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4일 밤 서울광장에서 싸이와 서울시민은 하나가 됐다.
주류로 떠오른 B급 문화
1960년대 창작 록음악을 처음 선보인 록의 대부 신중현.
‘강남스타일’은 미국 시장보다 더 보수적이고 아시아 음악을 수용하는 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영국 공식 차트에서 이미 1위에 올랐다. 또한 18개 국가의 아이튠즈 ‘탑 송스(TOP SONGS) 차트’에서도 1위를 휩쓸고 있다. 국내외 언론은 일제히 그의 신드롬을 분석하느라 정신없고, 이제는 한국인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 등극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싸이로 인해 B급 문화에 대한 관심도 증폭하고 있다. B급 문화란 주류 고급문화의 반대 개념으로, 유치하거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저예산으로 제작한 문화를 가리킨다. 오랫동안 대중은 이 ‘싼티’나는 문화를 외면했고, 소수만 열광했다. 따지고 보면 1960년대 창작 록음악을 처음 선보인 록의 대부 신중현과 ‘괴짜 감독’으로 불린 김기영 감독,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도 B급 문화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대중 기호에 부합하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시대를 앞서가고 선구적 실험을 선보였던 모든 작품과 아티스트는 한국 B급 문화의 선구자인 셈이다.
B급 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발한 것은 싸이가 처음은 아니다. 장기하로 대변되는 인디음악과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예상치 못한 흥행을 통해 이미 징후가 나타났다. 오디션 열풍을 불러온 ‘슈퍼스타K 2’ 결승전에서 대결했던 허각과 존박도 빼놓을 수 없다. 외모와 스펙에서 두 사람은 확연히 A급과 B급으로 구분됐다. 그런데 대중은 노래 실력 빼고는 우월한 구석 하나 없는 허각을 최종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화려한 스펙과 외모,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 소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됐다. 이에 잘난 인간에 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대다수 대중이 잘나 보이는 모든 것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디지털시대에는 불편한 진실을 철저히 숨기고 근사하게 포장한 A급 문화의 과잉공급과 더불어 A급 인간이 세상을 주도했다. 이에 좌절과 염증을 느낀 대중은 자신이 느끼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결핍 심리를 보상받으려고 대안적 문화인 B급 문화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B급 전형인 싸이의 성공은 예정된 수순일 수도 있다. 기존 케이팝(K-pop) 가수들은 멋지고 근사하게 자기를 포장한다. 싸이는 근사하게 포장하기보다 망가진 모습을 오히려 부각한다. 외모는 ‘싼티’와 ‘저렴함’이지만 알맹이는 해학과 솔직함으로 채워진 수준급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대중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싸이는 일반 대중보다 자신을 한심하고 무식하게 보이는 이미지로 친근감을 이끌어냈다. 굉장히 영리한 전략이다. 데뷔곡 ‘새’를 발표했을 때 대중은 그를 ‘엽기가수’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 서인영의 ‘신데렐라’,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 같은 히트곡을 직조한 히트제조기다. 원색적인 유쾌함을 킬러 콘텐츠로 만들 줄 아는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달했고 전 세계는 그의 춤에 매료됐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빵 터진 최고의 순간은 화장실 변기 장면이다. 싸이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지만, 하지 않은 척하는 불편한 진실을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보면서 대중은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는 위안을 받는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기는 화장실 안이나 스마트폰이나 매한가지다.
2010년 10월 22일 ‘슈퍼스타K 2’ 최종 라운드에서 허각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친 존박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왼쪽).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인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
B급 문화의 득세는 디지털이 만들어낸 투명성의 힘이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공허한 스펙 자랑은 사라졌다. 검색하면 바로 모든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잘난 척’하는 경쟁보다 실수하고 망가진 이야기가 술자리와 TV 토크쇼에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그런 일탈적인 솔직한 모습에 대중이 인간적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적 상징성이 강한 말을 춤으로 표현하고 채찍을 휘두르면서 펄쩍펄쩍 뛰지만, 전혀 멋있거나 강인해 보이지 않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열광하는 현상은 디지털시대의 결핍이 불러온 완벽한 역설의 미학이다.
7월 15일 싸이가 6집 ‘싸이 6甲 Part 1’을 발표하고 음원차트를 ‘올 킬’했을 때만 해도 모두 이례적인 광풍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 세계 여름 음악시장을 완전 석권했고, 풍요로운 결실을 앞두고 있다. 비주얼적으로 ‘강남’과 거리가 멀고, 근사한 아이돌도 아닌 35세 유부남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흥분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만국공용어인 웃음 코드를 들 수 있다. 또한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코믹하면서도 성적 코드를 절묘하게 결합한 ‘말춤’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방송에서 한국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당당함도 강점이다. 그가 미국에서 인기 있는 요인에 대해 미국 언론은 “이전 한국 대중가수와 달리 영어에 능통하고 세계적 스타 앞에서도 주눅 들거나 선망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전한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적 개성도 인기의 절대 요인이다.
강남스타일은 무엇을 뜻할까. 가사를 살펴보면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이면서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그런 감각적인 여자가 바로 강남스타일이다. 남자의 경우는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그런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강남스타일이다. 고로 강남스타일은 스타일리시한 패션이나 부유한 생활 양태를 지칭하기보다 열심히 일하고 즐길 줄 아는 자신이라는 ‘공감대’가 생긴다.
싸이가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
세계인과 소통하는 ‘말춤’은 어린이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단순한 춤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명곡을 살펴보라. 하나같이 난해하기보다 쉽고 단순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흥미로운 것은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랫말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부 외국인 사이에서는 ‘오픈 콘돔 스타일’로 들리는 환청작용까지 발휘하며 섹시 흥행코드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싸이의 성공은 케이팝의 볼륨 확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이돌 댄스음악이 전부라는 케이팝에 대한 해외의 부정적 인식이 싸이로 인해 허물어지고 있다. 핵심은 ‘세련된 외모’와 ‘준수한 몸매’가 아닌 ‘엽기’와 ‘코믹’이다. 부담스러운 외모는 코믹이라는 배수의 진을 통해 극적 반전을 이뤄냈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싸이의 성공에 우리 시대 대중은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 싸이의 예상치 못한 성공은 어떤 음악이든 자기 색깔을 담보한 양질의 콘텐츠는 끝내 성공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걱정스러운 것은 성공한 콘텐츠로 장르 쏠림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관행이다. 그의 성공을 보고 비슷한 스타일로 ‘묻지마’식 따라 하기를 시도할 개연성이 크다. 이는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싸이는 트렌드에 민감하기보다 자기 색채가 분명한 음악으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이상한 자기만의 상상력과 차별화한 콘텐츠, 그리고 인내와 노력,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자신감. 미래가 불확실한 디지털시대의 대중에게 던지는 싸이의 강력한 메시지다. 자! “갈 때까지 가보자”고 목 놓아 외치는 싸이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기분 좋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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