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DB]
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 27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떳떳하다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말을 신뢰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민주당의 대장동 특검법 추진에 대해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민주당이 패스트랙에 특검법을 올리려면 재적위원 5분의 3의 의결이 요구되는 만큼 정의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비대위원장은 “정의당은 검찰 수사와 공소장을 지켜보고, 특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장동 특검에 대한 이 비대위원장의 입장을 두고 ‘민주당 2중대’라는 꼬리표를 제거하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7월 25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의당은 존재 이유를 검증받는 시간에 들어섰다. 가장 가혹한 자기평가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이 비대위원장은 앞서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가장 가깝게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정의당 의원 6인은 4월 30일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안에 전원 찬성했다. 정의당은 ‘조국 사태’ 당시에도 “민주당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친구 죽음으로 노동 운동 관심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 비대위원장은 이전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을 대표발의하며 정국의 중심에 섰다. 27년간의 노조 활동에서 나온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당초 그의 삶은 노동 운동과 거리가 있었다. 이 비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유년 시절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구로동 닭장집에서 가난하게 사는 친구들과 달리 가난을 몸으로 겪은 적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88학번인 이 비대위원장은 학창시절 기자를 꿈꿨다.삶의 경로를 튼 것은 친구의 죽음. 1991년 대학 동기였던 고(故) 김귀정 씨가 학생 운동 중 경찰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김 비대위원장은 백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친구의 시신을 경찰에 뺏기지 않기 위해 열흘간 아스팔트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후 노동운동을 꿈꾸게 된다.
1993년 9월 그가 선택한 직장은 서울지하철이었다. 산업재해가 잦았던 교통산업의 근로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서울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상계역·노원역 일대가 그의 일터였다. 직장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입사 이듬해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파업에 참가한 탓에 입사 1년 만에 직위해제를 당한 것이다. 노조 활동을 하며 갖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못지않게 여러 성과도 냈다. 27년간 활동하며 직장 어린이집 설치, 노조이사제 도입 등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 비대위원장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해 같은 해 5월 원내부대표에 임명됐다. 올해 5월 4일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지금까지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다. 정의당은 6·1 지방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6월 12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고, 원내대표였던 이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며 당을 이끌고 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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