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연속, 통산 10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3월 23일 원정으로 진행되는 중국과 6차전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A조) 후반기 일정을 재개한다. 중국전에 이어 28일에는 홈에서 시리아를 상대로 7차전을 갖는다. A·B조로 나눠 최종예선을 진행하는 아시아는 각 조 2위까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각 조 3위끼리 플레이오프(PO)를 거친 뒤 그 승자가 북중미 4위와 한 차례 더 대륙 간 PO를 펼쳐 본선행에 도전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최소 조 2위를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손흥민 경고 누적으로 중국전 못 뛰어
최종예선 일정의 절반을 소화한 가운데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승점 10)은 이란(승점 11)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 홈경기에서 극적인 2-1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렸지만, 우즈베키스탄(승점 9)에 겨우 승점 1점을 앞서 있을 뿐이다. 자칫 조 2위까지 거머쥐는 월드컵 본선행 티켓 확보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중국과 시리아를 상대로 승점 6점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러나 3월 23일 중국전부터 녹록지 않다. 그동안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던 유럽파 선수(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유례없는 부진을 보이고 있기 때문. 주장 기성용(28·스완지시티 AFC)은 이제 막 부상에서 벗어났고, 이청용(29·크리스털 팰리스)은 부실한 팀내 입지 탓에 제대로 실전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프랑스로 진출한 권창훈(23·디종 FCO)도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 에이스라 볼 수 있는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 FC)도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3월 13일 영국 FA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경고 누적으로 중국전에는 아예 출장조차 할 수 없다. 해외파 가운데 꾸준히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독일에서 뛰는 구자철(28), 지동원(26) 등 ‘FC 아우크스부르크 듀오’ 정도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슈틸리케 감독이 중국전과 시리아전을 앞두고 발표한 명단 구성에서는 고심의 흔적이 묻어난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국 이청용, 권창훈을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 유럽에서 뛰다 K리그로 돌아온 김민우(27·수원삼성블루윙즈)와 김진수(25·전북현대모터스) 등 ‘유턴 해외파’를 오랜만에 다시 불러들였다. 공격진은 김신욱(29·전북현대)과 이정협(26·부산 아이파크), 황희찬(21·FC 레드불 잘츠부르크) 3명으로 구성했는데,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라 부르는 이정협이 공격 A옵션, 김신욱이 B옵션이라 볼 수 있다. 손흥민이 뛸 수 없는 중국전의 공격 2선은 구자철과 지동원, 남태희(26·레크위야 SC) 등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중국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수비진이다. 5명의 센터백 자원 가운데 홍정호(28·장쑤 쑤닝), 김기희(28·상하이 선화), 장현수(26·광저우 R&F FC) 등 3명이 중국파다. 지난 최종예선에서 중국파 위주로 수비 라인을 꾸렸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에도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관적 전력이나 경기장 분위기 등을 고려했을 때 시리아전보다 더 철저하게 대비해야만 하는 중국전을 고려한 듯하다.
‘사드 매치’, 중국의 텃세를 넘어라!
그러나 슈틸리케호의 중심을 이룰 중국파 수비라인은 최근 경기감각이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다. 중국축구협회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아시아쿼터를 포함해 슈퍼리그 내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을 5명에서 3명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 탓에 센터백 자원 3명 가운데 꾸준히 경기를 뛰고 있는 이는 소속팀 최용수 감독의 절대적 믿음을 받고 있는 홍정호뿐이다. 김기희와 장현수는 올 시즌 개막 후 출장 기회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전감각 부재라는 악재를 딛고 이들이 수비에서 제몫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더욱이 원정으로 펼쳐질 중국전은 ‘사드 매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감한 외부변수와도 싸워야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국 배치 문제로 최근 한중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은 한국 관광 금지령을 내려 자국민의 한국 입국을 불허하고, 롯데마트를 비롯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등 다각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나서서 자국민의 ‘반한 감정’을 자극하는 등 한중관계는 수교 25주년을 맞았음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장 우리 축구대표팀도 중국의 반한 감정에 영향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는 중국 원정을 위해 전세기를 띄울 계획이었지만, 중국정부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중전이 펼쳐질 후난성 창사의 허룽스타디움은 5만5000석 좌석이 중국 서포터스 ‘추미(球迷)’로 가득 찰 것이 빤하다. 이 때문에 경기 결과에 따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는 “이번 중국 원정은 (최종예선에서) 두 번째로 부담이 큰 경기다. 첫 번째로 부담이 큰 경기는 지난해(10월 11일) 이란 원정이었다. 당시 이란의 종교행사 때문에 경기장 분위기가 우리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이란전을 상기했다. 당시 대표팀은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란과 최종예선 4차전에서 졸전 끝에 0-1로 패한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전에선 경기장 분위기에 눌려 우리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실망스러웠다. 그때 경험이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이다. 중국전도 정치적 이슈 때문에 홈 관중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좋지 않을 텐데, 경기 외적인 분위기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준비한 것을 경기장에서 다 보여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은 지난해 9월 홈에서 펼쳐진 중국과 최종예선 1차전에서 3-2 신승을 거뒀다. 그러나 올해 3월의 그라운드 안팎 상황은 그때에 비해 현저히 불리하다. 처음부터 중국 원정은 경기장 분위기가 남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외부변수 탓에 승리로 가는 길이 더 힘겨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전 경험이 중국전에 약이 될 것”이라는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여러 난제와 싸워야 하는 슈틸리케호가 중국 원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