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간동아’ 1092호 글에서 밝혔듯 사람들은 저마다 전이현상에 의해 후보자를 평가했고, 앞으로 새로운 후보자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전이현상 말고도 또 하나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사람은 바뀌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그것이다.
얼마 전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 가운데 특이한 게 40년 전 사건이었다.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한 일이었다. 20대 중반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그는 “당시 이기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던 사람과 그녀의 가족에게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며 “그 후 참된 존중과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한시도 잊지 않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잘못으로 내 인생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검찰개혁 포부를 접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악화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장관 후보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사람은 바뀐다는 시각
여기에서 필자는 한 가지 가정을 해봤다. 만일 그가 40년 전 잘못만 있었을 뿐, 그 후부터 현재까지 매우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했을까.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의 혈기와 한순간의 실수로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충분히 반성했고 그 후 달라졌으므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반면 적잖은 비율의 사람은 ‘비록 오래전 일이라지만 보통 사람이 저지르기 힘든 잘못을 한 사람이라면 도덕관에 문제가 있을 것이므로 언제, 어떻게 또다시 잘못을 할지 모른다. 따라서 큰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하다. 더구나 법을 엄정하고 정의롭게 집행해야 할 법무부 장관에는 결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다.
이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자는 ‘사람은 바뀐다’고 믿는 쪽이다. 그들은 특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나 특출한 천재를 바라볼 때 ‘무척 노력했기에 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타고난 ‘천성(nature)’보다 후천적 ‘양육(nurture)’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부모의 양육 또는 교사의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찾아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은 ‘성장의 마음가짐(growth mindedness)’도 갖추고 있다. 성장의 마음가짐이란 내가 노력하면 앞으로 발전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 ‘무엇이든지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같은 문구와 연결된다. 젊은 시절 사고를 치거나 방탕하게 살았다 해도 어느 시점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은 뒤 엄청나게 노력하면 오히려 더욱 모범적이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탄력성(resilience)’의 개념도 이때 등장한다. 탄력성이란 실패나 좌절 상황에서 자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을 뜻하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성공한 사람은 강한 탄력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사람은 바뀐다’고 믿는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최고 악인도 자신의 노력 또는 주변의 도움으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주변 사람을 평가할 때 옛날에 그가 어땠는지는 별로 개의치 않고 오로지 현재 모습, 언행, 태도, 생각, 심성 등을 중요시한다. 이런 점은 현재 자신의 삶이 괴롭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들은 미래와 희망과 꿈이 있기에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시각
반면, 후자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쪽이다. 이들은 특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나 특출한 천재를 바라볼 때 ‘대단한 소질을 갖고 태어났기에 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타고난 ‘천성’을 후천적 ‘양육’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천재의 뇌는 어떤 특별한 구조와 기능을 가졌는지를 무척 궁금해하고, 그가 보통의 사람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내 그 이유를 이해하고자 한다.이들은 ‘고정관념(stereotype)’의 마음가짐이 강하다. 고정관념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특정한 성질과 연결해 미리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수학을 더 잘하며, 여자는 쇼핑을 좋아하고 수다 떠는 걸 더 잘한다”고 자연스레 말하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같은 속담도 이들이 좋아하는 표현들이다. 즉 성공한 사람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징조를 보이며,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형질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특징이나 성격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뀌지 않기에 삶의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뒤 좋은 기회를 얻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역경을 맞을 때도 있지만 이내 극복하곤 한다. 이 또한 ‘탄력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러한 탄력성조차 이미 뇌 속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돼 발휘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한 번 악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또는 주변에서 아무리 도움을 줘도 결코 선해질 수 없다.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정신분석 용어는 이러한 믿음을 부추긴다. 반복 강박이란 어린 시절에 한 체험을 어른이 된 뒤에도 되풀이하는 것을 뜻한다. 비록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과거 상황일지라도 이를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갖는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은 주변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옛날에 어땠는지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과거 평판, 이력, 경험, 사건 등을 알려고 한다.
이는 과거 잘못을 저질렀거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을 절망케 한다. 그들에게는 ‘낙인(stigma)’이 찍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언제 어떻게 튀어나와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낙인이 찍혔다고 믿는 사람은 타인을 경계하고, 불신하며, 낙인이 드러나지 않게끔 종종 거짓말을 한다. 그럴수록 낙인의 부정적 영향은 더욱 커질 뿐이니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이 대세인가. 어느 쪽이 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가. 희망을 주는 쪽의 생각을 좇다 실망만 할지, 아니면 그래도 희망을 계속 가져야 옳은지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상당 부분 정치인들의 생각, 나아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행스럽게도 정치인들의 생각과 정책은 우리의 생각, 행동, 선택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