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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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북한 핵실험 후폭풍

북한과 러시아의 신(新)밀월관계

北, 제재하려는 중국 견제…문 대통령 러 방문 성과 없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9-11 16: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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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한반도 운전석에 올랐다. 그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 빨라지고, 제동 페달을 밟으면 급정거한다. 핸들을 ‘확’ 돌리면 한쪽으로 몸이 쏠린다. 안전띠를 맸음에도 불안해 앞좌석 등받이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다음 날인 9월 4일 중국 모 지역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의 항적(航跡)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정기 여객기가 아니었다. 북한 핵실험에 화가 난 중국이 항의하려고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러시아는 움직임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할 뿐이다.

    한 러시아 소식통은 “북한은 6차 핵실험 이틀 전 러시아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중국과 거래가 많지만 중국이 제재할 것 같으면 얼른 러시아에 접근한다. 북한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면 중국이 슬쩍 제재를 완화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원유 차단에 똑같이 반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관계는  여러 방향에서 확인된다.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 2청사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됐다.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현장을 확인한 말레이시아 경찰은 취업비자를 받아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던 이정철(46)을 체포하고,  1월 31일~2월 7일 북한의 일반여권으로 입국한 이재남(57), 오종길(55), 이지현(33), 홍송학(34)이 사건 직후 출국한 것을 확인해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했다.

    4인조는 인접국 인도네시아로 가 항공기를 갈아타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탄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갔다. 항공권을 예매하지 않은 일반인은 이렇게 빨리 비행기를 갈아탈 수가 없다. 서쪽(UAE)으로 갔다 동쪽(블라디보스토크)으로 가는 행로도 이상했다. 이들을 정찰총국 소속으로 판단한 국가정보원(국정원)은 해당 국가의 수사정보기관을 움직여 이들을 체포하려 했다.  




    주민 대피 준비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 노동자와 기관원이 많이 나와 있기에 국정원도 요원을 대거 투입해놓고 있다. 국정원은 이들을 총동원해 노력했지만 러시아는 외면했다. 2월 17일 4인조는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북한은 주북한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그 가족을 인질로 잡았고, 결국 이정철이 석방되고 김정남 시신도 넘겨받는 ‘산뜻한’ 승리를 거뒀다.

    북한 측에 원유를 공급하는 것은 중국(연간 50만t 추정)만이 아니다. 러시아도 싱가포르 해운사의 유조선 등을 빌려 연간 30만t가량을 보내주고 있다. 러시아 국영철도공사와 북한 나진항이 7 대 3으로 투자한 물류회사 ‘나선콘트란스’의 대표인 이반 미하일로비치는 8월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미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분쟁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 북한에 거주하는 러시아 직원 100여 명의 대피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8월 29일 북한이 발사한 화성-12형이 일본 열도를 넘어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그날 러시아 매체 ‘리이프’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보호청이 두만강에 붙어 있는 러시아 지역 주민 1500여 명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한미일이 응전(應戰)하지 않자 ‘페드프레스(FedPress)’라는 매체는 ‘대피령은 훈련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러시아 당국은 ‘대피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국정원 차장 출신인 한 관계자는 이런 의견을 밝혔다.

    “모든 나라는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해외에 있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관광객이 줄었다고 하지만 한국에는 10여만 명의 중국 유학생과 100여만 명의 중국 국적 근로자가 체류하고 있다. 북한이 기습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들도 위태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한국과 함께 북한 도발을 억제하려 한다. 북한은 핵실험을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훈춘(渾春), 창춘(長春), 옌지(延吉) 지역 건물이 흔들리고 주민들이 놀라 뛰쳐나올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중국이 보호해온 김정남을 북한이 살해해 자존심에 상처도 입었다. 원유 공급을 차단해 버릇을 고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북한은 러시아에 더 달라붙는다. 그래서 북한을 규탄한다고 했다 원유 차단은 할 수 없다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갖고 놀고 있는 것이다.”

    앞의 러시아 소식통은 “석유 수출로 경제를 유지해온 러시아는 저유가(油價)가 지속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푸틴은 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미국에 맞서는 신냉전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이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려 하자 러시아는 그들의 스텔스기인 T-50(PAK FA) 공장을 북한 대표단에게 공개했다. 신냉전이 시작돼야 북한이 러시아에서 많은 것을 사가고, 한국도 아쉬운 것이 많아 접근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거의 속수무책인데,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워지고 있다면 우리의 전략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 위해 외교부뿐 아니라 국정원도 제구실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과거사를 캐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국개발)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다. 북한은 한국의 사이버공간을 이용해 심리전을 펼쳐왔다. 이에 국정원도 사이버공간에서 응전해왔는데, 국개발은 이를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으로 보고 모조리 추적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믿지 못했는지, 국군기무사령관에 송 장관이 추천한 해병대 장성이 아닌 육군 장성을 앉혔다. 그런데 북핵 위기가 심각해지자 송 장관이 바라는 대로 사드 야전 배치, 전술핵 도입, 원자력잠수함 건조의 길을 인정하고 있다. 국방부에는 과거사를 캐는 조직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런 기회라도 잡아나가는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국개발 활동을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 하는데, 국개발 구성원들은 청와대가 임명한 데다 개인 목표가 있어서인지 서 원장의 통제를 받지 않으려 한다. 청와대가 국개발 활동을 정리해주지 못하면 국정원은 움직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푸틴을 왜 만났는가

    9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최하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고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갔다. 이 회의가 안보 위기에 직면한 문 대통령이 참석해야 할 정도로 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많다. 북한에서는 김영재 대외경제상(장관), 중국에서는 왕양 국무원 부총리가 대표로 나오는 데다 일정도 1박2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똑같이 북핵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하니 방러를 결심한 것 같다.

    안보 활동은 국가원수가 최일선에서 이끌어야 한다. 9월 6일 푸틴 대통령을 만난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려면 제재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며 대북 원유 공급 중단에 러시아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원유 공급 중단이 민간에 피해를 입힐 것”이라며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중국 상하이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후진타오와 면담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대화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대신 한반도 운전대를 잡으려면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서 국정원장을 통해 국정원에 북한과 관련된 확실한 목표를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둘러싸고 있어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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