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이어가려는 노력도 없지 않았다. 국가기관과 단체의 움직임도 있었겠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 빛을 발하기도 했다. 토종씨드림의 초대 회장인 안완식 박사, ‘토종 씨앗의 역습’이라는 책을 펴낸 김석기 씨, 우보농장을 운영하며 280여 종의 토종벼를 키우고 거두는 이근이 농부, 국제슬로푸드협회 ‘맛의 방주’에 등재된 ‘버들벼’를 재배하는 황진웅 농부 같은 사람들이 있다. 벼를 포함해 다양한 작물의 토종씨앗을 보존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토종벼는 자라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맞춰 최적의 상태로 토착화된다. 토종벼에 농약을 치면 알이 너무 많이 달려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니 약이 오히려 해가 된다. 또한 까락이 있어 수확량 보존에도 도움이 된다. 까락은 까끄라기의 준말로 벼, 보리 따위의 낟알 껍질에 붙은 깔끄러운 수염을 말한다. 알맹이의 싸개껍질이나 받침껍질의 끝부분을 털 모양으로 길게 키워 자신의 ‘알’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새들이 나락과 함께 까락을 먹으면 목에 걸려 죽기 일쑤다. 

    토종벼는 농부와 도시민이 만나는 다양한 장터나 SNS를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 토종씨앗은 보존의 가치와 지속의 과제를 동시에 갖는다. 나 같은 도시민이라면 관심과 소비를 통해 보존과 지속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색다르고 가치 있는 먹을거리라는 점에 마음이 동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밥맛’을 기대하게 된다.

    토종쌀로 지은 밥의 감동적인 맛

    1 다양한 토종벼를 키우는 ‘우보농장’의 논은 생김, 높이, 색깔이 각기 다른 벼들로 가득하다. 2 ‘우보농장’의 벼 베기에는 도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3 ‘우보농장’에서 생산한 다양한 쌀. [사진 제공 · 우보농장]

    1 다양한 토종벼를 키우는 ‘우보농장’의 논은 생김, 높이, 색깔이 각기 다른 벼들로 가득하다. 2 ‘우보농장’의 벼 베기에는 도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3 ‘우보농장’에서 생산한 다양한 쌀. [사진 제공 · 우보농장]

    충남 공주의 황진웅 농부가 키우는 ‘버들벼’(왼쪽)와 쌀. [사진 제공 · 황진웅]

    충남 공주의 황진웅 농부가 키우는 ‘버들벼’(왼쪽)와 쌀. [사진 제공 · 황진웅]

    토종벼의 스타급이라 할 수 있는 버들벼를 먼저 보자. 충남 공주지역 토종으로, 농업 관련 고서인 ‘임원경제지’와 1913년 발행된 ‘조선도품종일람’의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품종으로 보인다. 알이 동글동글하고, 윤기가 흐르며, 찰기는 적고 거친 편이다. 하지만 맛은 달고 고소하며, 단단해도 쫄깃하다. 이삭이 능수버들처럼 늘어져 버들벼로 불린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미 정상회담 만찬에 올라간 밥도 토종쌀로 지은 것이다. 당시 북한의 ‘북흑조’와 ‘흑갱’, 남한의 ‘자광도’와 ‘충북흑미’ 네 가지를 섞어 돌솥밥을 지었다. 그중 흑갱은 우보농장이 주최하는 ‘토종쌀 테이스팅 워크숍’에서 향, 맛, 식감, 색감이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찹쌀이다. 북흑조는 평안남도 재래종으로, 흑자색을 띠는 멥쌀이다. 한국 땅에서 북한 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뜨끈해진다. 북한 쌀로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재배하는 ‘백경조’라는 길쭉한 모양의 멥쌀도 있다. 

    ‘자치나’는 이삭이 까투리 깃털처럼 생겨 ‘꿩찰’ ‘까투리찰’로도 불리며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좋은 찹쌀이다. 색이 예쁘고 찰기가 좋으며 독특한 향이 있어 약밥이나 강정 같은 요리에 활용하기 알맞다. ‘녹두도’는 남아 있는 토종벼 가운데 역사가 긴 축에 속하며, 녹두처럼 연한 초록색이 나 밥을 지어도 곱다. ‘자광도’는 현미로 도정하면 이름처럼 붉은 낟알이 드러나 색감이 예쁘다. ‘돼지찰’이라는 벼에서 수확한 찹쌀은 떡을 해도 잘 굳지 않아 유용하고, ‘불도’라는 벼는 ‘대궐도’ ‘대골도’로도 불린 것으로 보아 임금이 먹던 쌀로 여겨지니, 한번 맛보고 싶다. 이외에도 수많은 토종벼가 농부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으며, 우리의 기대와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토종벼가 태어난 고장, 이름, 맛과 모양만 이야기해도 식탁 위 대화가 무궁무진해지리라.

    “토종벼 전시 관람해요”

    [사진 제공·서울식물원]

    [사진 제공·서울식물원]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식물원의 식물문화센터 내 씨앗도서관에서는 ‘사라진 토종벼를 찾아서’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100여 종의 토종벼 실물과 표본, 토종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이근이 농부의 우보농장이 주축이 된 전시로, 12월 3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문의 서울시 다산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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