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HJ컬쳐]
1895년 러시아 음악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던 22세 라흐마니노프(박유덕·안재영 분)는 교향곡 1번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홀에서 초연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러시아 평단은 최악의 비평을 쏟아냈다. 초연하는 날, 그는 무대인사도 못 한 채 도망치듯 숨어야 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별장 이바노프카에서 3년 동안 대인기피증으로 두문불출한다. 이 어둠의 시기 라흐마니노프 앞에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김경수·정동화 분)가 나타난다. 달 박사의 치료 덕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작곡을 시작할 수 있었고, 고마움을 담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달 박사에게 헌정한다. 뮤지컬은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만남 및 치유 과정을 소개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작품은 항상 팩트와 픽션이 충돌한다. 특히 잘 알려진 거장일수록 논란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음악은 작곡가가 겪은 경험의 총체적 산물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생전에 달 박사 외에도 톨스토이, 그의 아내가 되는 사촌 나탈리아 등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달 박사와 일화는 그의 음악인생에서 매우 단편적인 일화다. 피아노 협주곡 2번 이후 43년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계속 진화, 확장, 발전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극적 흥미를 위한 희극성과 사실의 기록 사이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피아노 연주자의 연속되는 미스 터치는 뮤지컬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어설픈 해석, 억지춘향 격으로 끼워 넣은 모차르트, 쇼팽, 슈만, 차이콥스키, 베토벤의 주옥같은 멜로디는 관객의 감흥을 자극했을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깊이를 가볍게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관객의 가슴에 뜨거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배우들의 인상 깊은 열창과 명연기, 그리고 저작권료 한 푼 안 내고 사용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덕분이다. 무대 위 배우는 2명뿐이었지만 일당백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