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New Normal)’은 경제 변화 흐름에 따른 새로운 기준을 말하는데, 뉴노멀이 등장하면 기존 기준은 올드노멀(Old Normal)로 퇴색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호남 출신 최초 보수정당 대표, 새누리당 말단 직원에서 정당 대표가 된 이정현의 등장을 뉴노멀이라고 한다면, ‘금수저’와 엘리트 출신이 수두룩한 여당을 비롯해 계파 보스에 의해 지역주의와 자금, 조직에 의존하는 기존 정치는 순식간에 올드노멀이 된다.
이정현 대표는 뉴노멀인가. 그런데 왜 올드노멀한 단식투쟁에 나서게 됐나.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국정감사 복귀 선언과 이를 거부한 친박(친박근혜) 강경파의 대립은 뉴노멀과 올드노멀 간 대립인가. 갈팡질팡, 좌충우돌하는 이 대표와 정부 여당이 뉴노멀로 가기 위한 마지막 진통인지 궁금해진다.
여당 대표인가, 청와대 비서인가
“저녁을 먹고 8시 반쯤 배달되는 9개 신문의 가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제일 먼저 출근, 가판과 비교해 바뀐 기사가 있는지 확인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읽은 기사 가운데 기억하고 싶은 것을 옮겨 적고, 일요일에는 다시 모두 타이핑했다. 결국 신문을 네 번 보는 셈이었다.”이는 이정현 대표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통령에게 소신껏 말 한마디 했다가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고, 비박(비박근혜)이라는 이유로 식물대표로 전락하는 것이 현 집권여당의 딱한 현실이다. 국민은 총선에서 이런 집권여당을 심판하고 외면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에게 국민이 박수를 보낸 이유는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지만 그가 보여준 진정성과 성실함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늘 변방에 서 있고 때로는 식객 취급을 당했어도, 오히려 머슴 같은 서번트(servant) 리더십으로 당내 기득권 세력과 싸우는 이 대표를 통해 많은 당원과 국민은 꼴찌의 반란, 패자부활전을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대표실에 있던 ‘사장님 소파’를 10인용 사무용 테이블과 의자로 교체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파격 행보의 시작이었다. 수행원 없이 수시로 민생 현장을 방문했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대통령비서실 수석은 물론 비서관, 행정관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야당 대표를 만나서도 90도로 인사하며 공존의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바쁘다. 늘 정신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취임한 후 가장 큰 변화는 비박계인 김무성 전 대표 시절 삐걱대던 당청 관계가 밀월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의 당선을 기대하던 사람조차 마냥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 비서 출신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국민의 평가도 엇갈린다. 비주류의 설움을 지독한 집념으로 극복한 진정성의 이미지와 함께 주군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가신의 이미지가 겹쳐 있어서다.
어렵게 건의한 탕평인사가 물을 먹었어도 청와대를 대신해 8·16 개각의 의미를 기자들에게 설명한 이 대표다. 당내에선 이를 놓고 “여당 대표인지, 청와대 비서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 비협조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사과한 것은 야당에게 박 대통령을 그만 비판하고 국정 협조를 요청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함이었다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당청 밀월관계를 넘어선 무력한 민낯을 보인 백미는 소위 ‘바람론’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종의 구실을 하고 있다”며 궁색하기 짝이 없는 “바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던 이조차 이 대표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막는다고 가려지나
친박의 독선과 박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국민적 반발 여론은 총선 심판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에도 변화에 실패한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감은 언론과 야당에 의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에 기름을 붓게 됐다.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일축했지만, 언론과 야당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에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연일 제기했다. 이런 의구심이 정기국회를 앞두고 ‘최순실 국정감사’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바람 역할론으로 몸을 낮춘 이 대표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국정감사를 치르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무엇인가 구실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국회의장의 ‘맨입’ 발언과 국회법 제77조 위반 시비는 반가웠을 것이다. 해임건의안을 일방적으로 표결처리한 야당을 제쳐두고 국회의장을 과녁 앞에 세웠다. 여야가 주고받으면서 타협하고 국회의사 일정을 합의하라는 정 의장의 비공식 발언이 과연 서로 죽기 살기 식으로 싸워야 할 사안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정 의장과 야당이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처리했지만 2010년 아랍에미리트 파병 동의안, 2006년 사학법 개정안,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모두 국회의장이 서면으로 의사 일정을 교섭단체 대표에게 통보했고,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국회의사국의 설명에도 귀를 막았다. 한마디로 조급함이 헛발질을 하게 했다.
결국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문제 삼고 있지만 우병우 수석, 미르 의혹과 관련된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국회 증언을 무산시키겠다는 치밀한 정략적 의도하에서 계산된 행동으로 의심된다”며 “청와대와 충분히 교감하지 않고서 이런 일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라는 야당 측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을 이 대표 스스로 자초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지키고자 국회를 멈추고 국정감사를 파행시키기 위해 단식투쟁이라는 올드노멀로 회귀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 단식은 사회적 약자의 최후 투쟁 수단이다.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투쟁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최순실, 우병우가 어쨌기에 국정감사를 막으려고 단식투쟁까지 하지’라는 국민적 의구심을 더욱 키운 것이다.
집권여당 초유의 국회 파업과 국정감사 거부의 명분을 찾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5차 북한 핵실험과 경제위기에, 경북 경주 지진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여론의 역풍은 거셌다. 결국 보수층이 이탈했다. 언론은 일찌감치 돌아섰고,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는 비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의원을 비롯해 하태경, 이혜훈, 유승민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정감사 복귀를 요구하는 선상반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결국 이 대표는 국정감사 복귀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박 강경파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강경투쟁 분위기를 주도하며 국정감사 복귀를 번복하고 나섰다. 친박계가 같은 친박계인 이 대표의 ‘국감 복귀’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다. 물론 이 대표가 국정감사 복귀란 중대 결정을 정진석 원내대표와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 당내 반발을 자초했다. 이 대표의 허약한 당 장악력과 리더십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민심은 안중에도 없고, 여당의 정국 주도권과 계파의 패권적 위계만 생각하는 친박 강경파의 발상이다. 퇴행적 정당의 전형적인 올드노멀이다. 이 대표가 청와대나 친박 주류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데 대한 계파 중진의원들의 경고인 셈이다. 지독한 계파 패권으로 총선에서 심판받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방증이다.
이 대표가 나서서 대통령과 친박 설득해야
이 대표의 단식투쟁과 국정감사 거부 사태에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정쟁 한복판에 박 대통령이 아니라 여당 대표인 자신이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너무 앞서가니 대통령이 나서기가 뭣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말 한 마디 못 하고 국회의장을 향해 무기한 단식투쟁을 벌인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친박의 총선 심판 책임론에도 대통령과 가까운 이정현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한 당심과 민심의 지혜를 곱씹어봐야 한다. 비박계 대표를 통한 수평적 당청관계 실험은 김무성 대표 시절 오히려 당청 갈등이 커져 실패로 귀결됐다. 새누리당 당원들이 8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이 신임하는 이 대표를 선출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 옷자락이라도 붙들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 당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 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차고 넘치는 듯하다. 대표 당선 축하오찬에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제일 많이 웃었다는 비서실장의 전언이 이를 확인해준다.
총선에서 심판받은 새누리당에게 필요한 것은 민심이 선택한 여소야대를 인정하는 일이다. 국회는 야당이 집권했다. 그래서 국회의장도 야당 출신이다. 아무리 여소야대여도 국정의 일차적 책임은 여당이 진다. 국회에서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여당의 정치력은 어디 갔는가. 이처럼 끝 간 데 없이 파국을 향해 달리는 정국을 정상화하려면 결국 정치 협상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투쟁을 하더라도 소위 출구전략과 타협의 여지는 남겨뒀어야 한다. 후일 도모를 위해서 말이다. 예산과 법안, 국회 방치의 무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여당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여소야대를 인정한 뒤 청와대에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게 해야 한다. 야당에게 양보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하고 절대 양보하지 못할 마지노선을 정리해야 한다. 그중 한두 개 정도는 야당 설득용 카드로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협치가 뉴노멀이고 여대야소의 독주가 올드노멀이다. 이 대표가 이 점을 박 대통령과 친박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이 대표가 단식투쟁을 풀어야 한다. 작은 소반에 죽이라도 떠놓고 국회의장, 야당 대표들과 마주 앉은 이 대표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뉴노멀로 각광받던 이 대표가 하루아침에 올드노멀로 전락하는 것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사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