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사설에 섬뜩한 내용이 실렸다. ‘머리를 때려 피가 흐르게(頭破血流)하기보다 내상을 입히는 것이 낫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내부로부터 문제가 발생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중국 소비자가 주축이 돼 경제적으로 압박하라고 부추겼다.
또한 관광·문화산업, 전자제품 및 자동차산업, 한중 민간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 협력 분야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압박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더욱이 롯데그룹에 대한 경제적 보복뿐 아니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한국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했다.
시진핑, ‘경제세계화’ 주장과 반대 행동
한반도 사드 배치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키우는 한편, 경제 보복 강도를 점점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의 피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행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동안 줄기차게 강조해온 ‘경제세계화’와 ‘자유무역 수호신’ 발언을 뒤집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1월 중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시 주석은 기조연설을 통해 ‘포용적 세계화’를 제시하며 글로벌 넘버2로서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시 주석은 “과거에는 경제세계화를 알리바바의 동굴로 여기다 지금은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로 취급하는 사람이 적잖은 등 논쟁의 대상이 됐다”면서 “빈곤, 실업, 소득 격차와 지역 내 충돌, 테러, 난민 등 여러 문제가 경제세계화 때문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며 경제세계화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경제세계화는 사회 생산력 발전의 객관적 요구와 과학기술 진보의 필연적 결과이지 특정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경제세계화야말로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고 과학기술과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시 주석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중국시장의 개방성과 주권의 존엄은 국가 대소를 가리지 않고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국으로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의 행태를 보면 시 주석의 말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이 그동안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경제 보복 카드를 매번 뽑아 들어 상대국을 굴복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2009년 프랑스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등 티베트에 우호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은 “내정 간섭이자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강력 반발하면서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 협상 중단과 함께 자국민에게 프랑스 여행 자제를 권고해 프랑스에 타격을 줬다.
2010년에는 일본과 사이에서 동중국해 분쟁이 터지자 일본 기업들의 희토류 주문을 일제히 거부했고, 2012년에도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같은 해 필리핀과 남중국해 분쟁이 벌어지자 중국인의 필리핀 관광을 제한하고 수입품 검역과 검사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 결국 백기 투항을 받아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심화되면 한국 경제에 큰 피해가 예상되지만, 양국 간 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국인투자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對)한국 직접투자는 20억4917만 달러(약 2조30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인 2011년(6억5000만 달러)에 비해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특히 서비스업은 638건에 10억2180만 달러(약 1조1700억 원)를 투자했다. 서비스업 중에는 금융·보험 2억8126만 달러, 비즈니스 2억3800만 달러, 부동산·임대 1억2000만 달러 순이었다. 문화·오락도 24건에 1억1122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대중국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 통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 금액은 2013년 47억7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 2014년 37억9000만 달러, 2015년 43억9000만 달러, 2016년 40억 달러 등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사드 보복 강도에 따라 한국에서도 반중(反中) 감정이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중 기류가 확산되면 국내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서울 명동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려고 건물을 사들였던 중국인 큰손 투자자들이 최근 유커의 발길이 끊기자 가슴을 졸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건물 가치가 하락하고 투자금 회수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나 가전으로 불똥 튈라
또한 수출에서도 중국은 전면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의 대한국 수출액은 약 100조 원,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44조 원에 이르는 등 양국 간 자본 유통과 수출입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가운데 95%가 중간재를 의미하는 자본재나 원자재여서 가공무역이 대부분인 중국이 한국 제품을 수입 제한하면 도리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가운데 정보통신기술 장비 등을 포함한 자본재, 즉 중간재 수출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철강이나 화학제품 같은 원자재 수출액 비중도 30%에 육박한다. 다시 말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95%가 중국이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상품의 재료로 쓰이는 셈.지금은 중국 내 롯데 제품 불매운동과 반롯데 집회, 유커의 한국 방문 제한, 한국 연예인의 중국 공연 취소 등 소비재와 관광, 문화 중심의 사드 보복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동차나 가전 등으로 피해가 옮겨갈 수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장은 “중국이 당장 한국 기업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수입을 금지하는 가시적 조치는 취하지 않겠지만 세무조사, 안전점검, 노사관계 점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업종에 관계없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 8대 중점 과업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개혁·개방 확대, 중국으로 자본 유입량 늘리기,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 11개 자유무역 시범구 설치 방안 등을 거론했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와 투자 자유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런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사드 보복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