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머리와 그 머리를 감싼 손가락에 새겨진 ‘SKIN’이라는 타투가 선명하다. ‘더기(Dougie, 1979~1980)’라는 제목의 이 흑백사진은 닉 나이트(1958~ )가 1979년부터 81년까지 스킨헤드(skinhead·짧게 깎은 머리 또는 대머리라는 뜻. 영국에서 반사회적 하위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시작됐으나 이후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한 인종주의자의 대명사가 됐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찍은 사진 중 하나다. 나이트는 스킨헤드 청년들의 자유롭고 솔직하며 반항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82년에는 스킨헤드 연작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로부터 28년 뒤 패션잡지 ‘보그’(런던) 12월호에 존 갈리아노의 S/S 컬렉션 화보가 실렸다. 짙은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모델 릴리 도널드슨이 황홀경에 빠져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이트는 이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 핑크 파우더를 흩날려 드레스의 화려한 색감과 질감을 살렸고, 이후 컴퓨터그래픽으로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한다. 사진 제목도 ‘핑크 파우더(Pink Powder, 2008)’다.
영국 사진작가 나이트의 첫 한국 전시인 ‘닉 나이트 사진전-거침없이, 아름답게’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나이트는 스스로 ‘이미지 메이커(Image-Maker)’라고 할 만큼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을 시도한 1세대 작가이며 다큐멘터리부터 패션 사진, 디지털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6개 섹션으로 나눠 진행된다. 첫 번째 섹션 ‘스킨헤드’는 나이트의 초기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1982년 사진집 출간 이후 최초 공개라는 데 의미가 있다. ‘초상사진(Portraits)’에서는 1985년부터 2009년까지 촬영한 배우, 모델, 아티스트, 뮤지션, 디자이너의 모습을 공개한다. ‘디자이너모노그래프(Designer Monographs)’에서는 요지 야마모토, 마르틴 싯봉, 질 샌더 등 패션디자이너와 협업한 패션 화보를 선보인다. 모델을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치마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버슬(Bustle)에만 색을 입힌 요지 야마모토의 ‘레드 버슬(Red Bustle, 1986)’에서 확인할 수 있듯, 모델이 아니라 오로지 의상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위적인 패션 화보를 감상할 수 있다. ‘페인팅&폴리틱스(Painting&Politics)’에서는 앞서 소개한 ‘핑크 파우더’를 포함해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의상을 입은 모델 데번 아오키의 모습을 사이보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 등이 공개된다. 이는 나이트가 패션에 장애, 차별, 폭력, 죽음 등 사회적 이슈를 결합하고 사진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미(美)’의 사회적 통념에 도전한 프로젝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물화&케이트(Still Life&Kate)’에서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과 3D(3차원) 스캐닝 기술을 활용한 ‘사진조각상’을 볼 수 있고, 마지막 섹션 ‘패션필름(Fashion Film)’에서는 애니메이션, 3D 촬영, 비디오 콜라주 등을 접목해 패션 사진을 영상의 영역으로 확장한 새로운 시도를 접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 “패션은 정치적 발언이며 당신이 입는 옷을 통해 그것은 고스란히 표현된다”는 나이트의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진다. “사진은 정치적 발언이며 나이트의 사진을 통해 그것은 고스란히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