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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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의성 컬링의 산파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

“컬링, 동계의 양궁 될 수 있다”

의성 컬링경기장 건립 주도… 아내, 아들딸, 사위 모두 컬링 대표팀과 인연

  • | 강릉=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8-02-27 10: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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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컬링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 겸 경북컬링협회 부회장. [지호영 기자]

    ‘국내 컬링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 겸 경북컬링협회 부회장. [지호영 기자]

    ‘의성 컬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김경두(62) 경북컬링훈련원장 겸 경상북도컬링협회(경북컬링협회) 부회장이다. 그는 경북 의성에 경북컬링훈련원 설립을 주도해 현 대표팀의 초석을 다졌다. 그뿐 아니라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컬링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거치며 국내 컬링 보급의 산파 구실을 했다. 김민정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은 그의 딸이고, 남자 국가대표팀 김민찬 선수는 아들이다. 여기에 장반석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그의 사위다. 이번 컬링 남녀 및 혼성 국가대표팀을 그의 가족이 점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컬링 역사의 산증인인 그를 2월 21일 강원 강릉컬링센터 앞에서 만났다.

    컬링 명문 김가네

    “오늘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났죠.” 

    김 원장은 첫인사 뒤 웃는 얼굴로 여자 대표팀의 오전 경기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날 대표팀은 세계랭킹 9위인 덴마크를 9-3으로 꺾었다. 덴마크는 8엔드 만에 기권을 선언했다. 김 원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그가 대표팀 선수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가 묻어났다. 

    김 원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컬링 개척자다. 컬링 불모지이던 국내에서 컬링훈련장 건립에 앞장서고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발굴, 훈련시켜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 그는 “내가 30년 가까이 컬링에 미쳐 살면서 개척자 역할을 한 건 맞다”면서도 “컬링 자체를 내가 한국에 도입했다고 알려졌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1994년 쌍방울에서 협회를 조직하면서 정식으로 컬링이 도입됐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처음 컬링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보다 전이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그는 동아대 대학원에 진학하며 컬링을 알게 됐다. 그는 “당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종목을 국내에 도입하고 싶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시간이 많아지면 온 가족이 모여 할 수 있는 생활체육이 각광받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여러 종목을 찾던 중 컬링을 알게 돼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협회가 생긴 뒤 컬링 보급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김 원장이 처음 컬링을 보급한 대상은 그의 가족이었다. 당시 컬링이라는 스포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 그는 “몸이 약하던 아내와 수영, 등산을 꾸준히 해왔고 아이들과도 운동을 즐겼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며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의 가족을 컬링에 끌어들였다. 컬링장이 없던 1990년대 후반에는 빙상장에 하우스(컬링장 바닥에 그려진 큰 원)를 그려놓고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때 컬링에 입문한 이가 오세정 경북컬링협회 회장과 한국 최초로 컬링 국제심판 자격증을 획득한 김경석 심판이다. 김 심판은 김 원장의 남동생이다. 현재 남자 대표팀의 오은수 선수는 오 회장의 아들이다. 

    김 원장은 컬링을 보급하려면 생활체육화와 동시에 엘리트 선수 육성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협회 창설 2년 만인 1996년 동국과학대(현 경북과학대) 스포츠사회학과 전임강사 시절 학생들과 함께 일본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이듬해에는 정식 연수단을 꾸려 캐나다로 건너가 처음으로 해외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야 컬링이 널리 알려져 정부와 여론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컬링 여행을 다녔다. 그는 “동생네 가족, 오 회장네 가족과 세계 각국을 돌며 컬링을 배우고 경기를 즐겼다. 아무도 컬링을 하지 않을 때 해외를 돌며 컬링을 즐겼으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컬링 지도자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 양영선(59) 씨는 2003년 아오모리동계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 컬링 최초로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돌풍을 일으킨 ‘팀 킴’의 탄생에도 김 원장과 주변인의 역할이 컸다. 김 원장은 경북 의성에 국내 최초 컬링장 설립에 나섰다. 컬링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선수들이 훈련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 그는 의성에 있는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기증하는 조건으로 경북도청과 의성군에 건립비용을 보태달라고 설득했다. 긴 설득 끝에 경북도가 11억 5000만 원, 의성군이 3억 5000만 원, 경북컬링협회가 16억 원가량을 들여 2004년 경북컬링훈련원의 공사에 돌입, 2006년 완공했다. 김 원장은 “지금은 인천, 서울 태릉, 경북 김천 등 많은 지역에 컬링장이 생겼지만 아직도 경북컬링훈련원이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웃었다.

    컬링장 대지 무상 기증

    그는 “경기장의 주된 쓰임처는 컬링 선수들의 훈련시설이지만, 컬링 경기를 알리는 역할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에 선수들의 훈련이 끝난 오후부터는 컬링스포츠클럽 형태로 운영해 지역 학생들이 컬링을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게 해왔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배운 학생들이 훗날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국가대표가 됐다. 

    김 원장의 동생인 김 심판은 ‘팀 킴’이 고교팀이 될 수 있는 반석을 마련했다. 김 원장은 “경북 경주에서 체육교사를 하던 동생이 의성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의성에서 고교팀을 꾸리고 학생들에게 컬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의성여고 컬링부가 생겼다. 의성여고는 소치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이슬비 전 경기도청 선수를 비롯해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를 배출했다. 지금도 의성여고는 의성여고생만으로 구성된 4개 팀이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할 정도로 컬링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 

    이후 김 원장은 경북도 등의 도움을 받아 경북체육회라는 실업팀을 만들어 방과후 활동, 고교팀,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선수 양성 시스템을 확립했다. 김 원장은 아직도 이 팀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 대회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계속 내자 경북도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해줬다. ‘김가네’로 불리는 나와 주변인들이 경북의 컬링 인프라를 설계했다면 현재 수준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 것은 경북도”라고 말했다. 

    김 원장과 그의 가족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 컬링 명문가가 됐다. 그는 “25년간 컬링에 매진해온 나와 가족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아 기쁘지만, 일각에서는 ‘김가네’가 컬링판을 장악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온다. 하지만 이는 컬링이라는 스포츠와 그간 국내 컬링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컬링은 가족 스포츠로 발달했다. 이에 해외 명문팀 중에서도 한 가족이 함께 뛰는 경우가 많다. 나와 내 주변인도 마찬가지다. 워낙 열성적이던 나를 돕다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 참가 경력은 2번에 불과하지만 벌써 메달권을 넘보는 컬링 대표팀의 선전에 일각에서는 컬링이 새로운 동계올림픽 효자 종목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기고 있다. 김 원장은 “컬링은 여느 동계올림픽 종목에 비해 집중력 등 정신력의 비중이 크다. 선수 선발 및 육성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갖춰지면 컬링이 동계올림픽의 양궁이 될 개연성도 높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컬링은 기술만큼이나 정신력에 따라서도 승패가 좌우된다 보고 관련 훈련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정신수양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했다. 시험공부를 하듯 밑줄을 쳐놓고 경기 전에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선수도 있었다. 사찰에서 스님을 초빙해와 명상 교육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컬링이 가족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대표팀은 정신력 강화 훈련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도 한때는 실력은 좋지만 위기 상황에서 정신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치동계올림픽 국가대표 결정전에서 상대팀이 스톤을 건드리는 반칙을 하자 이에 신경을 쓰다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김 원장은 대한민국이 컬링 강국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그는 “2003 아오모리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컬링 남자 대표팀이 금메달, 여자 대표팀이 동메달을 땄고, 2007 창춘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녀 동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오랜 기간 컬링은 비인기 동계 종목이라는 이유로 찬밥 신세였다. 국제대회에 나가도 지원이 부족해 식비가 모자라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도 강릉컬링센터에서 한 달밖에 훈련하지 못하는 등 답답한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컬링경기연맹이 내홍을 겪어 지원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김 원장은 직접 나서 소치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라이언 프라이 등 해외 코치를 영입했다.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 겪은 설움을 토로하던 김 원장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컬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만큼 이와 같은 문제는 곧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며 밝게 웃었다. 

    올림픽 이후 김 원장의 목표는 컬링선수 육성 인프라 구축이다. 그는 “컬링을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전에 컬링계가 확실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경북에 컬링훈련원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건설비용만 지원해주면 이후 운영 등은 경북컬링협회가 맡아서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 컬링 지도자들을 위해 올림픽이 끝나면 내 시행착오를 담은 인프라 구축 백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처음 컬링을 들여올 때 목표인 ‘컬링의 생활체육화’에도 힘쓸 예정이다. 그는 “원래 컬링은 가족이 함께 즐기는 야외 스포츠로 출발했다. 규칙만 익히면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전국에 컬링장이 많이 생기면 그만큼 많은 선수를 키울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생활체육시설이 확충돼 국민 건강복지 측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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