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즉 UAV(Unmanned Aerial Vehicle·무인기)는 전 세계적 추세다. 최소 세계 87개국 이상에서 군용 또는 상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요즘 뉴스를 보면 드론을 활용한 공격이 활발함을 알 수 있다. 당장 7월 12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아프가니스탄(아프간)-파키스탄 지부 리더인 하피즈 사이드가 미군의 UAV 공격으로 제거됐다.
무인기의 선구자인 미 국방부에서는 무인기를 ‘사람 없이 양력과 동력으로 자율비행과 원격조정이 가능하며, 폐기 혹은 회수가 쉽고 살상 및 비살상 장비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로 정의한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 인명 손실이 없고 장기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병사 목숨이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 현대 사회에서 무인기는 이제 전쟁의 필수수단이 되고 있다. 미군에서 전체 항공기 대비 UAV의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정찰기 가운데 25%가 무인기다.
CIA 對테러작전에서 맹활약한 프레데터
사실 미 공군처럼 드론을 잘 활용해온 군대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무인기는 과거 대공표적을 끌고 가는 훈련용 장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미군은 UAV를 정찰 목적으로 사용해왔다. 물론 단순히 군 혼자서만 움직인 것은 아니다. 61년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가정찰국(NRO)이 만들어지자, 여기에서 항공사진정찰 업무를 관장했다. 미 공군과 중앙정보국(CIA)은 NRO를 통해 협업하면서 AQM-34 라이트닝버그 같은 무인정찰기들을 개발했다. CIA는 돈을 대고 공군은 운용을 맡았다. 이때부터 줄곧 미국의 정보공동체가 예산을 대고 공군이 정보수집항공기를 운용하는 전통이 세워졌다. 미군 무인기 예산의 40%는 정보공동체가 부담해왔다.
베트남전쟁은 무인기가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모두 3400여 회 무인정찰기를 날렸다. 그중 554대가 격추됐다. 조종사 554명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베트남전쟁 전후에도 AQM-34는 제한적으로 운용됐으나 무인기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4차 중동전에서 적의 대공미사일에 엄청나게 시달린 이스라엘군이 실시간으로 적 방공망을 감시할 수 있는 무인기를 최초로 실전배치했다. 이런 이스라엘의 활용 사례를 본 미국도 파이오니어 UAV를 필두로, RQ/MQ-1 프레데터, RQ-4 글로벌 호크 등 각종 UAV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UAV가 바로 MQ-1 프레데터와 MQ-9 리퍼다. 이들은 UAV가 더는 ISR(정보·감시·정찰) 용도에만 한정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MQ-1 프레데터는 1t이 안 되는 무게에 길이 8.14m, 날개폭 12.7m이며 시속 130km로 24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프레데터의 최고 비행기록은 40시간 반이었다. 기체 전방에는 센서포드가 장착돼 주야 불문하고 지상을 감시할 수 있으며,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장착해 지상 목표에 폭탄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프레데터는 실시간으로 영상 전송이 가능해 지휘관은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Fu-밴드의 위성통신시스템을 사용하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무인기를 조종해 정보를 전송받을 수 있다. 프레데터는 단순히 정찰임무에 그치지 않고 공격까지 할 수 있다. AGM-114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하고 2001년에는 고정 목표물(탱크)에 대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해 모두 명중시키면서 무장플랫폼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런 프레데터의 덩치를 키워 외부 무장을 최대 1.4t까지 장착할 수 있게 한 것이 리퍼다.
이런 프레데터 UAV의 가능성을 진작부터 높이 산 것이 CIA 대테러센터였다. CIA는 2000년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찾기 위한 ‘아프간 아이즈(Afghan Eyes)’ 작전에 프레데터를 투입해 그해 9월 7일 최초로 아프간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실시했다. 총 15회 정찰비행에서 약 10회에 걸쳐 유용한 정보가 수집됐다. 특히 칸다하르 인근 타르냑에서 빈 라덴으로 보이는 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CIA 요원들이 수십 회 정찰로도 찾지 못한 빈 라덴을 프레데터가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10월 중순 아프간 전역의 기상 상태가 악화돼 프레데터의 정찰비행은 계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정찰비행 자체가 중단됐다. 그사이에도 프레데터는 진화를 계속해 2001년 2월에는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장형 프레데터가 빈 라덴을 암살하는 데 유용한 도구임을 확인했지만 그해 여름이 지나도 아프간 아이즈 작전은 속행되지 못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가 CIA 계획을 승인하자 2001년 9월 4일부터 무장형 프레데터가 우즈베키스탄 비밀기지에서 다시 정찰비행을 속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전 개시 일주일 만에 9·11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 정밀타격까지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의 일선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것이 프레데터와 리퍼 UAV였다. 특히 프레데터는 2001년 10월부터 아프간에 투입돼 표적제거 임무(Targeted Killing), 즉 드론을 활용한 테러범 암살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2002년 3월에는 고립된 특수부대원들을 지원하는 근접항공지원 임무까지 수행했다. 이런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UAV는 이제 미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군사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UAV는 미군 병력이 감소하고 해외 파병이 제한되면서 워싱턴이 선택한 ‘정치적 저비용·고효율’ 무기다. UAV는 위성통신을 통해 미국 본토에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배치된 장비들을 제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 정치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시 행정부를 통틀어 50여 회에 지나지 않던 UAV의 표적제거 임무가 오바마 행정부에선 연평균 100회를 넘고 있다.
특히 탈레반과 알카에다 본거지인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역은 미군 UAV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2010년 사살에 앞서 빈 라덴을 발견한 것도 UAV였다. 하피즈 사이드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도 UAV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온 미군의 전략 덕분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재임 기간 미군은 드론을 통해 3300여 명의 알카에다를 사살했는데, 이 중 고위간부급이 50여 명에 이른다.
이제 미국은 UAV를 본격적인 전투 임무에 투입하는 UCAV(무인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면서 스텔스 성능으로 침투비행을 하고 정밀타격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종사가 탑승한 스텔스전투기가 UCAV를 이끌고 들어가 다양한 전투를 수행한다는 전술까지 개발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없지는 않다. 드론 암살의 윤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테러범 1명을 죽이는 데 너무 많은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게다가 최근 시퀘스트레이션(자동 예산 삭감)으로 운용요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그러나 미군의 UAV 의존도는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다. IS와 알카에다를 상대로 그 어떤 부대도 UAV만큼 정치적으로나 비용 측면으로나 큰 효과를 올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인기의 선구자인 미 국방부에서는 무인기를 ‘사람 없이 양력과 동력으로 자율비행과 원격조정이 가능하며, 폐기 혹은 회수가 쉽고 살상 및 비살상 장비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로 정의한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 인명 손실이 없고 장기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병사 목숨이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 현대 사회에서 무인기는 이제 전쟁의 필수수단이 되고 있다. 미군에서 전체 항공기 대비 UAV의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정찰기 가운데 25%가 무인기다.
CIA 對테러작전에서 맹활약한 프레데터
사실 미 공군처럼 드론을 잘 활용해온 군대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무인기는 과거 대공표적을 끌고 가는 훈련용 장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미군은 UAV를 정찰 목적으로 사용해왔다. 물론 단순히 군 혼자서만 움직인 것은 아니다. 61년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가정찰국(NRO)이 만들어지자, 여기에서 항공사진정찰 업무를 관장했다. 미 공군과 중앙정보국(CIA)은 NRO를 통해 협업하면서 AQM-34 라이트닝버그 같은 무인정찰기들을 개발했다. CIA는 돈을 대고 공군은 운용을 맡았다. 이때부터 줄곧 미국의 정보공동체가 예산을 대고 공군이 정보수집항공기를 운용하는 전통이 세워졌다. 미군 무인기 예산의 40%는 정보공동체가 부담해왔다.
베트남전쟁은 무인기가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모두 3400여 회 무인정찰기를 날렸다. 그중 554대가 격추됐다. 조종사 554명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베트남전쟁 전후에도 AQM-34는 제한적으로 운용됐으나 무인기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4차 중동전에서 적의 대공미사일에 엄청나게 시달린 이스라엘군이 실시간으로 적 방공망을 감시할 수 있는 무인기를 최초로 실전배치했다. 이런 이스라엘의 활용 사례를 본 미국도 파이오니어 UAV를 필두로, RQ/MQ-1 프레데터, RQ-4 글로벌 호크 등 각종 UAV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UAV가 바로 MQ-1 프레데터와 MQ-9 리퍼다. 이들은 UAV가 더는 ISR(정보·감시·정찰) 용도에만 한정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MQ-1 프레데터는 1t이 안 되는 무게에 길이 8.14m, 날개폭 12.7m이며 시속 130km로 24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프레데터의 최고 비행기록은 40시간 반이었다. 기체 전방에는 센서포드가 장착돼 주야 불문하고 지상을 감시할 수 있으며,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장착해 지상 목표에 폭탄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프레데터는 실시간으로 영상 전송이 가능해 지휘관은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Fu-밴드의 위성통신시스템을 사용하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무인기를 조종해 정보를 전송받을 수 있다. 프레데터는 단순히 정찰임무에 그치지 않고 공격까지 할 수 있다. AGM-114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하고 2001년에는 고정 목표물(탱크)에 대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해 모두 명중시키면서 무장플랫폼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런 프레데터의 덩치를 키워 외부 무장을 최대 1.4t까지 장착할 수 있게 한 것이 리퍼다.
이런 프레데터 UAV의 가능성을 진작부터 높이 산 것이 CIA 대테러센터였다. CIA는 2000년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찾기 위한 ‘아프간 아이즈(Afghan Eyes)’ 작전에 프레데터를 투입해 그해 9월 7일 최초로 아프간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실시했다. 총 15회 정찰비행에서 약 10회에 걸쳐 유용한 정보가 수집됐다. 특히 칸다하르 인근 타르냑에서 빈 라덴으로 보이는 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CIA 요원들이 수십 회 정찰로도 찾지 못한 빈 라덴을 프레데터가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10월 중순 아프간 전역의 기상 상태가 악화돼 프레데터의 정찰비행은 계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정찰비행 자체가 중단됐다. 그사이에도 프레데터는 진화를 계속해 2001년 2월에는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장형 프레데터가 빈 라덴을 암살하는 데 유용한 도구임을 확인했지만 그해 여름이 지나도 아프간 아이즈 작전은 속행되지 못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가 CIA 계획을 승인하자 2001년 9월 4일부터 무장형 프레데터가 우즈베키스탄 비밀기지에서 다시 정찰비행을 속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전 개시 일주일 만에 9·11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 정밀타격까지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의 일선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것이 프레데터와 리퍼 UAV였다. 특히 프레데터는 2001년 10월부터 아프간에 투입돼 표적제거 임무(Targeted Killing), 즉 드론을 활용한 테러범 암살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2002년 3월에는 고립된 특수부대원들을 지원하는 근접항공지원 임무까지 수행했다. 이런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UAV는 이제 미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군사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UAV는 미군 병력이 감소하고 해외 파병이 제한되면서 워싱턴이 선택한 ‘정치적 저비용·고효율’ 무기다. UAV는 위성통신을 통해 미국 본토에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배치된 장비들을 제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 정치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시 행정부를 통틀어 50여 회에 지나지 않던 UAV의 표적제거 임무가 오바마 행정부에선 연평균 100회를 넘고 있다.
특히 탈레반과 알카에다 본거지인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역은 미군 UAV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2010년 사살에 앞서 빈 라덴을 발견한 것도 UAV였다. 하피즈 사이드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도 UAV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온 미군의 전략 덕분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재임 기간 미군은 드론을 통해 3300여 명의 알카에다를 사살했는데, 이 중 고위간부급이 50여 명에 이른다.
이제 미국은 UAV를 본격적인 전투 임무에 투입하는 UCAV(무인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면서 스텔스 성능으로 침투비행을 하고 정밀타격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종사가 탑승한 스텔스전투기가 UCAV를 이끌고 들어가 다양한 전투를 수행한다는 전술까지 개발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없지는 않다. 드론 암살의 윤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테러범 1명을 죽이는 데 너무 많은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게다가 최근 시퀘스트레이션(자동 예산 삭감)으로 운용요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그러나 미군의 UAV 의존도는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다. IS와 알카에다를 상대로 그 어떤 부대도 UAV만큼 정치적으로나 비용 측면으로나 큰 효과를 올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