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제자리를 못 찾던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NSC)가 정상화되고 있다. NSC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한 달도 안 돼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정부와 연루 의혹으로 물러나면서 혼란에 빠졌다.
플린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와 수차례 접촉해 러시아 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24일 만에 사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허버트 레이먼드 맥매스터(55) 육군중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측근인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말썽을 부렸다. 배넌은 1월 28일 NSC의 장관급회의 상임위원에 임명된 바 있다.
NSC는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정책을 조언하고 최종 결정을 돕는 기능을 한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하는 NSC의 장관급회의는 대통령의 결정에 앞서 관련 정책을 조율하는 최상위 조직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정치 참모는 전통적으로 NSC의 장관급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참모인 칼 로브 선임고문을 NSC에서 배제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데이비드 액설로드 선임고문을 일부 회의에만 참석하게 했을 뿐이다.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 창립자로 외교·안보 경험이 일천한 배넌은 NSC의 주도권을 놓고 맥매스터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 5일 맥매스터의 건의를 받아들여 배넌의 NSC 상임위원직을 박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을 상무위원직에 복귀시켰다.
맥매스터 손 들어준 쿠슈너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막후에서 추진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들이 자충수가 됐다. 연방 법원들은 이란, 시리아 등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내용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잠정 정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배넌을 탐탁지 않게 여긴 맥매스터는 이를 축출 명분으로 삼았고, 반이민 행정명령 때문에 국정운영에 발목이 잡힌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을 물러나게 했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참모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대선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배넌은 또 다른 일등공신인 쿠슈너와 ‘권력 투쟁’을 벌였다. 심지어 백악관에는 배넌파와 쿠슈너파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포퓰리즘을 앞세워 관료체제 해체 등 과격한 개혁을 주장해온 배넌과 전문 관료를 중시하는 쿠슈너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쿠슈너는 맥매스터와 배넌이 의견 충돌을 빚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맥마스터의 손을 들어줄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맥매스터가 명실공히 외교·안보 사령탑을 맡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각종 분쟁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등 ‘세계의 경찰’ 구실에 반대해왔다.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길 꺼리던 그는 4월 6일 민간인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자행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응징하고자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은 맥매스터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상당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NSC는 또 맥매스터의 지휘로 미·중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실제로 매튜 포팅어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미·중 정상회담 실무책임자로서 주요 의제를 설정하는 데 관여했다.
포팅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기자 출신이다. 2005년 해병대에 입대한 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해 정보장교(대위)로 복무하기도 한 그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 문제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국을 강하게 압박한 것도 맥매스터와 포팅어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NSC는 최근 대북 정책 검토를 마치고 전술핵 한국 재배치, 김정은 제거 등 선제타격, 특수부대를 동원한 북한 기반시설 파괴 같은 옵션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맥매스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고자 모든(full range) 옵션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맥매스터는 ‘걸프전의 영웅’으로 불리는 등 육군에서 최고 전략가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육군교육사령부의 육군전력통합센터장이던 그는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그의 부친은 육군 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기갑병과 출신인 그는 ‘20세기 마지막 최대 기갑전’으로 역사에 남은 걸프전 ‘73 이스팅 전투’의 주역이다. 1991년 2월 벌어진 이 전투에서 그가 이끈 미군 제2기갑연대 독수리 중대는 이라크 최정예 기갑부대였던 타와칼나 사단을 궤멸했다. 당시 그는 독수리 중대의 탱크 9대를 지휘하면서 타와칼나 사단의 탱크와 장갑차, 차량 등 80여 대를 파괴하며 대승을 거뒀다.
걸프전 영웅이자 최고 전략가
하지만 그는 준장 진급에 두 차례나 실패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강골성향 때문이다. 특히 1997년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박사 논문을 보강해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란 책을 출간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이 책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가 현장 지휘관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해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지적해 군 수뇌부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2014년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들기도 한 그는 군사전략서 수천 권을 탐독해 ‘생각하는 전사(warrior thinker)’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NSC는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재임 시절 의회가 제정한 국가안보법에 따라 설치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으로선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보좌관의 영향력이나 구실은 역대 대통령의 정치 철학 또는 국정운영 방침, 보좌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미국의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은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발탁한 로버트 커틀러였다. 역대 국가안보보좌관 중에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임명한 헨리 키신저가 가장 유능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키신저는 73년 9월 국무장관에 임명되면서 75년 11월까지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직을 동시에 수행했다. 최장수 국가안보보좌관도 키신저로, 2478일간(6년 9개월) 재임했다.
역대 최단명 국가안보보좌관은 플린이다. 여성 국가안보보좌관은 지금까지 2명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 때 발탁된 콘돌리자 라이스와 오바마 대통령 때 수전 라이스이다. 장군 출신으로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인물로는 존 포인덱스터(해군 중장),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공군 중장), 콜린 파월(육군 대장), 제임스 존스(해병대 대장) 등이 있다.
맥매스터는 최근 스코크로프트 전 보좌관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키신저 전 보좌관은 “국가안보보좌관은 안전망 없이 하루 24시간 동안 외줄을 타는 직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맥매스터의 NSC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제대로 이끌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