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별세한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 [뉴시스]
193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이 전 부의장은 1960년대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971년 동교동계의 뿌리가 된 ‘내외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을 맡으면서 ‘DJ의 오른팔’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약 두 달 동안 고초를 겪고 풀려났으며, 같은 해 정치규제를 당했다가 1984년 해금되기도 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앞두고 DJ계를 대표해서 여야 8인 정치회담에 참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15대 대선 불출마를 건의했다가 멀어졌다.
이 전 부의장은 1960년 충북도의원에 당선하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 처남인 육인수 씨와 경쟁해 낙선했다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원내에 진출한 이 전 부의장은 통일민주당 사무총장·부총재를 역임하면서 직선제 개헌에 앞장섰다. 이후 17대와 18대를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5선 모두 충북 옥천·보은에서 지낸 이 전 부의장은 이 지역에서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 전 부의장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지지해 호남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보은군에서만 정 후보가 이명박 당선인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이후 민주당으로 옮겨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이 전 부의장은 대전사범학교(공주교육대학교에 흡수)를 졸업했다. 대전사범학교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사병으로 자진 입대했다가 갑종간부후보생 제11기 장교로 임관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으며, 이재한 더불어민주당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지역위원장이 장남이다.
한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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