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특집

“공평한 기회 보장되는 공정국가 만들고 싶다”

인터뷰ㅣ2017 대선 ‘다크호스’ 이재명 성남시장

  • 입력2016-12-23 19: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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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성난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드는 사이 변방의 시장에서 광장의 중심인물로 부상한 이가 바로 이재명 성남시장(사진)이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의 ‘촛불’은 그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됐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용기 있게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나선 그를 광장에 모인 국민이 주목한 것. 촛불민심은 현재권력을 몰락시킴과 동시에 이 시장을 미래권력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치켜세웠다. 대통령 탄핵 D+10일째 되던 2016년 12월 19일, 이재명 성남시장을 경기 성남시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 녹음되고 있으니 욕설하시면 안 됩니다.

    “(형과 형수가) 어머니를 때리고 그러니까 욕했지. 제가 평소 욕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 시장과 인터뷰는 농반 진반 ‘욕설’ 논쟁으로 시작됐다. 그가 유력 차기주자로 부상한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이 시장이 형과 형수에게 ‘쌍시옷’이 담뿍 담긴 저급한 욕설을 속사포처럼 내뱉는 생생한 육성 녹취파일이 널리 퍼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vs ‘그럴 만했다’

    ▼ 사정이야 어찌됐건 형과 형수에게 그런 심한 욕을 한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적잖습니다.

    “그런 비판은 감수해야죠. 욕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욕설 파문을 처음 접한 국민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비판적 반응이 우세하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안 사람은 ‘그럴 만했다’며 다소 누그러진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이 시장과 그의 형, 형수 사이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시장은 5남 2녀 중 다섯째로 욕설 파문의 당사자는 셋째형과 형수다. 셋째형은 199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 당선인의 시정인수위원회에서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2010년 이 시장이 성남시장에 당선하자 셋째형이 시청 공무원 인사와 각종 이권에 개입하려 했다는 게 이 시장의 설명이다. 이 시장은 형의 시정 개입을 차단하려고 시청 공무원들에게 ‘접촉 금지’를 명했고, 이 시장은 물론 시청 공무원들도 (형과) 접촉을 꺼리자, 성남시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단다. 급기야 형은 이 시장과 연락하려고 마지막 연결통로로 팔순 노모를 접촉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폭행했고 그 일로 어머니가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그 사건 직후 형제들 모임에서 이 시장이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형과 형수에게 ‘욕설’을 퍼붓게 됐다는 해명이다. 이 시장의 해명대로라면,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 눈에 친인척의 시정 개입을 철저히 막은 이 시장의 처신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 된다. 인터뷰 주제를 차기 대통령선거(대선)로 돌렸다.

    ▼ 대선 출마 결심은 굳혔습니까.

    “(출마) 결심은 했고요. 공식 선언만 남겨놓고 있는데,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출마 선언) 하기는 어렵고, 준비는 계속하고 있어요.”

    ▼ 어떤 준비를….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꿀 건지, 그 비전을 밝히는 공식 출마 선언.”

    ▼ ‘주간동아’ 지면을 통해 그 비전을 밝히시죠.

    “공정한 국가를 만드는 게 평생의 꿈이에요. 공정한 사회, 공정한 국가….”

    ▼ 너무 추상적인데요.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죠. (공정국가를 두고) 보수냐, 진보냐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제가 바라는 것은 법치예요. 법이 지켜지고, 원칙과 상식이 발현되는 그런 나라. 저는 진짜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이에요. 농담이 아닙니다.”

    이 시장의 표정이 짐짓 진지해졌다.

    “제가 원하는 세상은 우리가 합의해놓은 가치와 원칙, 그중에서도 헌법과 법이 잘 지켜지는 나라입니다.”

    유난히 ‘법치’를 강조하는 그에게서 다분히 의도적인 ‘보수의 냄새’가 풍겼다.

    ▼ 역대 대선을 보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뭐라고 봅니까.

    “불평등과 격차 해소죠.”

    ‘사이다 이재명’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출발선에 선 경주용 자동차가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맞춰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것처럼, 그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준비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기회 측면에서 불평등하고, 경쟁은 불합리하면서 불공정하죠. 그 결과 엄청난 격차가 발생했어요. 그것이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이죠.”

    불평등과 격차 문제를 그는 적은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는 지배구조의 문제, 그리고 단가 후려치기와 사내 불법하청 등 대기업 행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리 경제에 만연한 불평등, 불공정 문제만 정리해도 사회·경제적으로 활력이 생길 겁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죠. 혁명적 조치로 가능한 게 아니라, 법과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동반성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공정성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국민성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다들 성장, 성장을 강조하는데 성장은 경제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거죠. 그 바탕은 역시 공정이 우선입니다.”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합리적 배분

    이 시장은 폭포수가 쏟아지듯 ‘공정경제론’을 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불공정한 경쟁구조, 불평등한 기회, 불합리한 배분 이 3개가 합쳐져 발생한 엄청난 격차입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 사회의 기회와 자원, 역량이 한쪽으로 쏠려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 같은 비효율로 경제가 침체돼 있고요. 두 번째는 다수 개인이 꿈을 잃고 있어요. 기회가 없으니까 열정을 바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래서 개인은 불행해지고 국가는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결국 성장우선정책이 또 다른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경제 영역에서도 ‘성장’보다 ‘공정’, 즉 공정경제가 선행돼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 2012년 대선을 관통한 경제 키워드는 ‘경제민주화’였는데, 2017년 대선은….

    “공정경제죠. 밑바탕은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합리적 배분이고요.”

    ▼ 지금껏 불공정한 행태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됐는데, 이제부터 공정하게 하자는 것은 모순 아닌가요. 출발선이 달라 공정 자체가 공정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현재 가진 자산을 나누자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산주의도 아닌데. 다만 기회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죠. 부당하게 독점하고 있으면 분산하게 하는.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로부터 정치는 억강부약(抑强扶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억강부약?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하죠. 힘센 사람은 약자를 착취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래서 지배권력이 강자의 편을 들면 국가가 망합니다. 결국 정치와 국가의 본질은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부양하는 ‘억강부약’에 있어요. 억강부약이 정치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죠.”

    억강부약과 공정경제를 설명하던 그는 촛불민심을 이렇게 해석했다.

    “촛불사태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최순실이 국권을 행사하고, 재벌들이 돈을 줘 부당이득을 얻은 데 화가 난 거죠. 대중은 자존심이 상했을 뿐 아니라 수치심을 느낀 것입니다. 일반인도 인격에 모욕을 느끼면 참지 못하잖아요. 대중도 그런 점에서 하나의 인격체가 돼가고 있어요. 네트워크로 연결돼 집단지성을 갖춘 유기적 인격체.”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는 그의 안보관은 어떨까. 북핵과 안보 이슈로 주제를 바꿨다.

    ▼ 국가와 정부의 책무를 뭐라고 봅니까.

    “외부 위해로부터 국가공동체를 지키는 것,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국가와 정부의 첫 번째 임무죠. 그런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안보’를 생각하는 것과 정략적 목적으로 ‘안보’를 악용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종북행위는 정신질환, 종북몰이는 준범죄행위

    ▼ 어떻게 구분해야 하죠.

    “저를 ‘종북’(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모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북한처럼 3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하고 반민주적이며 반인권적인 체제를 경멸합니다. 그런 저를 두고 종북이라 말하면 화가 나죠. ‘종북행위’는 치료해야 할 정신질환이지만, ‘종북몰이’는 감옥에 가야 할 준범죄행위입니다. 안보를 정략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오히려 안보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이 시장은 ‘안보’에 대해서도 ‘준비된’ 주자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잘 준비된 답변을 내놨다.

    “저의 대북, 안보관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북한은 군사적으로 우리의 주적이 분명합니다. 국익 관점에서 깨부수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실체입니다. 그런데 국방과 안보의 제1목적은 상대를 깨부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안보의 첫 번째 목적이 있죠. 그런 점에서 강력한 안보정책으로 대북억지력을 키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압도적 군사력으로 제압하는 것 못지않게 적들이 도발하지 않도록 도발 의지를 꺾는 것도 좋은 정책입니다. 그러려면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대화하고 공존을 위한 평화정책을 펼 필요가 있죠.”

    ▼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대북제재와 압박이 북핵 문제을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아요.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갔더니 결과가 더 나빠진 것 아닌가요. 현실을 인정해야죠. 제재와 압박을 가하더라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수단을 유연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 및 협상 창구를 만들어 유연하게 다른 수단으로 넓힐 필요가 있죠.”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요.

    “국익 관점에서는 안 하는 게 바람직하죠. 그런데 한미 양국이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상,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이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서 우리 국익에도 손해가 없도록 재조정하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장차 한국형미사일방어(KMD)체계가 구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드를 배치하도록 합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죠.”

    이 시장은 “한미동맹과 한미관계가 확대, 발전해가는 것은 중요하다”며 문재인 전 대표가 미국과 북한 가운데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우방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가야 하고, 또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가장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가고 싶다고 자기 마음대로 갈 수도 없어요. 우선순위가 잘못됐어요. 우방국에 먼저 가야지. 아무리 남북한이  특수관계에 있다지만 가능하지 않은데 먼저 가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경제와 안보 이슈를 두루 거쳐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코앞에 닥칠지도 모를 차기 대선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반기문? 강력한 경쟁자 아니다

    ▼ 대선 출마 뜻은 굳혔다고 했는데, 시장직은 어떻게 합니까.

    “정상적인 경선이라면 경선에서 이긴 뒤 사퇴하려 했는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변수가 생겼어요. 사유가 확정된 날로부터 30일 안에 사퇴하지 않으면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사퇴할 가능성이 높아졌죠.”

    ▼ 민주당은 2015년 안철수 전 대표 탈당 이후 온라인 당원이 대거 모여들었고, 2016년 4월 총선은 친문재인(친문) 공천이라 할 만큼 당의 하부와 상부 모두 친문 일색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변방의 장수가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얘긴데.

    “대통령 같은 공직 후보를 선출할 때는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즉 당원도 한 표, 국회의원도 한 표, 국민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죠. 촛불민심이 당내 선거에 반영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갖추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2012년 대선 경선 때) 했던 방식으로, 더 불리하게 바뀌지 않으면… 압도적 1위 후보에게 유리하게 또 바꾸려 하지는 않겠죠?”

    ▼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지지율 상승세가 주춤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촛불과 탄핵을 계기로 국민 눈에 띈 측면이 있는데, 국민께서 저에 대해 재점검하고 있다고 봅니다.”

    ▼ 한두 달 사이 지지율이 15% 가까이 된 것은 벼락출세 아닌가요.

    “저도 좀 놀랐습니다. 촛불 수백만 명이 움직이면서 급격하게 짧은 시간 내 급상승한 측면이 있죠.”

    ▼ 벼가 웃자라면 웬만한 바람에도 쓰러진다고 하는데.

    “자연현상과 사람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너무 웃자란 측면이 있어요. 이제부터 다지고 올라가야죠.”

    ▼ 어떻게 내실을 기할 생각입니까.

    “비전과 정책을 만들고, 인재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겠죠. 저를 중심으로 팀 구성도 해야 할 테고요. 국민이 인정할 만한 팀으로. 팀 구성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 재선 기초단체장 출신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며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나 운영원리는 똑같습니다. 국민께서는 역량과 일관성, 신뢰성, 책임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아요. 국민은 지금 신경선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의사를 통일하며, 그 뜻을 널리 확산하는 하나의 집단지성체가 됐습니다. 더는 고립된 개인에 머물지 않고 집단지성을 갖춘 유기적 인격체로 진화한 것입니다.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도널드 트럼프 현상도 그랬지만, 저 같은 기초단체장이 경력이 일천한데도 네트워크에 노출돼 국민 일부에게 간택된 거죠.”

    ▼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국민을 리드하려 했어요. 때로는 국민을 대상화하고 동원하며 군림했죠. 그러다 국민 뜻과 어긋나 배척받았고요. 그런데 집단지성을 갖춘 국민은 더는 대상화를 거부합니다. 어느 뛰어난 정치인도 유기적 인격체로 진화한 국민의 집단지성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 함께 가는 것이 최고 리더십인 시대가 됐습니다. 단순하게 대중을 추종하는 포퓰리스트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대중의 집단지성 수준이 높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곧 돌아옵니다.

    “강력한 경쟁자로 보지 않습니다.”

    ▼ 반 총장에겐 국내 정치인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는데요.

    “고관대작 경력에도 뚜렷하게 한 일이 없으면 오점이 되는 시대입니다. 또 외교행낭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공직을 사적 이익에 남용한 사람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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