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마다 떠오르는 인상과 이미지가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길이 먼저 떠오르는 물의 도시, 수도(水都)다. 프랑스 파리는 어떨까.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 등이 떠오르지 않을까.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등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도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쨌든 한 도시에는 저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특유의 인상이 있다.
내사산과 외사산, 서울을 감싸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가. 서울을 상징할 만큼 기억에 남는 인상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도 있고, 웅장한 스케일로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도 있지만, 산처럼 서울의 인상을 강렬하게 형성하고 표현하는 것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니스에 빗대 이야기하자면 서울은 산의 도시, 산도(山都)라 할 수 있겠다. 1981년 봄, 대학생이 돼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바위투성이 관악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향에서 보고 자란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다. 지금은 서울의 산 모양에 익숙해졌지만 그땐 참 생소했다.
서울이 조선왕조 수도로 뽑혔을 때 우리 조상은 새 왕조 도성의 경계를 4개 산의 산등성이를 이어 쌓았다. 백악과 타락(낙산), 목멱(남산)과 인왕으로 이어지는 내사산(內四山)은 서울의 가장 중요한 산이다. 도성 밖 동서남북에도 높은 산이 있다. 외사산(外四山)이라 부르는 삼각산(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 외에도 청계산,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 수락산, 불암산 등 수많은 산이 서울 안팎에 솟아 있다.
나지막한 산도 많다. 마을의 뒷산들 말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각종 개발로 깎이고 헐려 존재조차 사라진 산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산이 남아 있다. 마포구 성미산도 그중 하나다. ‘춤추는 숲’이란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성미산마을은 마을 뒤 나지막한 성미산에 기대어 있다. 성미산 없이는 성미산마을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도시에서 산이 갖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절로 느끼게 된다. 서울메트로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땡볕 아래 길을 걷다 우면산 숲에 들어서 보면 바로 안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과 숲에서 이는 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그늘과 바람뿐이랴. 산이 있는 마을은 새소리와 철마다 바뀌는 꽃구경의 혜택도 덤으로 받는다. 단풍은 설악산과 내장산에만 드는 게 아니다. 우리 동네 뒷산에도 곱게 차려입고 찾아온다.
그런데 공기처럼 친숙하고 풍족해서인지 우리는 산의 가치를 곧잘 잊는다. 결핍과 부재를 느껴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연구년을 맞은 해에 중국 베이징에서 반년 동안 살았는데,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앓이를 했다. 나만이 아니다. 해외에 나가 사는 주재원과 유학생이 고국을 떠나면 제일 먼저 앓는 게 산에 대한 향수병이라고 한다.
환경 보전하는 도시설계의 전통
달리 말하면 그것은 산으로 대표되는 우리 도시의 멋에 대한 그리움일 터다. 북한산에 올라 서울 도심부를 내려다보라.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도심부와 한강, 그리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이 그려내는 풍경을 외국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겠는가. 동작대교 북단에서 한강 남쪽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짙푸른 녹지와 원경으로 보이는 관악산의 거친 선이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 맑은 날 광화문광장에서 손에 잡힐 듯 코앞으로 다가오는 백악산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를 만들었다. 고구려 건국 초창기 수도였던 졸본성(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오녀산성)은 가파른 경사의 산꼭대기에 만든 도시다. 고구려는 압록강변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에 환도산성을 지었다. 산과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시를 만드는 전통은 고구려 평양성과 고려 개경, 그리고 한양도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원절약형 친환경 도시 만들기라 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은 중국, 일본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도시설계 전통이다.
서울이 산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도시라면 도시설계와 도시관리를 할 때도 산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산이 잘 보이도록, 산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은 민낯이 고운 미인과도 같다. 높고 튀는 건물로 멋을 내지 않아도 바탕 그 자체가 출중한 자연미인 같은 도시다. 이미 충분히 예쁜 이 도시를 우리는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오가며 서울의 산들을 유심히 보자. 건물과 스카이라인만 보지 말고 산과 언덕이 드러내는 이 도시의 보디라인을 보자. 빼어난 자연미인 서울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는다면 서울 도시설계의 방향과 방법까지 깨닫게 될 것이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깨뜨리지 않고 잘 지키는 것, 그것도 매우 훌륭한 도시설계다.
내사산과 외사산, 서울을 감싸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가. 서울을 상징할 만큼 기억에 남는 인상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도 있고, 웅장한 스케일로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도 있지만, 산처럼 서울의 인상을 강렬하게 형성하고 표현하는 것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니스에 빗대 이야기하자면 서울은 산의 도시, 산도(山都)라 할 수 있겠다. 1981년 봄, 대학생이 돼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바위투성이 관악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향에서 보고 자란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다. 지금은 서울의 산 모양에 익숙해졌지만 그땐 참 생소했다.
서울이 조선왕조 수도로 뽑혔을 때 우리 조상은 새 왕조 도성의 경계를 4개 산의 산등성이를 이어 쌓았다. 백악과 타락(낙산), 목멱(남산)과 인왕으로 이어지는 내사산(內四山)은 서울의 가장 중요한 산이다. 도성 밖 동서남북에도 높은 산이 있다. 외사산(外四山)이라 부르는 삼각산(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 외에도 청계산,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 수락산, 불암산 등 수많은 산이 서울 안팎에 솟아 있다.
나지막한 산도 많다. 마을의 뒷산들 말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각종 개발로 깎이고 헐려 존재조차 사라진 산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산이 남아 있다. 마포구 성미산도 그중 하나다. ‘춤추는 숲’이란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성미산마을은 마을 뒤 나지막한 성미산에 기대어 있다. 성미산 없이는 성미산마을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도시에서 산이 갖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절로 느끼게 된다. 서울메트로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땡볕 아래 길을 걷다 우면산 숲에 들어서 보면 바로 안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과 숲에서 이는 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그늘과 바람뿐이랴. 산이 있는 마을은 새소리와 철마다 바뀌는 꽃구경의 혜택도 덤으로 받는다. 단풍은 설악산과 내장산에만 드는 게 아니다. 우리 동네 뒷산에도 곱게 차려입고 찾아온다.
그런데 공기처럼 친숙하고 풍족해서인지 우리는 산의 가치를 곧잘 잊는다. 결핍과 부재를 느껴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연구년을 맞은 해에 중국 베이징에서 반년 동안 살았는데,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앓이를 했다. 나만이 아니다. 해외에 나가 사는 주재원과 유학생이 고국을 떠나면 제일 먼저 앓는 게 산에 대한 향수병이라고 한다.
환경 보전하는 도시설계의 전통
달리 말하면 그것은 산으로 대표되는 우리 도시의 멋에 대한 그리움일 터다. 북한산에 올라 서울 도심부를 내려다보라.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도심부와 한강, 그리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이 그려내는 풍경을 외국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겠는가. 동작대교 북단에서 한강 남쪽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짙푸른 녹지와 원경으로 보이는 관악산의 거친 선이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 맑은 날 광화문광장에서 손에 잡힐 듯 코앞으로 다가오는 백악산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를 만들었다. 고구려 건국 초창기 수도였던 졸본성(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오녀산성)은 가파른 경사의 산꼭대기에 만든 도시다. 고구려는 압록강변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에 환도산성을 지었다. 산과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시를 만드는 전통은 고구려 평양성과 고려 개경, 그리고 한양도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원절약형 친환경 도시 만들기라 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은 중국, 일본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도시설계 전통이다.
서울이 산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도시라면 도시설계와 도시관리를 할 때도 산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산이 잘 보이도록, 산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은 민낯이 고운 미인과도 같다. 높고 튀는 건물로 멋을 내지 않아도 바탕 그 자체가 출중한 자연미인 같은 도시다. 이미 충분히 예쁜 이 도시를 우리는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오가며 서울의 산들을 유심히 보자. 건물과 스카이라인만 보지 말고 산과 언덕이 드러내는 이 도시의 보디라인을 보자. 빼어난 자연미인 서울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는다면 서울 도시설계의 방향과 방법까지 깨닫게 될 것이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깨뜨리지 않고 잘 지키는 것, 그것도 매우 훌륭한 도시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