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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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0순위는 기호순번제 폐지

이것만은 꼭! | 줄투표 통한 거대 정당 특권, 기득권 구조 재생산 막아야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정치학박사 manmand@naver.com

    입력2013-02-22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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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 0순위는 기호순번제 폐지

    지난해 19대 총선의 한 지역구 후보자 선거 벽보.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변화의 한 축은 역시 새로운 정치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18대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여야 주요 대선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치쇄신을 얘기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에서부터 국회의원 특권 축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제기했다. 물론 구호에 그치거나, 실질적인 정치쇄신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여야 모두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한국 정당정치의 부당한 기득권 구조를 재생산하는 ‘거대 정당 우선순위의 기호순번제’를 어느 후보나 정당도 문제 삼지 않았다. 기호 순번제 폐지는 가장 손쉬운 조치이면서 한국 정당정치의 혁명적 변화도 기대할 수 있는 개혁 조치다.

    정당공천이 이뤄지는 선거에서 투표용지와 선거벽보에 큰 정당 순서대로 기호를 부여하는 우리 공직선거법 제150조 조항은 기득권 정당에 특혜를 주는 불평등한 규정이다. 순서에 따른 프리미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우리나라처럼 기호까지 붙여 줄투표를 하게 만든다면 불평등 효과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호순번제는 세계 주요 국가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또 그 순서도 소수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추첨을 통해 결정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현역이나 양대 정당을 앞쪽에 배치했다가 위헌 결정을 받아 시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번 위헌심판청구가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각하 또는 기각됐다. 해외 사례가 충분히 소명되지 못한 가운데 재판관들이 불평등한 기득권 문제보다 정당정치에 대한 보호 취지를 우선시한 결과다. 최근에도 이 문제가 다시 헌법재판소에 계류된 상황이다. 지금 우리 정당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기성 정당 보호가 아니라, 기성 정당이 가진 기득권 완화 또는 해소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헌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정당정치를 혁신하는 데 필요한 제도 개혁 과제다.

    단순하지만 파급력 엄청나

    2010년 이명박 정부 사회통합위원회가 ‘지역주의 문제의 제도적 극복 전략’ 일환으로 기호순번제 폐지를 국회에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최종 입법 논의 단계에서 이 제안은 사라져버렸다. 명분은 정당정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으나, 거대 여야 정당이 누리는 특권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독과점 폐해를 경제민주화 핵심 과제로 거론하면서, 막상 자신들의 독과점 특혜는 지속하려는 것이다.



    바람직한 정당정치는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신뢰받는 정당은 성장할 수 있게 하고, 국민과 유리된 정당은 퇴출되게 하는 것이다. 국민과 호응하면서 작동하는 이런 민주적 정당정치가 오히려 정당정치 안정에 기여한다. 기호순번제를 폐지하더라도 여전히 소속 정당은 후보자가 가진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징표이자 판단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호만 보고 줄투표하는 ‘묻지마식’ 선거와 지역별 1당 독점 폐해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거대 정당 공천이 무조건 당선을 보장하는 특권 구조를 완화한다면 공천비리 동기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적대적 정쟁정치도 완화할 수 있다.

    기호순번제 폐지는 한국 정당정치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 핵심적 제도 개혁이다. 단순하고 쉬운 조치이면서 파급력은 가장 큰 제도 개혁이다. 한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이뤄져야 할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다. 다행히 가장 큰 걸림돌이던 기성 거대 정당의 기득권 지키기에 대한 자성 분위기와 사회적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여야 정당이 자발적 협조를 통해 제도 개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현실적으로는 다수당인 집권 여당과 변화를 주도할 박근혜 대통령의 공감 및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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