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오후 부산 서면역에서 탄 택시가 부산시청으로 향할 때 50대인 택시기사는 ‘먹고살기 바쁜데 선거타령이냐’는 눈빛으로 기자를 흘깃 쳐다봤다.
기자는 1월 20~21일 이틀간 출렁이는 부산 민심을 취재했다. 부산은 새누리당이라는 큰 산이 자리 잡고 있지만, 1당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 낙후된 부산 경제에 대한 불만 등이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르는 휴화산 같았다.
6·4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새누리당 권철현 전 주일대사와 서병수, 유기준, 반민식, 이진복 의원, 민주당 조경태 의원과 김영춘 전 의원, 박재호 부산시당 위원장,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최인호 전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무소속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10여 명.
‘부산일보’가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시민 1013명을 대상으로 RDD(임의번호걸기) 방식을 이용한 유무선 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를 실시한 결과, 오 전 장관 13.5%, 권 전 대사 11.7%, 서 의원 10.0%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 정가에서는 2004,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오 전 장관의 저력을 볼 수 있다는 평가와 새누리당 후보 지지도가 분산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부산시민은 여전히 새누리당 지지 성향이 강했지만, 낙후한 경제와 1당 장기집권 피로감에 야권 후보 기대감도 함께 드러냈다. 사진은 2013년 11월 도개 교량인 영도대교 개통식에 모인 인파.
지난해 12월 27~28일 부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제신문’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도 흥미롭다. 여권에선 권철현(15.1%), 이진복(9.5%), 서병수(8.6%), 박민식(4.8%) 순으로 나타났다. 범야권 후보 중에는 김영춘(10.08%), 최인호(8.7%), 이해성(4.4%), 박재호(3.0%) 순이었다. 그러나 ‘잘 모름’ 응답이 52.0%(여권 후보), 73.1%(야권 후보)였다. 선거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부산시청과 법조타운이 가깝고 금융기관이 밀집해 부산의 새 중심지로 부상한 연산4동 고분로길 먹자골목. 이곳 횟집에서 만난 김호철(62) 씨는 “안정적인 시정(市政) 운영과 중앙정부와의 원활한 교류를 고려해 이번에도 새누리당 후보를 찍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 성향은 고령일수록,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일수록 더 강하게 표출됐다. 경비업을 하는 배철우(72) 씨는 “신문을 보니 이번 지방선거가 박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고 하더라”며 “박근혜 2기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면 새누리당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당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도 엿보였다. 주류업을 하는 손용석(41) 씨는 “20년간 새누리당을 지지했는데 부산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어 인근 울산이나 서울로 떠나고, 희망을 걸었던 가덕도 신공항은 경남 밀양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유야무야됐다”면서 “이번에는 여야 가리지 않고 경제 살리는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동래시장에서 만난 박종웅(51) 씨는 이번 부산 민심을 ‘치아뿌라’ 기질로 설명했다.
“부산 사람은 도와줄 때는 확실하게 도와줘요. 반면 ‘치아뿌라’(‘치워라’의 경상도 방언으로 ‘됐어, 그만해’란 의미) 기질도 있습니다. 지켜보다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아무런 말도 안 하고 단절합니다. 지금까지 새누리당을 지지한 지역민의 참을성도 이제 임계점에 달한 만큼 이번 선거에서 치아뿌라 기질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 12월 기준 부산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은 55.2%(162만9000명)로 16개 시도 가운데 두 번째로 낮다. 2007년 고용률 55.9%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이후 5년 연속 고용률 ‘꼴찌’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역경제 활동 허리 층인 30~40대 유출 인구는 전국 2위다. ‘국제신문’ 조사에서도 차기 부산시장은 ‘경제시장(40.8%)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다.
‘부산경제 해결사’에 대한 부산시민의 염원은 상업·금융 중심지인 서면 일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면시장 옆 서면로 68번길은 부산 풍미(風味)인 돼지국밥 전문점이 몰린 곳. 5500원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는 일용직 근로자부터 회식하는 넥타이부대까지 다양한 계층 사람이 몰려 있었다.
1당 집권 피로감…야권 후보 대체재 인식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왼쪽)와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1대1 대결을 펼친 5회 지방선거에서는 김 후보가 44.57%를 득표(허 시장은 55.42%)해 급변한 부산 민심을 보여줬다. 2010년 5월 21일 석가탄신일 오전 부산 삼광사에서 봉축법요식에 참가한 두 후보.
시민 여러 명이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지만, 이를 곧 ‘지지 철회’로 단정할 수는 없을 듯했다. ‘자식이 밉다고 호적에서 팔 수 있나’ 하는 지역 정서도 여전했고, 새누리당 후보가 확정될 때까지 ‘지지를 유보한다’는 정서도 엿보였다. 그러나 부산, 경남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안철수 의원의 고향인 만큼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후보를 ‘대체재’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은행원 김철호(54) 씨는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을 많이 했다”며 “민주당은 부산에서도 국회의원 2명(문재인, 조경태 의원)을 배출했고, 두 번 연속 부산·경남 사람을 대통령선거(대선) 후보로 낸 만큼 더는 ‘호남 민주당’도 아니다. 이번엔 민주당 후보에 표를 줘 부산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 시민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징어 요리전문점에서 일한다는 20대 여성은 “안 의원이 기자회견을 할 때 보면 국민을 위한다는 진실성이 느껴진다”며 “권위적인 새누리당 시장 후보보다 부산시민 마음을 위로해주는 안철수 신당 관련 인사가 시대적 흐름과 맞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언론인은 이러한 부산 민심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현재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새누리당 후보가 50%대 후반, 야권 단일후보 20%대 후반으로 나온다. 하지만 지난 5회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부산은 새 인물을 원한다는 표심이 드러났고, 지방선거는 인물 중심 선거인 만큼 여야가 어떤 인물을 낼지에 따라 초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야권 후보가 이런 표심을 자극하고 ‘노풍(盧風·노무현 바람)’ ‘문풍(文風·문재인 바람)’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 함께 상승작용을 하면 태풍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각 당 공천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