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
발터 베냐민은 피아노를 보며 중산층 가정의 우울과 공포를 떠올린다. 1926년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고 있던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다.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된 세상에서 잠시 살며, 아마 베냐민은 상대적으로 유럽 부르주아 문명의…
201606222016년 06월 20일루브르 산책자가 들려주는 영광과 위험
러시아의 노장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는 ‘미술관 산책자’다. 회화적인 화면 구성으로 유명한 그가 미술관에 애착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쿠로프는 2001년 ‘긴 여정의 엘레지’를 통해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보닌헨 미술관을, …
201606082016년 06월 07일제이 로치 감독의 ‘트럼보’
‘트럼보’는 할리우드의 전설로 남아 있는 작가 돌턴 트럼보 전기 영화다. 미국 민주주의에 큰 오점을 남긴 매카시즘이 비판의 대상이 될 때면, 트럼보의 이름은 어김없이 소환된다. 알다시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반(反)미국활동’…
201605112016년 05월 10일바로크 민담의 시대 풍자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테일 오브 테일즈’(2015)는 바로크 시절 민담 세 가지를 엮은 작품이다. 17세기 이탈리아 나폴리 작가 잠바티스타 바실레의 원작을 각색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소개돼 기괴한 내용과 화려한 이미지로…
201604272016년 04월 26일끝내 찾아오지 않은 마법의 밤
과거 명작들이 디지털 복원작업을 거친 뒤 다시 스크린에 걸리고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도 재개봉한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 희생을 그린 작품으로, 현지에선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개봉한 …
201604132016년 04월 11일혁명가의 투쟁, 순교자의 죽음
‘헝거’(2008)는 영국 출신 감독 스티브 매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매퀸은 ‘노예 12년’(2013)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최초로 작품상을 받아 스타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신…
201603302016년 03월 28일젊은 예술가의 초상
토마스 만에 따르면 예술가는 ‘얼굴에 낙인이 찍힌 인물’이다.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서다.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주인공 시인(토니오)은 남미 사람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회적 계급이 높은데도 차별을 …
201603162016년 03월 14일에드워드 호퍼의 마음 풍경
미국 리얼리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주로 여성)은 종종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설령 옆에 있다 한들 방해가 될까 봐 말도 못 붙일 정도다. 주로 혼자 등장하
201603022016년 02월 29일테니스와 자전거,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법
홀로코스트는 지워지지 않는 악몽이다. 말하자면 인류의 원죄다. 타자에 대한 비이성의 증오가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홀로코스트는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증오심을 이
201602172016년 02월 16일예술가에게 ‘청춘’을 묻다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는 유명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조국인 영국을 거쳐 미국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랜 기간 지휘자로 지냈다. 이제 나이도 여든이 다 됐고,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영국 왕실의 적극적인 공연 요청이 있지만 더는 …
201601272016년 01월 26일파시즘과 권위주의 건축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0년 작 ‘순응자’는 파시즘 비판 영화 목록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걸작이다. 30년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체제에 순응해가는지를 예리하게 그려…
201601132016년 01월 12일‘감시’에 순응하는 사람들
에드워드 스노든은 21세기 대표적인 내부고발자다. 2013년 6월 홍콩에서 그는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이 테러리즘과 관계없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전부터 안보 관련 국가기구…
201512302015년 12월 29일‘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애도
최근 재개봉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35세에 요절한 작곡가 모차르트의 사인(死因)에 의문을 품으며 시작한다. 다시 봐도 흥미로운 점은 합스부르크가의 궁정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질투심 때문에 모차르트를 과로로…
201512162015년 12월 15일실내악으로 위무받는 죽음의 운명
영화 ‘더 랍스터’는 그리스 중견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패러디 드라마다. 가상 미래를 배경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풍자하는데, 이곳에서 성인은 반드시 커플을 이뤄야 생존할 수 있다. 만약 혼자가 되면 수용소 같은 곳에 들어가 45일 …
201511162015년 11월 16일무기력한 세상을 향해 겨눈 총구
배우 출신 감독인 토미 리 존스의 ‘더 홈즈맨’은 ‘집으로 데려다주는 사람(homesman)’에 관한 웨스턴(서부영화)이다. 보통 웨스턴은 동부 문명을 야만의 서부로 전파하는 드라마인데 ‘더 홈즈맨’은 그 방향이 역전돼 있다. 꿈을…
201511022015년 11월 02일푸치니 오페라와 멜로드라마의 만남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우디 앨런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문제작을 거의 다 뉴욕에서 만들었다. ‘맨해튼’(1979)이 대표적이다. 앨런이 묘사하는 뉴욕은 중산층이 주로 사는 맨해튼 센트럴파크 부근이다. 제임스…
201510192015년 10월 19일바로크 정물화 같은 애도 일기
난니 모레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일관된 예술 스타일을 유지한 감독)다. 칸영화제의 단골 초대 감독이고, ‘아들의 방’(2001)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도 받았다. 이탈리아 사회의 관습을 풍자하는 모레티의 코미디는 유머와 …
201510052015년 10월 05일윤리적 죄와 법률적 벌의 함수
마티외 아말릭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다. ‘잠수종과 나비’(2007)의 전신마비 작가,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의 악당 역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 출신 언론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덕분인지, 데뷔 때부…
201509072015년 09월 07일변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진혼 의례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1970~80년대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 공장노동자들에 주목한 다큐멘터리다. 한쪽에선 멸시와 착취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또 한쪽에선 ‘산업역군’이라는 무의미한 수사(修辭)가 반복될 때다. 화면은…
201508242015년 08월 24일광기와 평범, 한 남자의 두 가지 삶
비치 보이스는 여름 밴드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어디선가 히트곡 ‘서핑 USA’가 흘러나온다. 출렁이는 파도와 청춘의 싱그러움이 단박에 느껴지는 대단히 경쾌한 곡이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비치 보이스는 전설적인 밴드가 되기에 충분하…
201508102015년 0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