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

“학생들 수학 포기는 비비 꼰 수학문제 때문”

실용수학능력검정 출제위원장 배종수 교수

  • 김민지 인턴기자 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kimminzi4@naver.com

    입력2012-09-03 10: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학생들 수학 포기는 비비 꼰 수학문제 때문”
    수학까지 자격증이 필요할까. 지난해 11월 수학 분야 최초로 국가공인 자격시험이 된 ‘실용수학능력검정’(이하 K-Stem)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실제 시험을 보고 나온 학생들의 말은 달랐다. “좋은 문제를 푼 느낌”이라는 평부터 “수학시험이 쉽고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다.

    8월 11일 4000여 명이 응시한 K-Stem 시험문제를 찾아보니 국회의원선거, 수영장 튜브 대여료 등 일상생활에 수학을 적용해 문제를 푸는 방식이었다. K-Stem 출제위원장 그동안 ‘재미있는 수학’을 전파하려고 노력해온 배종수 서울교육대 교수. 피에로 복장을 하고 초등학생들에게 직접 수학을 가르쳐 ‘피에로 교수’로도 유명한 그는 제7차 수학교과서 편찬위원장, 한국초등수학교육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를 만나 수학교육 비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무조건 수학문제 풀이만 반복

    ▼ 현재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평가한다면.

    “더 망가지고 있다. 아무도 학생 처지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의미를 모른 채 그저 문제풀이만 반복하니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학생도 ‘왜?’라는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요즘 학생들이 ‘선생님이 짬을 내서 가르친다’고 말하겠나. 갈수록 수학을 더 싫어하면서 포기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출판사, 교육 관련 기관, 경시대회도 진정한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 벌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특히 경시대회는 수학교육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했다. 문제만 잔뜩 어렵게 내놓고 그걸로 먹고산다.”



    ▼ 교과서 편찬위원장으로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수업 따로, 평가 따로’가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제대로 된 수학교육 목표에 맞게 교과서를 만들어도 정작 시험문제는 교사가 채점하기 쉽게 낸다. 교과서에는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수학문제나 학생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하도록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채점 기준이 모호하고 절차도 번거로우니 학교 시험에선 이런 문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 그럼 K-Stem은 좀 다른가.

    “K-Stem 출제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바람직한 수학평가 방향을 제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교사와 전문가에게 ‘수학교육과 평가 방식이 이런 식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소재로 한 문제들이 나온다. 문제 자체만으로 수학이 실생활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수학능력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학생 스스로 수학을 왜 배우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국제중학교다, 입학사정관제다 해서 ‘스펙 쌓기’에 시달리는데, 수학 분야에까지 국가공인 자격시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K-Stem은 학생이 수학을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문제를 풀면서 생활 속에서 수학능력을 검증하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얻도록 했다. 수학경시대회 같은 식이었다면 출제위원장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문제를 무조건 생소하고 어렵게 꼬아놓는다고 좋은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수학교육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 출제위원들이 고심해서 만든 문제일 텐데 홈페이지에 문제와 답을 모두 공개하고, 유명 강사의 해설 강의까지 무료로 제공하더라.

    “교육과 평가가 이런 식이어야 한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었다. K-Stem은 수학교육 발전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시험문제 자체에서 바람직한 수학교육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 시험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수학교육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학생들 수학 포기는 비비 꼰 수학문제 때문”

    실용수학능력검정(K-Stem)에 출제된 문제들. 국회의원선거, 유언장의 재산분배, 튜브 대여료 등 실생활과 연관돼 있다.

    일상에서 수학 접목 필요

    ▼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올해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이번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은 21세기 융합형 인재 개발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공식을 외워서 푸는 수학이 아니라, 실생활과 연계한 실용수학이 중요하다. 보통 수학을 어려워하거나 포기한 학생은 문제만 많이 풀면서 공식을 달달 암기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매일 수학문제를 100개씩 푸는 것도 의미 있지만 수학에 흥미를 잃게 한다. 개념과 공식, 원리를 먼저 완벽히 이해하면 이를 일상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

    교과서 중심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충실히 이해하되, 다른 과목과 연계해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 사회, 미술과 연계해 생각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수학에 접목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지리산에 올라갈 경우 정상인 천왕봉까지 가려면 10여 개 코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경사와 난이도, 길이와 속도 등 수학적 수치를 자신의 체력에 대입해 가장 잘 맞는 코스를 선택하는 방법처럼 사고를 수학과 결합하면 바로 실용수학이 된다. 스토리텔링형 수학문제나 여러 분야가 같이 섞인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 학생들이 그렇게 배워본 적이 없으니 막막할 것 같은데, 오히려 사교육 열풍만 심해지는 것 아닌가.

    “홈페이지에 무료 강의를 제공하고 있을뿐 아니라 9월부터 EBS를 통해 K-Stem 대비 강의도 방송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학부모도 자녀 스스로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교육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